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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10. 2023

경단녀, 면접에서 들은 말,말,말

나에게 용기를 줬던 면접관들의 말들은?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이력서만 20군데 넘게 넣었다.   절반은 연락조차 없었고, 절반은 면접 이상의 결과가 있었다.


돈까스집 알바-면접봤는데 집과 가게 거리가 멀어서 탈락

카페 알바-나이가 많아서 탈락

봉사단체 경리-면접을 갔는데 당초 설명한 업무와 달라서 포기

학원 청소 알바-합격. 3개월 근무 후 교통사고로 퇴사

**자동차 홍보사원-최종면접 후 탈락

공기업 사무보조-최종면접 후 탈락

학교 방역도우미-최종면접 후 탈락

한국지식재산보호원 재택근무-서류탈락

건강관리협회 보조-면접 전 개인사유로 포기

공공기관 안내원-합격. 개인사유로 포기


사실 "돈을 벌려면" 더 많은 곳이 있었고, 지원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경력단절녀, 두 아이 엄마(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가능), 특별한 자격증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있어 저들도 겨우겨우 찾은 것이었다. 숱한 면접을 보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고, 또 많은 말을 들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몇몇 이야길 해보고자 한다.


"나이가 되게 많으시네요"

돈까스집과 카페 알바 면접을 갔을때 들은 말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때부터 단기알바를 시작으로 대학교 3,4학년땐 행정인턴십(근로장학생의 일종)으로 로스쿨 행정실에서 근무했다. 6개월간 공백 후 바로 회사 취업을 해서 첫 아이 낳기 전까지 쭉 일을 했다. 비교적 빨리 취업이 되었고, 로스쿨에서 일한 경력이 큰 도움이 되어  일 적응도 빨리 마친 편이었다. 그래서 난 사무실에서 항상 막내였다. 아직 어리잖아, 젊잖아 라는 말을 쭉 들었고, 내 나이가 마냥 어린줄 알았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할때도 '나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돈까스집과 카페 알바를 가니 처음 말이 "아, 나이가 많으시네요"라면서, (본인들의 말은)얼굴만 보고 20대 중후반내지는 많아봐야 30대 초반쯤 되는줄 알았는데, 이력서를 다시 보고 내 나이에 놀랐단다. 좀 난처해하면서 "제가(사장님)나이가 더 적은데 일하실수 있겠어요?"라고 물었고(두 사장님 다 굉장히 정중했다) 나는 사장-아르바이트 사이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거니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몇몇 형식적인 질문을 마치고 커피 한 잔 얻어마시고 나왔다. 이후 연락은 없었다.

그날 저녁, 애들 아빠에게 "오빠, 내가 면접보고 왔는데 나보고 나이가 많다더라."고 했더니 뭐 그런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너도 이제 적지는 않지"라고 홀랑 들어갔다. 아, 내가 나이가 많구나. 그러고 거울을 보니 안보이던 모공도 뻐금하니 보이고, 눈가랑 입가에 잔주름도 자글거린다. 아껴서 쪼끔씩 바르던 비타민 앰플과 아이크림을 아주아주 듬뿍 발랐다. 그래봤자 36살이 바뀌진 않겠지만.


"굉장히 열심히 사셨네요"


공기업 사무보조 면접을 보러가서 들은 말이다. 공기업 면접은 처음이라 잔뜩 힘을 주고 갔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무척 캐주얼했다. 나 말고 두명의 면접자가 더 있었는데, 둘 다 나보다 한참 어려보였다. 이전에 나이로 떨어진 일이 있었고, 내 앞의 면접자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벽 하나 사이에 두고 면접이 이뤄져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들렸다)나는 오늘도 떨어졌구나 하고 마음을 놨다. 세 분의 인상 좋은 직원들이 계셨고, 차와 쿠키도 재차 권하셨다. 업무와 관련한 질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이가 둘 있다는 점, 업무와 관련한 경력은 있지만 회계 프로그램은 다뤄본적이 없는 부분에서 세 사람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며 난처해했다.

