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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Jun 22. 2023

구지와 어의

나에게 맞춤법은 '신뢰와 믿음'

우선 고백하겠다.

난 대학시절 전공이었던 '맞춤법'과목 c+을 받았다. 그 뿐이랴. 단일전공이라 학점 채우려고 들은 맞춤법 교양강좌도 c를 받았다. 당시 타 과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국문과랑 같이 들어서 쫄았는데 밑밥 깔아줘서 참 고맙다'는 우스개소리도 들었다. (그 선배는 밥도 샀다. 내 덕분에 무사히 졸업을 할수있었다나 뭐라나)

흔히 국어국문학과 전공은 '많이 쓰는 것이 장땡'이라 할 정도이고 '교수님의 마음에 드는 단어와 내용만 넣어도 학점을 잘 받는다'고 족보가 돌았다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로 과목이 대단히 주관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한문학'이요, 다른 하나는 '맞춤법'이다. 이 둘은 문과에서 보기 드문 '달달달 외우면 점수를 받는 암기과목'이다. 특히 맞춤법은 갖가지 예외사항과 법칙을 달달 외워야 풀 수 있는 것들이다. 두음법칙이니, 사이시옷 예외니... "아니 국문과면 국어문학만 알면 되는거 아니냐"고 공허한 외침을 했더랬다.


이후 취업해서 나의 고난은 계속 되었다. 보도기사와 문예지를 작성하면서 맞춤법과 띄어쓰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내 직속상사가 국문과 출신에 등단까지 한 분이라서 얄팍한 꼼수나 어설픈 글로는 통과는 커녕 눈물이 쏙 빠지게(운 적은 없다)혼이 났다. 어느날은 이런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국어맞춤법이 정리된 내용 제본을 만들어 주시면서 하루에 한장씩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제본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이후 대단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검색을 하지 않고 일부러 그 책을 뒤적여 찾고 익히니 기억도 더 잘 되고 공부가 되었다. 공부를 하다보니 띄어쓰기가 왜 중요한지, 맞춤법을 맞게 써야하는 것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전문가도 헷갈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잘못 쓰이는 것들을 바로 잡기 시작했다. 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맞춤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하는구나 싶었다. 그것이 상식이라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띄어쓰기나 전공자도 헷갈리는,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것이 아닌이상 맞춤법이나 오탈자를 쓰는걸보면 그 사람에 대해 좀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한 문장의 말이나 표현이라도 본인이 뱉은 언행


특히 내가 SNS를 하고 글을 쓰고 올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피드나 포스팅을 자주 보는데, 맞춤법을 틀리게 쓴 것을 보면 그 글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진다. 적어도 본인이 뭘 팔거나 정보를 제공하고 그걸 통해 소비자가 구매하고 정보를 습득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글의 구색>은 갖추고 올려야하지 않나? 오탈자야 작성 과정에서 있을 수 있다지만 그조차도 '글을 올리기 전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내용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작성자가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덕분에 나도 세네줄의 글을 올리더라도 오탈자, 맞춤법을 한번 더 보고 올리는 습관이 들긴 했지만 좀 씁쓸하다 싶다. 


요즘 가장 많이 틀리는 단어가 '구지'와 '어의'다. 굳이, 어이를 저렇게 쓴다. 당연히 오타구나 했는데 반복적으로 쓴 것을 보면 진짜 저렇게 아는구나 싶어서 내가 '어이가 없더라'. 모 인플루언서는 본인의 남편과 본인이 내로라 할 학벌이고, 일명 학군지에 살며 아이가 엘리트 코스를 밟고있다는 것도 올리면서 '구지 저희 아이는 그런걸 안 시켜도 알아서 하더라고요', '저희 남편은 구지 그럴 필요없다고 했지만'등 어찌나 '구지구지'하는지... 그걸 보니 그 사람이 쓴 각종 정보글과 교육, 육아 정보에도 신뢰가 확 떨어져 보지 않게 되었다. 


커뮤니티에 가면 어쩜 그리 어의들이 많은지. '구지 그렇게까지 해야하나요?', '구지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진짜 어의없죠?' '식당 주인이 어의없다라고요'처럼 구지와 어의가 난무하다. 나는 어차피 나한테 별 도움도 안되고 피해도 없으니 굳이 그 글에 댓글을 쓰진 않는다. 저 사람은 그냥 저렇게 틀린채로 살겠군. 그게 끝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댓글에 '어의가 아니고 어이다', '구지가 아니고 굳이'라고 쓰면 잽싸게 대댓글이 달린다. '대단한 국문과 납셨다'.


나도 맞춤법 많이 틀린다. 띄어쓰기도 많이 틀린다. 나는 비문도 많다. 주어 목적어 많이도 빼먹는다. 한 번 쓰고 나서 검토를 하고 올려도 내 눈에 안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 그럴때마다 내 글을 본 사람이 '오타가 있다', '띄어쓰기 이거 아니에요'라고 댓글을 달아줄때가 있다. 내 글을 이렇게 성의껏 봐준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나도 더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나처럼 대단한 감사와 기쁨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틀린것에 대해 말해주면 최소한 고치거나 '아 틀렸구나'하고 인지하기만 해도 될텐데 '굳이' 그 글을 비꼬거나 '요즘 다들 이렇게 쓴다', '이렇게 써도 말만 통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되려 불쾌한 기색을 내비추면 순식간에 그 글과 댓글은 잘한것과 잘못한것으로 나뉘게 된다. 구지로 써도 알아듣고, 어의라고 한들 피해받는게 없다곤 하지만-그래도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틀린 부분에 대해 말해주는 '정성'이 사라지니 좀 씁쓸하다. 


그저께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즐겨보는 SNS마켓에 건강보조식품 공구가 올라왔는데 한번 보고 같이 사먹자고 했다. 보내준 링크를 타고 가보니 평소 관심이 있던 상품이고 가격도 괜찮았다. 사용후기를 읽었는데 오탈자가 너무 많았다. 뭐 얼마나 급해서 이렇게 난무하는 오탈자를 그대로 올린걸까... 그렇게 오탈자에 기겁하고 그 글을 몇번 더 읽으니 상품의 신뢰도 떨어진데다가 그렇게 극찬하고 대단하다고 올린 내용 속에 들어있는 과장과 과대광고가 함께 보였다.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그 글 다시 읽어봐. 그 보조식품만으로 뺀거 아니고 원래 날씬한 사람이야. 거기다 본인이 '이것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도 써놨네." 

결국 언니랑 난 그 보조식품을 사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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