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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Oct 17. 2022

범서예찬

사계절이 완벽한 울주이야기

*본 글은 '울주이바구를 찾아서' 수필부문 우수상 작품입니다*


 나는 울주군 범서읍에서 5년을 살았다. 천상에서 회사를 다녔고, 신혼집도 그곳에서 시작했다. 좋은 기운이 있던 곳이었는지 이듬해 첫딸이 생겼고, 이후 잘 살다가 구영리로 이사해 둘째를 낳고 지냈다.

5년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겠지만, 나에게 범서읍에서 지낸 5년은 참으로 각별하다. 동구 토박이로 30여년 넘게 산 것보다, 오히려 범서읍의 5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자 삶의 터전이 되었으니까.

울주군에 터를 잡게된 것도 우연이었지만, 이 곳에서 5년간 살았던 것도 순전히 운과 우연이 겹친 덕이다. 전 직장에서 나와 경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관련 직종의 모집 공고가 났고, 이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애정을 더해 일했고, 덕분에 원하던 곳에 이직도 했다.

그러다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남편과 나의 근무지가 울주군이라 자연스럽게  부근에 신혼집을 찾게 되었다. 남편은 친정과 언니가 있는 동구로 집을 구하자고 했지만 내가 싫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예산 안에 마음에 드는 적당한 집이 매물로 있었고, 손볼  없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그곳으로 바로 계약을 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맛있는 빵집과 음식점을 시작으로 저렴하고  좋은 상품이 있는 탑마트와 채소가게,  한푼 들지 않고 건강을 챙길  있는 산책로(그것도 강과  모두 있다), 봄이면 나눔장터, 여름엔 써머페스티벌, 가을엔 음식대잔치  즐길거리와 볼거리 다양한 범서체육공원까지. 여기에 시어른도 가까이에 사셔서 남편이 야근이라 혼자 밥먹기 싫거나, 아이를 급히 봐줄 이가 없을때 믿고 맡길  있었다.

 그렇게 천상에서 2년을 살았다. 살면서 불편함은 커녕 공기좋고 조용하며, 범서체육공원과 울주문예회관, 아동병원, 뒷산 산책로 등 심심할 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던 그곳이 좋았다.

다만 한 가지, 다리 건너 구영리가 부러웠던것이 있었다. 선바위부터 태화강 국가정원까지 갈 수 있는 강변 산책로였다. 천상에서도 갈 수는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거리도 그렇고 차도를 지나가야해서 가기 어려웠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도 구영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강변 산책로의 시작인 선바위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평소에도 걷기를 워낙 좋아해서 도보 30분에서 1시간 거리는 우습게 다녔다. 그런 나에게 구영리는 나에게 맞춤옷마냥  맞는 곳이었다.

뒷산 산책로도 있고, 강변 산책로도 있으며, 굳이 산책로를 가지 않아도 구구영과 신구영을 잇는 중앙도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봄의 정취, 여름의 상쾌함, 가을의 낭만과 겨울의 운치까지. 범서의 사계절은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담고 있었다.

 봄엔 선바위에서 베리끝까지 자주 걸었다. 울주군과 중구를 잇는 베리끝. 누군가 도끼로 내리 찍은 것 같이 깔끔하게 썰린 그곳은 강변길 중에서도 가장 운치 있으면서 한편으론 서늘한 기운이 도는 곳이다. 반대편에서 본 베리끝은 절경이었지만, 한낮에도 그늘지고 좁은 그 곳을 혼자 다닐 용기는 없어서 일부러 반대쪽 길로 돌아 다녔다.  

 그저 신기한 절벽이라 생각했던 어느 날, 그날따라 강변엔 사람이 많았다. 자연히 사람들을 따라 걷다보니 베리끝 입구로 들어섰다. 북적북적한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지나가다 앞서 가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길 들었다. 보아하니 주말을 맞아 가족이 함께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나랑 애들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요?"

 "아이고, 당연히 당신이지! 애들은 젊으니 알아서 나오겠지."

