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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Oct 17. 2022

할머니의 위로

때로는 모르는 이에게 받는 위로도 있다.

<본 글은 은평인터넷백일장 수상작입니다>

*사연의 특성상 일부는 실제와 조금 다르게 기입한  양해바랍니다.*


 몇 년 전 있었던 일이다. 업무 특성상 서울 출장을 자주 갔었는데, 한 번은 서울 사는 친구와 일정이 맞아 같이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친구는 '울산 촌놈'에게 서울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정한 첫 번째 장소가 "한옥마을"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한옥마을이 바로 나왔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내리자마자 선선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졌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한옥마을의 모습이 참 정겨웠다. 서울은 삭막하고 빡빡한 곳이란 편견이 대번에 사라지면서, 내가 아는 서울의 참 모습은 사실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친구가 오질 않았다. 연락을 했더니 친구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어디냐고 쏘아댔다. 네 말대로 한옥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니 황당해하더니만 어느 역에서 내렸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친구는 '북촌 한옥마을'에 갔던 거고, 나는 한옥마을이 몇 개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고 검색해서 나온 제일 상위 글인 '은평 한옥마을'에 온 것이다. 서로 한동안 말이 없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바탕 웃었다. 친구는 자기가 제대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은평 한옥마을은 무척 귀엽고 좋은 곳이니 잘 둘러보고 있으라고 했다. 나중에 알려준 이야긴데, 사실 친구도 은평 한옥마을을 좋아한단다.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껍데기뿐인 한옥마을보단 이쪽이 더 정 있고 푸근하다나.


 친구가 이쪽으로 온대서 그동안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날이 평일이었고, 시간도 두세시쯤이라 그런지 마을을 무척 한산했다. 길 따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아주 듬직하고 멋진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보호수>간판이 내걸린 나무는 듬직한 기둥에 길고 시원한 가지들이 쭉쭉 뻗어있었다. 평소 나무나 꽃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나무는 보자마자 단박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홀린 듯이 그 나무 곁에 다가갔고, 한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한참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 멀리 허리가 잔뜩 고꾸라진 할머니가 날 보고 계셨다. 그분은 멀리서 날 쳐다보고 계셨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더니 내 쪽으로 오셨다.

 "학생, 괜찮아?"

대뜸 나에게 오시더니 한 말이다.

 "네?"

 "학생, 괜찮냐고."

 그런데 할머니의 '괜찮냐'라는 두 번째 물음에 '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할머니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가만히 서계셨다. 한동안 그러다 간신히 눈물을 추스르고 나니 머쓱해졌다. 내가 다 울었다고 생각하셨는지, 할머니는 입을 떼셨다.

 "내가 여기서 오래 살았어. 근데 이 나무 보는 사람 치고 괜찮은 사람이 없더라고. 내 학생 저 멀리서 보는데 뭐 그리 근심이 많아.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거야."

당시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직한 회사의 팀장이 내정한 직원이 있었는데, 경력 부분에서 내가 점수를 더 받은 덕에 그 내정자가 밀려났던 것이다. 첫날부터 '얼마나 능력이 좋으냐'라는 말을 시작으로 '넌 누구 백으로 들어왔니?'하는 말도 들었다. 그럴수록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눈에 보이는 실적이 생기고, 나를 불편해하던 직원들도 차츰 마음을 열고 잘 지내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팀장은 더욱 무리한 업무로 나를 죄었다. 서울 출장을 자처하고 다닌 것도 그에게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과 조금이라도 회사에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업무 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불안감이 생겼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워도 새벽 5시 넘게 멍하니 천장만 쳐다봤고, 그러다 눈을 감으면 바로 아침이었다. 피곤하고 잠도 오는데 오히려 정신은 더 또렷해서 늘 몽롱하게 다녔다. 참다못해 상담을 받았고,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았다. 약물복용과 추가 상담을 해야 한다 했지만,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그만뒀다. 가장 큰 증상은 '엄청난 기우'였다. 저 차가 날 치고 갈것같다, 지하주차장 천장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창문이 떨어질거같은데 어쩌지? 이런 불안감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한동안 못탔다.

그날도 전날까지 업무에 시달린 터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어둡고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화사하게 화장도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내 모습을 보신 걸까.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나만큼 살아봐. 더럽고 치사한 일도 많은데, 그래도 살만해. 내만치 살다 보면 학생 같은 사람이 그냥 보여. 그러면 나처럼 말 한마디 건네줘. 내가 그렇게 사람 여럿 살렸어."

그러곤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끌며 마을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홀린 듯 한참 서있었다. 가족들의 무심한 토닥임과 상담사의 딱딱한 공감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따뜻한 할머니의 위로. 그날 나는 너무 큰 것을 얻었고, 또 시원하게 마음을 비워냈다.

출장을 다녀온 후, 나는 사표를 냈다. 팀장은 마지막 출근 날 나에게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미안한 표현이었으리라. 나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다. 이후 그 할머니를 뵈러 갔지만 그분은 뵐 수 없었다. 애당초 그분을 찾는 것이 무리였지만, 언젠가 또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찾아보겠노라 다짐했다.

오랜 시간 진득하게 버텨 온 나무 덕에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천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청량한 바람과 따스운 햇살, 그리고 할머니의 인자한 웃음. 몇 년이 지났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온기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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