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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Jul 25. 2023

권선생님의 가르침

일같지 않은 일은 없다

 올해로 직장인이    10년이 된다. 연차로 보면 여느 회사의 중간 관리자급이지만,  번의 이직을 해서 직급은  ‘사원이고, 어떻게  영문인지 가는 곳마다  막내여서 각종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왔다. 누가 해도 되는 일이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 해도 티가  나지만 하지 않으면 빈자리가 무척이나   특별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으면 몇몇 사람은 고마움을 느끼긴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하는  당연한 거라고 여기는 모양인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지 않았다. ‘ 이런  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번도 그렇게 생각해  적이 없었다.  선생님의 남다른 가르침 덕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대학교 행정실에서 나는 잡무를 맡았다. 하루 네 시간의 짧은 근무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고정 월급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운이 좋게도 첫 직장에서 뛰어난 업무 성적과 역량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신 덕분에 회사생활의 각종 예의와 업무 방법, 일명 ‘일머리’를 키울 수 있었던 좋은 교육의 장(場)이었다.

 모든 선생님이  좋았지만, 특히 내가 가장 많은 일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마음가짐 일깨워   선생님을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는 탁월한 업무수행능력과 인자한 성품, 후한 인심으로 모든 직원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를  예뻐하셨다. 직원들에게만 돌아가는 명절 선물도 잊지 않고 주셨고, 시간  근무를 하지만 수당을 받을  없었던 나에게 사비로 일급을 주시기도 했다. 고급 식당에서 직원회식을 하는 날엔자취생이 언제 이런  먹어보겠어?’하고  불러주셨다. 깊고 따스한 인간미와 20 차의 연륜은 차마 내가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나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경심과 존경을 담아 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출근 첫날이었다. 나의 일은 무척 쉽고 단순했다. 출근해서 탕비실 정리를 하고, 직원들에게 커피와 차를 내오고, 우편물이 오면 분류해서 교수 사무실에 전달한 후 행정실에 전달사항이 있으면 학생회나 교수에게 전하고, 손님이 오면 다과를 내오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1시간이면 끝나는 일이었고, 어려운 것도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작은 일이라도 순서나 빠진 일이 생길까 하고 두꺼운 노트에 자잘한 것까지 모두 적어가며 숙지하려 애썼다.

 차근히 일을 알려주던 권 선생님은‘혹시 다른 곳에서 일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동안 단기로 아르바이트만 했고, 고정으로 일을 다니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라 여기가 첫 직장이나 다름없다고 하니 잠시 망설이다가 나를 탕비실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사무실에 일하는 선생님들의 개인 컵을 알려주면서 각 선생님이 마시는 차(茶)의 종류를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다현, 선생님과 손님에게 커피를 내오는 것을 그걸 내가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회사생활을 이십여  넘게 하고, 나도 음료를 내오는    하고 보니 이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더라고. 물론 그냥 선생님들에게 음료만 갖다 주고 치우면 발전도 없고, 자신도 점점 하기 싫어질 수밖에 없어. 중요한  이걸 요령껏  익히는 거지. 그러면서 말이라도 한마디  붙이기 좋고, 손님이 오시면 차를 내면서 어떤 손님인지 알고 인사라도   더하면 후에 네가 분명 도움이  거야. 그러니 이걸 그냥 허드렛일이나 하기 싫은 업무로 여기지 말고 즐기면서, 남과 다른 특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렴.”

  선생님과 그렇게 길게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커피 심부름은 나만   있는 ‘유일한 업무 되었고, 여름엔 시원한 음료로, 날이 추우면  온도를   따끈하게 올려서 내오는 요령도 생겼다.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은 ‘다현이 너무 맛있게 차를 내와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장난기 어린 푸념을 하셨지만 그게  ‘잘하고 있다 말을 돌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신나고 즐거웠다.  선생님의  말과 행정실 선생님들의 추켜세움에 으쓱해져서 다른 일이  없을까? 내가  하던 일도 관성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있을까 고민했다. 출근이 즐겁고 신났다. 살면서 그렇게 칭찬을 받은 적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그렇게  달쯤 지났을까.  선생님이 나를 다시 불렀다. 나에게일은 재미있니?’라고 물으시더니 바로 말을 이으셨다.

다현, 이제 네가 일이 익숙해지니 팁을 하나  줄게. 모든 일은 남이 받을  쉽고 편하게 해야 하는 거야.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이긴 . 상대의 업무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내가 지켜보니 너는 충분히 그걸  있을  같아. 앞으로 직장생활도 여기서 하는 만큼만 해도 대단한 사람이 될거지만,  욕심을 내고 싶어서 말해주는 거란다. 여기서 충분히 사회생활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렴

  선생님은 내가 실수를 해도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니 괜찮다고 위로해 주셨고, 남들도    있는 자잘한 것이라 해도 내가 하면 유난스럽게 치켜세워주셨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고, 특히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특별한 업무 남달리 해석하며 다음 직장에서도  일을 도맡아 했다. 스트레스는 전혀 받지 않았다. 팀장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일 때는 시원하고 달콤한 주스를 드리며 인사를 건네면 슬쩍 웃으시며 농담으로 답했고, 손님이 오시면  손님이 금방 가실 분인지, 아니면 다른 업무를 깊게 보는 분인지 확인  그에 맞춰 간단한 드링크제나 따뜻한 커피를 내어갔다. 내가 음료를 드리면 손님과 같이 있는 직원이 ‘ 직원은 홍보 일을 하는데, 글도  쓰고 감각이 좋다 칭찬해주셨고,  덕에 손님과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보는 이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고의뢰도 들어와 퇴사 후에도 끊이지 않고  쓰는 일이 생겼다. 음료를 내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 2분이지만  덕에  , 몇십  어치의 특별한 인연이 생긴 것이다.

