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안수는 급한 불을 끄더라도 순찰 시간까지 참기로 했다. 어차피 15분 뒤면 정기 순찰을 돌아야 한다. 15분… 참을 수 있을까? 안수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의지의 소관이 아니었다. 안수는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허리춤을 더듬어 권총집이 정위치에 달려있는지 확인했다. 순찰 준비 완료. 안수는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서두른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안수는 9분 일찍 보안실에서 나왔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에 종종걸음이 안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쿵, 문이 닫히고 띠리릭, 개폐 알림음이 멀어졌다.
안수는 무사히 일을 처리했고 순찰 시간도 맞췄다. 순찰이라고 해봐야 3층 건물을 도는 게 전부다. 지하 연구동은 승인받은 제한 인원이 복장을 갖춰야만 들어갈 수 있어서 경비는 그 앞까지만 살피면 된다.
안수는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101호부터 319호까지 문고리를 한 번씩 잡았다 놓았다. 다른 사람들과 하나 다른 점은 안수는 문고리를 잡았다 놓으면서 CCTV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수 나름의 습관이었고 장난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인간은 이유 모를 행동을 한다.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안수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보안 팀장에게 어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보안 팀장은 야간 근무 영상을 무조건 확인한다. 지하 연구실 문고리를 마지막으로 안수의 근무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안수는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보안실로 올라왔다.
안수는 보안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였다. 딱 한 뼘. 보안실 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 개폐 알림음을 들었다. 확실해? 안수는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삼킬 침이 없었다. 파운드케이크 탓인지 긴장한 탓인지 입안은 비이켄 분지만큼 메말라 있었다.
비이켄 연구소에 투입하기 전, 급히 수료증을 따기 위해 들은 보안 관련 수업에서 딱 하나만 실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절대 기억을 믿지 말라. 익숙한 업무 반복에서는 반드시 명심할 것. 안수는 수개월 지겹도록 반복한 행동이 기억에 끼어들었는지 오늘 겪은 일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기억을 믿을 수 없었다. 루나 드링크를 마시지 않아 졸렸던 걸까?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야? 솔직히 졸리긴 했다. 하지만 졸지 않았다. 절대 자지 않았다.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말이다. 팽팽하게 잡아당긴 긴장은 눈꺼풀 위에서 방방 뛰던 잠의 요정을 내쫓았지만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배가 아파서 정신이 없었던 걸까? 아니야. 순찰 가기 직전이었어. 서두르지도 않았잖아. 문닫히는 소리도 들었고. 설마……
그만!
끝없는 자기 변호 속에서 안수는 소리쳤다. 제멋대로 떠들 시간에 눈앞에 닥친 현실부터 해결하는 편이 낫다.
안수는 숨을 고르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펄스 피스톨을 빼들고 왼발로 비스듬이 열린 문을 열었다. 보안실 불이 꺼져 있었다. 이상했다. 에너지를 아끼라 누누이 말하는 보안 팀장도 야간 근무만큼은 예외로 두었다. 졸지 않을 수 있다면 시력을 잃을 만큼 가장 밝게 해놔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수는 야간 근무를 설 때는 중상 단계 이상으로 불을 밝힌다. 그런다고 잠이 싹 달아나는 건 아니지만 꽤나 도움이 된다. 순찰을 나설 때도 끄지 않았다. 순찰은 30분 남짓이면 충분하고, 돌아왔을 때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건 무섭다.
안수는 전방으로 총구를 향한 채 벽을 더듬었다. 탁. 스위치를 켜자 밝은 빛이 눈으로 쇄도했다. 안수는 복도로 튀어나와 벽에 등을 붙였다. 눈이 빛에 익숙해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 안수는 귀를 활짝 열고 방아쇠에 검지를 붙였다. 눈은 복도로 흘러나온 빛을 길잡이 삼아 점점 빛에 익숙해졌다. 안수는 총구를 전방으로 뻗은 채 다시 보안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보안실 출입구는 지금 안수가 막고 서있는 이 문 하나뿐이다. 만약 몸을 숨긴다면 문과 벽 사이 공간밖에 없었다. 안수는 재빨리 몸을 돌려 문 뒤를 겨냥했다. 아무도 없었다. 안수는 안전을 확보한 공간에 등을 맡기고 문을 잠갔다. 띠리릭. 개폐 알림음이 났다.
