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5)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최종 판결이 내려지고 나서야 안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안수는 우주 공항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5년 동안 홀로그램 통화도, 음성 통화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설 경호원이 여기까지 따라 붙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나를 보호할 이유도 감시할 이유도 없잖아.


“저 혼자 있고 싶은데요.”


경호원은 안수를 무시하며 인터콤을 통해 지시를 받았다.


“이제 다 끝났잖아요. 루나시티도 지구연합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잖아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니까요? 그만 날 좀 놔줘요.”


안수는 화도 내고 얼러도 보고 억울해하면서 경호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경호원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안수는 포기했다. 어차피 결정권은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없을 것이다. 이 사람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내가 보안 경비를 한 것처럼. 재판에서 말을 바꾸지 않은 것처럼.


안수는 창문 가까이 섰다. 창백한 파란 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드디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히노데 정거장 발 인천 착 FLTE-371편이 입항하고 있습니다. 해당편을 이용하실 승객께서는 원활한 탑승을 위해 미리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안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 손잡이를 잡자 갑자기 경호원이 안수의 팔을 붙잡았다.


“왜 이래요.”


안수는 당황하며 손을 빼려했지만 원체 단단히 잡은 터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리 지를 거예요. 이거 놔요.”


“저 우주선을 타면 위험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안수가 더욱 격렬하게 손을 뿌리치려 할수록 경호원은 더욱 더 세게 힘을 주었다.


“당신을 노린 테러 첩보를 얻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우주선을 타야 합니다.”


“농담도 심하시네. 이거 놔!”


안수는 경호원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사실로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신들 때문에 나는 또 몇 시간을 버려야 해! 우주선에 오르지 못한 안수가 경호원에게 화를 내는 동안 FLTE-371편은 히노데 정거장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에 휩싸였다. 우주선 안으로 파고 든 폭발은 우주선을 휴지조각처럼 산산조각 내어 사방으로 흩뿌렸다. 안수의 등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젖었다.


“정말 왜 이래. 다 끝났잖아. 날 죽여서 뭐 어쩌라고……”


안수는 경호원에게 매달렸다.


“당신도 봐서 알잖아. 나는 계약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니까? 난 아무것도 몰라. 정말!”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


경호원은 울상이 된 안수를 끌고 개인 우주선에 실었다. 안수는 행선지도 모른 채 히노데 정거장에서 멀어졌다.


우주선이 도착한 곳은 미리내 정거장이었다. 미리내 정거장에는 탑승객이 한 명도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불 꺼진 낡은 인공지능 모델만 보였다.


경호원은 검정 재킷 안주머니에서 군데군데 칠이 까진 디바이스를 꺼내 안수에게 내밀었다.


“잘 들으십시오. 당신은 이제 우안수가 아닙니다. 패어루스 존스(Faruth Jones)입니다.”


디바이스는 안수 사진에 엉뚱한 이름이 붙은 식별 아이디를 띄웠다. 경호원은 홀로그램을 끄고 안수 손에 억지로 들렸다. 경호원은 다시 재킷 안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더니 신용 카드를 꺼냈다.


“감사의 뜻을 담았습니다.”


안수는 엉겁결에 카드를 받았다.


경호원은 얼떨떨해하는 안수를 팔짱 끼고 정거장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고, 유도등만이 파랗게 길을 밝혔다. 유도등이 끊어진 곳까지 한참을 들어간 끝에 소형 우주선이 나타났다.


“이걸 타고 가세요.”


“이게 뭔데요. 저, 저기요! 말 잘 들을 테니까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인원이 도와줄 겁니다.”


경호원은 안수와 캐리어를 우주선으로 밀어넣었다. 안수는 아둥바둥 버티려고 했지만, 우주선 안에서 경호원과 똑같은 정장을 입은 사람이 안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안수 목덜미에 주사를 놓았다. 안수는 젖은 이불처럼 축 늘어졌다.


안수는 인증받은 부자들만 거주할 수 있는 카로라 섬 어느 별장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구로 돌아와서 안수는 좋았지만 자유는 없었다. 반 년은 별장 부지 내에서만 지내야했고, 반 년이 지난 후에도 카로라 섬 밖으로 나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허튼 짓을 하려고 하면 경찰이 초인종을 눌렀다. 별일 없으시죠?


트러스트 사는 안수의 부모에게 우주선 사고로 안수가 목숨을 잃었다고 알렸다. 모든 책임이 폐사(弊社)에 있다며 아들의 죽음이 축복처럼 느껴질 만큼 막대한 배상금을 안겼다.


패어루스가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안수는 덧쓴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았다. 애초에 패어루스라고 소개할 기회가 없었다. 이웃은 수십 개의 별장을 소유한 부자들이었고, 가끔 놀러 올 뿐 이웃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별장 관리인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는 안수도 패어루스도 아닌 전혀 엉뚱한 이름으로 불렀다.


안수는 눈이 떠지면 일어났고 졸리면 잤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기묘했던 그날 밤이 비이켄 참사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수년에 걸쳐 면밀하게 조사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기계 결함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결론에 귀결했다. 안수는 비이켄 참사와 재판을 비롯한 지구연합과 루나시티 사이에 발생한 모든 일이 그날 밤, CCTV가 기록하지 못한 10분 사이에 일어난 것만 같았다. 왜 하필 내가 근무 중일 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날이거나 다음날이었다면, 적어도 나와 상관없는 시간에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안 팀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안수는 매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되짚었지만, 그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수가 할 수 있는 건 이뤄질지 알 수 없는 바람을 되내는 것뿐이다. 영원한 고통 속에서 자유를 달라고.


안수는 과일이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내려놓고 문고리를 잡았다. 후회할 거야. 안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야말로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다.


안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어스름한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희미한 어둠 속에 숨어있을 암살자에게 빈틈을 내주었다. 목덜미를 편히 물어뜯을 수 있도록 두 팔을 벌려 몸을 십자로 만들고, 눈을 감았다. 언젠가 찾아올 끝을 그토록 기다리고 바랐지만 갑자기 다가올 사신의 낫은 여전히 두려웠다.


안수는 양팔을 벌린 채 거실 한가운데 섰다. 십자가에 매달린 구도자(求道者)처럼 답을 갈구하며 그 자리에 꼿꼿이 서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도 그날이 아니었다.


멀리서 먼동이 트였다. 스스로 덮은 어둠은 점차 힘을 잃었고, 붉은 세상이 시신경을 태웠다. 안수는 바닥에 떨어진 가슴을 추스리고 눈을 떴다. 눈부셨다. 한 뼘 열린 마당 통창으로 비릿한 바다 내음을 실은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수년 째 자르지 않아 긴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안수는 한 발 한 발 어둠을 헤쳤다. 이윽고 마당 통창에 닿았고, 그것을 활짝 열어젖혀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투명하고 푸른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산산이 부서졌다. 바다 내음이 진해졌다. 이름 모를 바닷새가 울음소리를 내었다. 야자수 잎이 흔들렸다. 서쪽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동쪽 하늘은 태양이 하얗고 푸른 아침을 밀어올렸다.


안수는 고개를 젖혀 밤과 낮, 그 경계를 그을 수 없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밤과 낮, 그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시간에 젖어 기울기 시작한 달을 보았다. 창백한 눈이 무수히 그를 바라보았다.


안수는 그만 고개를 떨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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