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1)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시머드는 월요일을 좋아했다. 일요일 저녁, 관광객과 서퍼들이 배에 몸을 실으면 타로마 섬은 바람과 파도만 남는다. 시머드는 하늘 높이 나는 노란 눈 갈매기와 하얗게 부서진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거닐며 지금의 평화를 곱씹었다.


시머드는 카로라 제도에 속한 다른 섬을 원했지만 가짜 신분으로는 타로마 섬에 정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타로마 섬에 발을 들인 하루 만에 시머드는 이곳이야말로 자신이 바라던 낙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시머드는 선베드에 누워 노을을 올려보았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붉은 흔적을 남겼고, 흔적을 따라 밝은 밤이 하늘을 덮었다. 시머드는 위스키 한 모금을 머금으며 겨우 거머쥔 행복을 소중히 다루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이것은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했고 깨지지 않을 것이며 깨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피투와 케니를 보았을 때, 시머드는 제 뺨을 꼬집었다. 어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다고. 꿈을 꾸고 있다고. 꿈에서 깨야 한다고. 아야. 시머드는 집게로 만든 손가락을 펴 볼을 문질렀다. 더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은 옛 동료의 등장에 시머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단호하게 거절했다면 피투와 케니는 얌전히 돌아갔을까. 시머드는 머리를 굴렸지만 이미 피투와 케니는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뒤였다. 시머드가 서둘러 가정부와 정원사를 돌려보내는 사이, 피투는 거실을 점거했고 케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필수 식량이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입구 가까이에는 청소기를 비롯한 청소 도구가 놓여 있었다. 시머드가 손수 관리할 리는 없고, 가정부가 사용하는 모양이다. 지하실 한쪽 구석에는 선반에 올라가지 않는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고 딱 봐도 용도가 불분명했다. 케니는 고고학자처럼 그것들을 신중하게 살피다가 오래 전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을 발견했다. 이음새 하나 없는, 매끈한 은고리였다. 케니가 은고리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은고리는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처럼 고고히 빛을 내고 있었다. 케니는 잊을 수 없었다. 어차피 팔 거라면 내게 달라고, 값을 치르라면 돈을 내겠다고 말했지만 피투는 절대 안 된다며 잡동사니에 던져버렸다. 피투의 명령은 절대적이니 케니는 쥐죽은듯 가만히 있었지만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케니는 은고리를 요리조리 살피며 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제조사도 사용법도 하물며 전원 버튼도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명의 장치가 점점 신비하게 느껴졌다. 크기를 보아하니 머리에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케니는 망설임 없이 뒤집어썼다. 간신히 머리를 통과한 은고리는 초커(choker)처럼 목에 딱 붙었다. 목에 거는 게 아닌가. 케니는 금방 벗었다.


끈질기게 은고리에 집착하던 케니는 이것이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전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전부 팔아서 똑같이 값을 나누는 게 규칙이다. 하여튼 지만 깨끗한 척 똑똑한 척하더니 뒤에선 호박씨 깐다니까. 케니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머드!”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가정부를 억지로 배웅한 시머드의 귓구멍에 불청객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시머드의 미간이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잡동사니는 다 팔아서 나누기로 했잖아!”


씨발. 시머드는 밀려드는 욕지거리를 참지 못했다. 타로마 섬에 정착한 후로 시머드는 욕을 한 적이 없었다. 내면에 여유가 깃든 시머드는 부처만큼 자애로웠다. 그런 시머드를 케니는 단번에 흠집 냈다. 대체 뭘 끄집어내고 있는 거야. 허락 없이 남의 집을 뒤지지 말라고 부모님한테 안 배웠나? 아, 저 자식은 고아라고 했었나? 상관없어. 성인이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먹어!


“케니! 제발 허락 없이 뒤지지 좀 마!”


“시머드, 진정해. 케니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야? 익숙해질 만도 하잖아. 꼭 지적해야 성이 풀려?”


“다짜고짜 찾아와서 남의 집을 들쑤시는데 가만히 있으라니. 피투, 드디어 너도 미친 거냐?”


피투는 어깨를 들썩이곤 거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케니 좀 내버려둬. 어련히 잘 하겠지. 애지중지하는 위스키라도 깰까 봐 그래?”


이제야 어린 티를 벗은 피투는 고작 세 살 차이나는 케니를 어린애 다루듯 했다.


시머드는 피투를 노려보았다. 피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다리를 외로 꼬면서 제 집 같이 아주 편한 자세로 소파 등받이에 양팔을 넓게 벌려 걸쳤다.


“그리고 시머드, 손님 왔는데 고용인을 다 보내면 어떻게 해. 우리는 손님도 아냐? 대접이 아쉽네.”


피투는 입을 쩝쩝 다시며 눈동자만 굴려 집안을 훑었다.


“스크린도 없고 책도 없고 오디오도 없고. 무슨 재미로 살아?”


“남이사 뭔 상관이야.”


“번 돈이 얼만데 명화 하나 정돈 걸어 놔. 교양 있어 보이고 좋잖아.”


“어떻게 들어온 거야?”