보안실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아무것도 없었다. 보안실은 고작 다섯 평에 불과해 숨을 곳이 없었다. 천장에 뜯어진 틈이 없나 살폈지만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환풍구인데 사람이 들어가기엔 작고 좁았다. 들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높았다. 책상 위에 의자를 놓아도 제자리에서 2미터는 뛰어야 닿을 수 있는데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리는 것부터가 고난이도다. 보안실에 있는 의자는 바퀴 달린 의자뿐이었고, 만약 성공했다면 책상 위에 의자가 올라가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마땅한데 그런 흔적은 없었다. 먹다 남은 파운드케이크와 반쯤 남은 물병이 나갔을 때와 같은 위치에 있었고, 여전히 CCTV는 어둠을 찍고 있었다. 안수는 펄스 피스톨을 권총집에 돌리고 의자에 앉았다.
안수는 보안 서버에 접속했다. 기억은 못 믿어도 기록은 믿을 수 있다. CCTV 속 안수는 불을 끄고 켤 생각도 못하고 보안실에서 급하게 뛰쳐나갔다. 안수는 천천히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활짝 열렸던 출입문은 도어 클로저 덕분에 천천히 닫혔다. 출입문이 완전히 닫히자 잠금 표시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안수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짚었다.
안수는 빠른 탐색을 위해 재생 속도를 1.5배속으로 올렸다. 순찰은 적어도 20분은 걸린다. 레코드 타임이 10분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화면이 치지직거리더니 보안실 불이 나갔다. 레코드 타임이 5분을 건너 뛰었다. 안수는 영상을 되감고 재생 속도를 정상 속도로 돌렸다.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이 꺼지기 몇 분 전부터 레코드 타임이 몇 초씩 구간을 건너 뛰었다. 누군가 영상을 잘라내었다, 고 생각 할 순 없었다. 전파 간섭이 더 타당해 보였다. 루나시티에서 지구로 전파를 쏠 때 드물게 전파 간섭이 일어나 영상 녹화나 서버 업로드에 영향을 주곤 한다. 우주 방사선이나 태양풍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주는 아직 인간이 밝히지 못한 현상들로 차고 넘친다. 이번에도 그 영향 때문일까?
안수는 눈이 따가웠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모니터를 살핀 탓이었다. 목도 말랐다. 안수는 반절 남은 물을 전부 마셨다. 그래도 갈증을 떨칠 수 없었다.
전부 착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안수는 지금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루나 드링크가 없어서 그래… 바보 같은 변명이다. 아직 반 년은 비이켄 연구소에 더 있어야 한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개인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면 계약금은 물론 배상금까지 뱉어야 한다. 페이가 센 만큼 사람을 뽑는 데에도 공을 들였는데, 예고 없는 이탈은 기업 측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절대 사양이다.
안수는 녹화 영상을 처음부터 재생했다. 문틈 사이로 펄스 피스톨 총구가 튀어나왔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검은 그림자가 벽을 더듬었다. 공간이 밝아지면서 검은 그림자가 보안실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러기를 23초. 문틈 사이로 총구가 반짝였다. 다시 보안실로 들어온 안수는 잔뜩 긴장을 잡아먹은 얼굴로 재빨리 등뒤를 살폈다. 안수는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고 천장과 바닥을 살폈다. 아무도—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안수는 권총집에 펄스 피스톨을 되돌렸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안수는 보안실을 나서기 삼십분 전으로 영상을 되감았다. 00시 근무자가 나간 후 안수는 줄곧 혼자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영상을 봐도 바뀌지 않을 사실이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결과를 얻은 지금, 안수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보안 팀장은 출근하자마자 야간 근무자에게 보고를 듣고 CCTV 영상을 확인한다. 이것은 근무자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가 아니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보안 책임은 경비팀 최고 결정권자인 보안 팀장에게 있다. 기억을 믿지 말아라. 기록을 믿어라. 보안 팀장의 좌우명이다. 만약 보안 팀장이 안수가 허둥대는 영상을 보면 야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것이고, 안수는 솔직하게 보고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지만 먼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이 이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실낱만큼이라도 있으면 안수에게 십자가를 지울 것이다. 돈이든 죄든. 안수는 선택해야 했다. 솔직하게 보고 하느냐. 아니면……
04:58 LST. 다음 근무자가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안수는 절대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동안 두 선택의 무게를 가늠했고, 하나를 선택했다.
아무도 모르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안수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보안 서버에 접속해 CCTV 원본 영상을 다운 받아 서버에 있는 영상을 삭제했다. 그리고 영상을 아주 조금 잘랐다. 더도 덜도 말고 5분이었다. 순찰에서 돌아와 불 꺼진 보안실을 탐색하던 5분. 이 부분은 이상 현상 때문에 지워진 것이다. 태양풍이 불었고 우주 방사선이 지나갔고 간섭 전파가 방출한 것이다. 우주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안수는 기록 시간을 조작한 편집 영상을 보안 서버에 올렸고, 현 시점부터 영상이 이어서 기록되도록 조치했다. 이것이 결과로 남은 유일한 진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