  '아빠 너무해요', '자식을 버리냐'는 볼멘소리와 하하하 터지는 웃음 뒤에 또 다른 일행이 말했다.

 "아이고 삼촌, 삼촌이야말로 베리끝 낭군이구만!"

그제야 그곳의 이름이 '베리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엔 '배리끝'이라고 되어있었음) 독특한 이름답게 관련된 설화가 있을 것 같아 <울주군 지명이야기>를 검색했다. 과연 채록한 경위와 내용, 분석까지 알차게 되어 있었다.

'베리끝'은 경상도 사투리로 벼랑을 뜻하는 '베락 끝'이 어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울주군 외에도 우리나라엔 '베리끝'또는 그와 유사한 지명이 더 있다. 하지만 울주군 범서읍에 있는 '베리끝'만큼 애달픈 이야기를 가진 곳은 없다.

 아주  옛날, 며칠째  비가 쏟아진 통에 강물이 무섭게 내리쳤다. 이때 젊은 부부와 미혼의 누이동생이 함께 베리끝을 지나고 있었단다. 그러던  아내와 동생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쓸려 가게 되었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자기 앞에 떠내려가는 옷을 움켜쥐고 끌어내보니 자신의 아내였다. 동생은 손을 뻗었지만 세찬 물살에 그만 휩쓸려 찾을  없었다. 동생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사내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후 베리끝에서는   없는 노래가 전해지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남창 남창 베리끝에/무정하다 우로라바/나도 죽어 후생하면/낭군님부터 정할래라]

 처음엔 죽은 누이동생이 오빠에 대한 섭섭함이 () 되어 그것이 노래로구전되었구나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베리끝을 지날 때마다 이건 혹시 평생 누이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오빠를 걱정하는 마음에 일부러 모질고  없게 노랠 만들어 누이의 넋을 달래려는  사람들만의 위로가 아닌가 싶다. 베리끝 설화를 듣고  후부턴 어둡고 음습했던 그곳이, 따사로운 봄의 햇살이 닿지 않아  없이 안타깝고 슬픈 곳이라는  알게 되었다. 베리끝에 대해 오해해서 너무나 미안했고, 죽은 누이동생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구영리의 여름은 시원한 편이다. 앞뒤로 막힌 것이 없고, 산과 강이 있어서인지 폭염경보니, 30도가 넘었느니 해도 살랑이는 바람일지라도 시원한 바람이 늘 볼었다. 그 중 여름에 가장 인기 좋은 곳은 단연 '선바위'다. 선바위 근처 다리 밑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과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노는 아이들의 소리로 그곳은 여름 내내 시끄럽다. 정작 선바위 근처에는 물살이 세고 깊어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익사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독특한 지형과 사실이 더해져 '선바위는 사람을 홀린다'느니, '선바위에 원한이 깃든 물귀신이 있다'는 꽤나 그럴듯한 소문이 늘 떠돌았다. 특히 많이들은 이야기가 '여름엔 선바위에 무속인들이 굿을 하러 온다'였는데, 실제로 본 사람이 없어서 그냥 흘러 들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밤. 열대야에 시달리다 어정쩡하게 깨 버렸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자려고 나왔는데 베란다 너머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짤랑짤랑 둥둥둥"