그러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중간에 계신 분이 내 이력서를 다시 훑어보다가 "어"라고 멈칫하셨다. 내가 저기 뭘 썼지? 빠르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복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랄만한건 없는데. 싶던 차에 그 분이 "흠"하더니 "와 지원자님의 수상이력이랑 봉사활동을 보니 대단하시네요. 아이도 둘 키우신다면서 이런건 언제 응모하셨어요?" 뜻밖에 질문에 얼떨떨했다. 좌우에 있던 면접관들도 보더니 "와"하고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이것만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네, 저는 경력이 단절된 기간 동안 그 단절을 뭐라도 해서 채우고 싶었습니다. 업무의 감과 글쓰기 기술을 조금이라도 익히려고 다양한 공모전에 지원을 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는지 늘 찾아봤습니다. 돈이나 물질적인 부분도 있으면 좋겠지만,그보다 제 자신의 스펙을 키우기 위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내 대답에 세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질문을 던진 면접관이 날 쳐다보면서 "지원자님, 지원자님은 굉장히 열심히 사셨네요. 아주 멋집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내가 아등바등 거리며 열심히 산 것을 알아주다니,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것 같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면접비 2만원을 주셨다. 이후 연락은 없었다. 하지만 난 기회가 된다면 그 회사에 또 지원하고 싶다. 기회는 없겠지만.


"지원자님은 굉장히 당당하시네요. 저희 회사에 일하기엔 너무 그릇이 큰 분이라 아깝습니다"

공공기관 안내원 채용공고가 올라왔는데, 근무시간도 좋고 4대보험지원 등 대우도 좋았다. 성의껏 이력서를 적어 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8명의 지원자가 면접을 본다고 했다. 안내직원은 보통 젊은 사람을 쓰는데다 나는 이 부분에 경력은 거의 없어서(의전과 민원응대, 행사안내 경력이 있을뿐 안내데스크에서 안내원을 해본 적은 없었음) 면접 연락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좀 놀랐다. 면접을 보러 가니 내 앞의 지원자와 그 뒤의 사람이 있었다. 모두 나보다 젊고 용모도 빼어났다. 음 난 오늘도 떨어지겠군. 마음을 싹 비웠다. 얼마나 비웠는지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 안내데스크 업무 지원자 ***입니다."로 끝냈다. 더 할말이 없냐해서 멋쩍게 웃었다. 질문 중 "월급이 적고 근무시간이 짧은데 괜찮냐?"고 해서 "네, 아이가 둘 있어서 이 시간이 제가 일하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고 했더니 "아, 기혼자세요? 아이가 둘 있으세요?"하며 놀랐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엔 결혼유무와 가족관계를 적지 않아서 몰랐나보다. 난감해하는 모습에 '음 역시 난 떨어졌군'싶었다.

이후 업무와 관련한 질문이 이어졌다. 민원응대요령이나 안내원 업무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모두 내가 이전 회사에서 겪은 일들이라 그 일을 예시로 들면서 이러이러하게 대처했다고 했다.

애당초 이 면접에서 난 떨어진 사람이다 단정짓던 중 내가 아는 부분, 내가 겪은 일과 그 대처에 대한 질문을 받자 신이났다. 그곳은 장애인도 이용하는 시설이었는데 "평소 장애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냐"는 말에 "저희 어머니또한 청각장애신데, 한번도 어머니가 장애인이라 특별히 대하거나, 그 분이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물론 장애등급이 낮으시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한 건 아니지만. 겪어보니 장애인/비장애인은 서류에나 적힌 말일뿐, 모두 동등한 사람이고, '장애인이라 이래야한다'가 아니라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도움을 주거나 대응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행히 내 대답이 나쁘지 않았는지 면접관들은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면접관 한 분이 내 경력과 수상이력, 봉사경력을 보면서 "아유, 지원자님 이력서에 우리 회사 업무는 너무..."말을 끊더니 "지원자님이 여기 일하시기엔 지원자님 그릇이 너무 커서 참 아깝네요"하면서 연신 이력서를 넘겼다. 인사치례지만 듣기 좋았다. 내가 허투로 살진 않았구나, 서류상에 적힌 내 이력에 사람들이 날 인정해 주는구나. 그날 많은 이야길 나눴고,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이후 합격했지만 급작스런 사정으로 하루 일하고 그만둬야했다. 하루 인수인계를 받은 와중에 업무 매뉴얼도 만들어놨던터라 더 아쉬웠다. 만들어둔 업무매뉴얼은 직원에게 전해드렸다. 내 경력을 인정해주고, 노력을 알아준 면접관들에 대한 나의 작은 성의였다.


오늘도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사람인'과 '워크넷', '인력풀'을 차례로 훑어보며 새로운 채용공고를 보았다. 괜찮다 싶으면 시간이 안맞고, 시간이 맞으면 회사가 멀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허탕이다. 이력서를 쓰지 않는 날엔 공모전과 각 구군청SNS에 기자단이나 홍보단, 모니터단 공고가 있는지 본다. 새마을금고 공모전 접수가 얼마 남지 않은것을 알고 이전에 적어둔 초안을 다시 꺼냈다. 이력서의 한줄을 위해 오늘도 한 페이지의 원고를 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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