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안수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벌벌 떨었다. 그 일이 무슨 일인지 가늠조차 못하면서 연구소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도 온몸을 땀으로 적셨다.
“너, 그거 루나 드링크 때문이다. 작작 마셔.”
애덤이 툭 건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줄이고 있어.”
“그래서 하루에 얼마나 마시는데. 3캔? 2캔?”
“여섯 캔.”
“얼씨구, 많이도 줄였다.”
안수는 땀으로 젖은 이마를 훔쳤다. 애덤은 의자를 끌어 안수 옆에 앉았다.
“진짜 병원 안 가봐도 돼? 살도 많이 빠진 거 같은데.”
“아냐, 괜찮아. 어제 좀 덥다고 에어컨을 세게 틀었더니…”
“야, 돈도 돈인데 건강이 최고다.”
“잔소리는. 나 근무 들어간다.”
안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힘들면 바꿔줄게.”
“마음에 없는 소리는. 나 진짜 괜찮아.”
안수는 의자를 책상에 밀어넣고 휴게실을 나왔다.
야간 근무만 서면 그날 밤의 기억이 안수를 괴롭혔다. 안수는 야간 근무 때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다. 혹시나 모를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차단했다. 일초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권태로운 일상이 지겹도록 반복하고, 안수를 팽팽하게 당긴 긴장의 끈도 느슨해졌다. 안수의 기억에서도 기묘한 그날 밤이 사라질 즘이었다. 지구연합과 루나시티의 관계가 낭떠러지로 치닫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이켄 분지 가스 유출 사고’. 일명 ’비이켄 참사’로 불리는 본 사건은 비이켄 연구소에서 유출된 정체불명 가스가 비이켄 타운에 사는 영아 47명에게 치료 불가능한 후유증을 남긴 끔찍한 사건이다.
비이켄 연구소 연구소장은 작금의 사태를 통감하고 미흡한 관리에 책임 지고 사퇴했다. 연구소를 소유한 트러스트 사도 루나시티 지부장이 직접 죄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비이켄 타운에서 요구한 배상금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루나리안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루나시티 정부는 단순 사고일 뿐이라는 연구소에서 제출한 증거를 하나도 믿지 않았다. 수정 기록이 남는다지만 일지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고 수정 기록조차 지울 수 있다. CCTV 영상은 그들의 의심을 지지하듯 부분적으로 결손했다. 루나시티 정부는 걸리지 않았을 뿐 분명 비이켄 참사 같은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지구연합은 지리멸렬한 음모론을 막지는 못할 망정 루나시티 정부가 나서서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 사건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를 건넸고 기업이 항소하지 않도록 압박할 테니 섭섭하지 않을 만한 배상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피해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돈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무마한다고 울부짖었다. 돈으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미래를 되찾을 수 없다. 빼앗긴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재판이 길어졌다. 피해 가족은 아이들의 넉을 달래줄 수 있도록 서둘러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루나시티 정부는 다른 생각이었다. 루나시티 정부는 피해 아이들과 가족들은 안중에 없었다. 어차피 트러스트 사에서 배상금을 넉넉하게 내놓겠다고 했으니 피해 아이들 가족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다만 조금 더 시간이 끌릴 뿐이다. 어느새 비이켄 참사는 실험 통제권을 지구연합에게서 가져오기 위한 칼과 총이 되었고, 재판도 실험 통제권의 소유권을 다투는 재판으로 변질되었다.
지구연합 재판관 셋과 루나시티 재판관 셋이 모여 내린 1심 결과는 비이켄 연구소의 유죄였다. 당연한 판결이다. 하지만 요점이 쏙 빠져 있었다. 오로지 배상금에 대한 판결뿐 실험 통제권은 여전히 지구연합이 가지고 있었다.