“우리 말고도 무더기로 들어오던데? 목이며 팔이며 뒤꿈치까지 문신한 사람들 봤어? 떡대도 어마무시하고. 어후, 무서워서 한참 피해 다녔네. 이제는 신원 확인 안 하나 봐? 카로라 제도도 개나 소나 찾는 삼류 관광지 다 됐어.”


시머드는 이유 모를 모욕감에 수치심을 느꼈다.


“피투……!”


피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검지, 중지 끝을 모아 비볐다.


“당신도 돈으로 여기 기어들어왔으면서 우리라고 못할 게 있어?”


“너 같은 놈들 안 보려고 여기에 기어들어온 거야.”


시머드는 어금니를 부득부득 갈며 화를 꾹꾹 눌렀다.


“그렇다면 안 됐네! 돈지랄만 했어!”


피투는 소파 팔걸이를 팍팍 힘껏 내리치더니 몸을 돌려 팔걸이에 발을 올렸다. 제발. 인도코끼리 천연 가죽으로 만든 소파야. 함부로 다루지 좀 마! 피투는 실실 웃으며 시시각각 일그러지는 시머드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피투는 흔들리는 시머드를 보면 즐거웠다. 시머드는 냉정한 척하지만 감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누구나 다혈질인 걸 아는데 악착같이 숨기려는 꼴이 우스웠다.


“피투, 용건이 뭐야. 뭔진 모르겠지만 빨리 해치우고 꺼져.”


시머드는 아끼는 소파에 앉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그 앞을 왔다갔다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손님한테 커피 한 잔 내주지 않는 건 진심 서운한데.”


“커피 마시면 갈 거야?”


“나 정말 서운해지려고 그래. 시머드, 당신이 이 집에 살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인데, 매정하게 굴면 써?”


“덕분? 지금 니가 보태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니면 내가 놀면서 돈 받았냐? 엄연하게 나는, 노동의 대가로 내 집을 꾸린 거야. 이걸 너네 덕분이라고 말하면 도둑놈 심보지.”


시머드는 양팔을 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투는 시머드의 시선을 따랐다. 아무것도 없구만. 피투는 콧방귀를 뀌었다.


“도둑놈이 도둑놈 심보인 게 이상해?”


피투는 목젖을 내보이며 깔깔 웃었다. 능구렁이 같은 새끼. 어린놈의 자식이 이빨만 잘 까선…… 시머드는 속으로 씨발, 씨발을 외며 용건이나 빨리 꺼내고 꺼지길 바랐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대체 왜 왔는지 용건부터 말해. 내가 없었으면 어쩌려고 연락도 없이 와.”


“없으면 없는 대로 다 할 일이 있지요.”


시머드의 눈빛이 ‘작업’할 때처럼 날카로워졌다.


“우리 집이 과녁이었어?”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섭한 소릴. 이래 봬도 나 상도덕은 있어.”


“우리 집 털려다 니 손모가지 잘린다.”


“정말 아니래두. 사람 말 참 못 믿어. 그 성격 덕분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장수하시겠지만 말이야. 시머드, 내가 당신한테 거짓말 한 적 있어? 쓰읍. 내 기억엔…… 없는데?”


피투는 팔걸이를 밴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너무 많아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 못하는 거겠지. 시머드는 목구멍이 뻑뻑해졌다. 거실만 아니었어도 침을 한 바가지 뱉었을 것이다.


“알았어. 믿을 테니까 왜 왔는지나 말해. 휴양하려고 가짜 신분까지 만들진 않았을 거 아냐.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아니, 나도 휴양하러 올 수 있는 거 아니야? 꼭 용건 있어야 해? 여기가 어디야. 돈 있는 사람도 줄 서서 들어온다는 카로라 제도. 그중에서 으뜸, 타로마 섬이잖아. 지인 찬스 써서 쉬러 올 수 있잖아. 시머드, 그 정도 못해줘?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진짜 사람, 야박하네.”


피투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샐쭉한 표정을 보니 정말 쉬러 온 건가. 시머드는 헷갈렸다. 하긴 도둑놈이라도 지구에 몇 남지 않은 평화와 평온을 꿈꿀 수 있다. 허락 없이 들이닥친 데다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케니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타로마 섬은 호텔 잡기도 까다롭고 비싸다. 케니 말마따나 지인 찬스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머드는 피투가 낸 빈자리에 앉았다.


“내가 너무 화부터 냈네. 갑자기 들이닥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나 봐. 이 업계가 사적인 친분 쌓기를 멀리하잖아. 쉬고 싶은 거면 진작 얘기하지. 나는 또…….”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사람 참 못 믿어.”


피투는 머쓱해 하는 시머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파안하며 깔깔깔 경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도 쉬었더니 감이 다 죽었네. 표정 봐. 내가 이딴 재미없는 섬에 뭐 때문에 왔겠어.”


“시머드! 이걸 왜 가지고 있냐고!”


케니가 쿵쿵 발을 구르며 거실로 올라왔다. 고리 모양의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넌 아까부터 뭘 뒤져. 남의 집에서!”