 소리는 바로 근처 같지는 않고 아파트 저 너머에서 아련히 들렸다. 공교롭게 우리 아파트 베란다는 선바위 쪽에 있었고,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선바위에서 굿을 하는 무속인 이야기가 진짜였나? 무서움은 잠깐이었고, 그보다는 그 소문이 진짜인지 궁금해졌다.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 어스름하게 동이 트려고 했다.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나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소리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선바위에서 나는 소리라고 확신을 해서였을까? 발걸음은 자신 있게 강변으로 향했다. 선바위에 가까이 갈수록 방울소리와 북소리는 더욱 커졌다 작아졌다. 그런데 태화강 생태관에 들어서자 그 소리가 딱 멈췄다. 마치 신성한 영토에 불순한 인간이 들어오는걸 막는 것 같이, 정확히 발을 땅에 디디자마자 뚝 끊어진 것이다. 바로 선바위로 달려갔지만 역시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동이 터오를 시간이었다. 소리의 진원을 찾지 못해 아쉬웠던 찰나. 선바위의 몸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선바위가 그렇게 멋스럽고 귀티가 나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모진 풍파와 거센 물살, 영겁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마모되거나 구부러짐 없이 올곧은 자태로 꼿꼿하게 서있던 그 모습. 선바위 아래는 회류하는 물살이 엄청났는데, 선바위가 본인을 지키기 위해 물을 휘젓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결국 그날 소리의 정체는 알지 못했지만, 더 궁금해서 캐지는 않았다. 선바위의 아침 절경을 본 이상, 그냥 신비스럽고 기이한 곳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뜨거운 햇빛이 따사롭게 바뀌면 범서읍 곳곳에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있다. 삭막하고 빡빡한 아파트 단지 안에 펼쳐진 갈색의 향연! 이름난 아파트나 고급 부촌에서도   없는 멋들어진 가로수 덕분에 매일 아이들을 안고 업고 아파트를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덕분에 아이들이 주워  갖가지 나뭇잎들을 치우느라 고생을 해야 했지만, 그런 수고가 있더라도 가을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한  저녁에만 문을 여는 아파트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아이가 '도서관에 가자' 신발을 신고 서두른다. 기어 다니기 시작한 둘째도 언니를 따라 열심히 현관으로 간다.  아이를 데리고 일부러 아파트 바깥쪽으로 돌며 나무구경, 사람구경을 하고 아파트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선 방문하는 아파트 주민을 위해 사탕이나 초콜릿을 줬는데 아이는 제보다 젯밥이라 그걸 받으러 가는 재미로  가자고 졸랐다. 덕분에 나는 강제 독서왕이 되었고, 아이는 충치를 얻었다.  

추운 겨울엔 드라이브를 자주 즐겼다. 특히 선바위를 시작으로 두동, 두서로 이어지는 국도를 무척 좋아했다.  가면 봉계, 경주까지도 갔고 그게 부담스러운 날이면 중간에 중구 다운동으로 빠지는 길로 돌아갔다.   

 겨울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이었다. 원랜 여덟시가 되면 바로 잠들던 아이인데, 열시가 넘어도 잠은커녕 놀잇감을 다 뒤지고 놀았다. 평소 같았음 아이와 함께 뒹굴고 놀았을 테지만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고,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느라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결국 아이를 불러 세워서 잠을 안 잔다고 윽박질렀다. 놀란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그 울음소리에 아차 했지만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터라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나도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아이 옆에 앉았다. 한참을 울던 큰아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아이는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했다. 밖은 추웠고, 시간은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른체하면 아이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알고 있었다. 나는 차키를 들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아이를 차에 태웠다. 겨울밤, 숨소리조차 없고 바람소리만이 맴을 돌았다. 구영리에서 출발해 지지워터피아쯤 가서야 아이는 곯아떨어졌고, 나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 날, 가로등도 몇 없던 두동 가던 길이 왜 그렇게 서럽던지. 오가는 차도 없이 혼자 처량하게 참 많이 울었다. 결국 봉계까지 가서야 마음을 좀 추스르게 되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드라이브 길이 있던 덕분에 내가 숨통이 좀 트였던 것 같다. 만일 그 상황에 시끄럽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그득한 대로변을 갔을 것이며, 그랬다면 내 감정을 온전히 닦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그 길을 좋아한다. 이번 겨울엔 춥고 시리지 않고 아름답고 잔잔한 겨울에 흠뻑 취하고 싶다.

 범서에서 겪은 사계절은 길지 않은 인생의  축이 되었다.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범서! 이야깃거리와 볼거리 가득한 이곳에  터전을 잡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베리끝의 설화와 구전노래, 선바위에서 있었던 기이한 체험, 가로수길을 따라 걷던 낭만, 여유를 한껏 담은 드라이브 코스까지. 범서의 멋짐을 담은 이들의 내년이 더욱 기다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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