2심에서 루나시티 정부는 재판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증거가 아닌 증인들을 끌어모았다. 연구원들과 보안 경비들. 그 사람들을 전부 조사하고 사정 청취를 했다. 거짓말 탐지기까지 사용했는데 한 경비원에게서 유의미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안수였다. 거짓말 탐지기 결과는 정식 증거로 삼을 수 없으나 참고할 수 있다. 지구연합은 거짓말 탐지기에 의존하는 루나시티 정부를 비웃었다. 루나시티는 실험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다면 비웃음을 사도 좋았다. 루나시티 정부는 안수가 주요 인물이라는 증거를 하나 더 찾았다. 야간 순찰을 돌 때마다 CCTV를 향해 흘린 안수의 묘한 웃음이었다. 이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반드시 의중을 밝혀야 한다고 안수에게 이동 감시 및 출국 금지 처분을 내렸다.
안수는 모든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수당 지급도 중지되었다. 트러스트 사는 루나시티 정부 몰래 안수와 접촉해 그날 밤에 대해 물었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급여도 재개하고,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손해배상을 물지 않겠다고 회유했다. 밑도 끝도 없이 뒤를 봐주겠다는 약속도 건넸다. 하지만 안수에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안수는 CCTV 영상에 손을 댄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고, 고백해도 원본 영상을 삭제해서 진위여부를 가릴 방법이 없었다. 안수는 입을 다물었다.
기묘한 그날 밤은 덧난 흉터처럼 안수의 머릿속에 남았다. 혹시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이 비이켄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솔직하게 팀장에게 보고했다면 자신이 주목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이젠 후회해도 돌아갈 수 없다.
비이켄 참사에 대한 증거와 증언이 쏟아졌다. 사실인 것도, 거짓인 것도 섞여 있어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가능성의 탈을 뒤집어쓴 음모론도 쏟아졌다. 비이켄 참사가 관리 미흡이 아닌 테러라는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만약 테러범의 소행이라면, 지구연합 출신이 아니라 루나리안일 확률이 높았다. 루나시티 과격분자는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지구연합 시설 테러 예고도 수차례 했었다. 루나시티 정부는 몇 번인가 그들을 잡아들였고, 그들이 비이켄 연구소 같은 기업 시설을 겨냥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언제나 처음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루나시티 출신 테러범의 소행이라면 비이켄 참사의 원인은 루나시티에게 있었다. 그러면 루나시티에 불리한 여론이 생기겠지만, 루나시티 정부가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루나시티가 실험 통제권을 완전히 가졌다면 테러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위험한 실험을 자행하는 연구소를 베드 타운 근처에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루나시티 정부는 재판 결과가 뒤집어지더라도 실험 통제권이라는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밑그림을 그렸다. 이 속셈을 모를 지구연합이 아니었기에 루나시티 테러범의 소행이라는 음모론은 은근슬쩍 뒤로 빼었다.
지구연합과 루나시티는 음모론으로 재판의 방향성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증거와 증언, 증인으로 돌아왔다.
안수가 주요 참고인으로 떠오르면서 루나시티에서 안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안수의 입을 주목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향방이, 나아가 루나시티의 미래가 달라진다. 지구연합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연합은 안수가 함구하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은 증언을 반복하는 것이,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지구연합에게 유리했다. 그렇기에 트러스트 사는 고작 보안 경비에게 증인 보호라는 명목 아래 사설 경호원이라는 감시역을 붙였다. 열린 문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안수는 무려 4년이나 루나시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안수는 주요 참고인으로 다섯 번이나 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에 올라야 할 때면 지구연합과 루나시티는 숙소로 찾아와 온갖 말로 구슬리고 협박했다. 하지만 안수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다. 안수는 그날 편집해서 만든 사실만을 녹음기처럼 재생했다. 그럴 수밖에. 이제는 안수 본인도 보안실이 열린 것도 영상을 지운 것도 정말 겪었는지 헷갈렸다.
재판이 종지부를 찍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판결은 1심 유지. 트러스트 사가 항소할 때마다 배상금은 곱절로 늘었다. 이는 트러스트 사가 의도한 결과처럼 보였는데 천문학적인 배상금으로 지구연합이 가진 실험 통제권을 방어한 느낌이 강했다. 피해 아이들 가족은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재판 결과에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두 손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황금을 얻어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트러스트 사는 배상금 이외에 후유증이 나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의료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고, 아이들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 덕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