시머드는 케니에게서 은고리를 빼앗았다. 아! 케니는 소리를 지르며 왼손으로 오른손가락 끝을 잡았다. 케니는 시머드를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파! 너 때문에 핸들 못 잡으면 책임질 거야?!”


“새끼가 덩칫값 못하고 징징 대기는. 그리고 너? 이 새끼가… 미쳤어?”


시머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케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케니는 시머드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컸지만 기가 눌리지 않았다.


“이 새끼가 피투 봐서 오냐오냐 해줬더니. 내 성격 까먹었냐?”


시머드는 빈 손목에 손을 가져갔다. 케니는 눈을 깔며 입술을 옴짝달싹했다. 어깨를 움츠린 꼬라지가 개미핥기 같았다.


“자, 자. 싸우지들 마시고. 거 참 오랜만에 보면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은.”


시머드는 케니와 피투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케니는 손가락 끝을 잡은 채 시머드를 째려보았고 피투는 싱글싱글 웃었다. 이 자식들이랑 무슨 얘기를 해. 시머드는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피투에게 말해봤자 무시할 거고 케니는 방어 기제가 발동해선 아무 말도 안 하고 안 들을 것이다. 연장자인 내가…… 참아야지. 시머드는 집이 무너져라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런데 이게 뭐냐?”


시머드는 은고리로 케니의 배를 밀었다. 시머드가 힘을 준 만큼 케니가 뒤로 밀려났다.


“집주인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케니는 웅얼웅얼거렸다.


“또박또박 얘기해.”


시머드가 은고리로 케니를 쥐어박으려는 걸 피투가 말렸다.


“딱 보니까 내중력 장치(보조 중력 조절 장치)네. 시머드, 우주 멀미해?”


“우주 멀미 하면서 어떻게 달토끼들 털어먹겠냐? 나, 네가 소개한 의사한테 수술 받았잖아.”


“아, 그랬나? 그, 부작용은 없지?”


아직까지는. 시머드가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게 왜 여기 있어.”


“난들 아냐. 너네가 던져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 아냐?”


“우리가 이걸 왜 가지고 와. 딱 봐도 부스러기 우리 몰래 안 팔고 꿍쳐두려다 걸린 거지. 저번에 내가 사겠다고 하니까 안 된다고 빼앗았으면서!”


“시머드, 왜 그랬어.”


케니는 실실 웃었고, 시머드는 난생 처음 듣는 소리에 억울했다.


“내가 그랬다고? 언제? 말해봐. 언제!”


“몰라. 나한테 그랬어! 그랬다고!”


케니가 발을 구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아니, 내가 언제. 그리고 너, 또박또박 말하라고 했지. 또. 박. 또. 박. 3살이냐?”


올라가는 시머드의 손을 피투가 잡았다.


“그만, 그만. 쓸어담다가 빠졌나 보지. 여기서 내중력장치 쓰는 사람 없잖아. 그치?”


시머드와 케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건 죄다 팔았는데 왜 빠졌지. 다른 건 없었냐?”


“왜 나한테 물어봐. 뒤지지 말라면서.”


“이 새끼가 자꾸.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시머드가 피투의 손을 뿌리치고 케니의 뺨을 올려붙이려고 했다.


“시머드. 제발 그만.”


시머드와 케니 사이에 피투가 섰다. 케니는 이죽거리며 혀를 삐죽 내밀었다. 피투는 뒤돌아 케니를 보며 인상을 썼다. 케니는 혀를 내민 채로 굳었다.


“케니. 너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이 바닥이 족보가 없어도 시머드는 엄연히 선배야.”


“나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무슨 선배야. 맨날 욕하고 손찌검하는데 무슨.”


“야! 내가 너 때린 적 있어? 진짜 줘패버릴라.”


“제발. 그만 좀! 케니, 선배 대우하라는 게 아니야. 네가 존중 받고 싶으면 먼저 예의를 갖춰.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물건에 손대는 게 잘한 짓이야?”


케니는 입을 떡 벌린 채 피투를 바라보았다. 아니, 피투가 뒤지라고…… 피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둑놈 버릇이 어디 가?”


“버릇이면 고쳐. 그러다 괜히 큰 건 잘 넘기고 요상한 걸로 꼬리 잡혀. 이 바닥에 그런 일 비일비재해.”


케니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시머드도 애 좀 가만 둬. 땅거북 새끼도 아닌데 자꾸 욕하고 때리려고 해.”


피투는 시머드가 든 은고리를 빼앗았다.


“말을 들어처먹어야 냅두지.”


“내가 지금 얘기 했으니까 안 할 거야. 케니, 안 할 거지?”


케니는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피투가 시머드를 보았다. 시머드도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 게 없으니까 싸우는 모양인데. 본론 들어갑시다.”


“아까부터 들어가자니까.”


피투는 시머드를 째려보았다. 저놈의 불만 주둥이. 작업할 땐 어떻게 참는 거야. 알았다, 알았어. 장난 친 내 잘못이야. 피투는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은고리로 자기 허벅지를 툭툭 때렸다.


“서서 이러지 말고 우리 앉아서 얘기 합시다.”


피투를 가운데 두고 세 사람은 인도코끼리 천연 가죽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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