 그런 나도 정말 하기 싫었던 심부름이 하나 있었다. 옆 사무실에 ‘최부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본사의 중요 직책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업무시간에 일은 하지 않고 늘 ‘외근’을 나가기 일쑤였다. 그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마치고 와서 커피나 차를 마시곤 했는데, 다들 휴식을 취하는 조용한 사무실에 와서 매번 큰소리로 여직원을 무시하는 발언과 조롱으로 모두 그와 마주하는 걸 꺼렸다.

 특히 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계약직 여사원은 정규직 남직원과 결혼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계약직들은 이런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황송히 생각하라 구시대적인 발언이었다. 아무리 속없이 다니는 나조차도 그의 커피 심부름은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내가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올라오면 마치 나를 기다린 듯이 가만히 앉아서 커피를 내오라고 주문을 했다. 언젠가 커피를 늦게  날엔 ‘계약직 주제에 무슨 일이 많아서  말을 무시하냐?’ 면박을  적도 있었다.  연봉의 무려 10 가까이 받으면서 일은 십분의 일도 하지 않는 그가 너무 밉고 싫었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사람도 없었고, 분위기가 더욱 나빠질  같아 대꾸도 하지 않고 모른 체했다.

그러다 내가 퇴사를 했다. 퇴사하던 날 마지막으로 최부장에게 커피를 타면서 오늘부로 퇴사를 한다고 하니, 이 좋은 직장을 두고 퇴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한심하게 날 쳐다봤다. 사실 퇴사의 이유를 누구보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정규직 연장을 할 수 있었는데, 최부장이 자신의 지인을 취직시키기 위해 나를 ‘계약연장’으로 바꾸고 그이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된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괜히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최부장도 분위기를 보더니 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 들어올 직원은 싹싹하고 일도 잘하는 아이라며, 계약직처럼 치고 빠질 일이 없어서 좋다는 말을 내뱉었다.

 퇴사를 하고 한 달쯤 지나서 우연히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과장님을 만났다. 과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내가 퇴사하고 사무실 분위기가 무척 나빠졌다는 것이다.

 내가 퇴사 한 다음 날, 최부장의 지인이 왔는데 이틀 일을 하고 ‘일이 너무 많아서 못하겠다’고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이전에 내가 혼자 하던 일이라 모두 그러려니 했고, 신입이라 업무파악이 되지 않아 그러니 당분간 업무 분담을 해주자며 직원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신입직원이 내가 남겨 둔 60페이지 분량의 업무 매뉴얼을 보여주며 이게 다 전임자가 했던 것이라고 하자 다들 놀랐다고 한다. 생각보다 자잘한 것이 많았고, ‘글을 쓰는 업무’란 이유로 다른 이들의 일-경고문, 홍보글, 신입직원 모집 같은 것에서부터 심지어 보고서 초안 작성도 있었다-도 하고 있었다. 모두 한숨을 쉬며 대략 업무 분배를 끝나고 나니 탕비실 청소와 설거지, 최부장의 커피 심부름이 남았는데, 처음엔 누구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나 하면 되는 것이지’라고 하며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점심. 최부장은 커피를 내오라고 했지만 모두 눈치만  , 선뜻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단다. 뒤늦게 최부장은 내가 없는  알고 어디 있냐고 물었고, 퇴사했다는 말에 ‘그럼 다른 사람이 줘야 하는  아니냐, 내가 우습게 보이냐 사무실을 뒤집어 놓고 갔고, 그걸  다른 부장이 커피 타는  그렇게 큰일이냐고 화를 내며 여직원들에게 요일을 정해 커피 심부름을 하라고 했다. 여직원이 없으면 나이가 어린 남자 직원이  일을 대신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사무실을 찾아오는 손님이 왔을  누구도 일어서서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고, 그가   남은 설거지도 점차 쌓여갔다. 설거지할 컵을 만든 사람이 해야 하는 거라고 했지만 모두 그걸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엔 누가 어떤 컵을   썼는가로 다투기도 했단다. 나는 그게 그렇게 화를 내고 싸울 일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결국 탕비실의 컵은 모두 일회용으로 바꾸고, 음료도 드링크제만 사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의뢰받은 원고를 쓰다 문득 낮에 만난 과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만약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거나, ‘ 내가  그걸 ?’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나처럼 같지 않은  해야  때가 있다. 하지만  ‘같지 않은  들여다보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자신의 빈자리를 느끼게도 하고, 그를 통해 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남다른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께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덕분에 제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대체 불가능한 업무를 하는 직원으로 기억되겠지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특별한 일’을 누구보다 특별하고 소중하게 한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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