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통신 장비를 목에 건 인부들이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서로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철제 상자를 잔뜩 실은 파워 리프터가 덜덜 거리며 지나간다. 철제 상자에는 ‘루나시티’를 상징하는 회색 동그라미가 새겨져 있다. 나는 목에 두른 내중력(耐重力) 장치에서 노이즈 캔슬링 귀마개를 뽑아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소음은 기술의 결정체를 사뿐히 즈려밟고 신명나게 고막을 두드렸다.
대대합실(大待合室)에서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다. 무려 여덟 명이나 앉을 수 있는, 미리내 정거장에서 유일한 벤치를 독차지했다. 사실 대대합실이라 부르기엔 공간이 무척 협소해서 소소합실이라 불러야 할 마땅하겠지만 미리내 정거장에서 탑승객이 앉을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나는 습관처럼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긴 여행을 대비해 예전부터 눈 여겨본 드라마들을 가득 담았지만 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시야 끄트머리에서 분주한 인부들이 신경 쓰였고,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소음에 대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리창 너머 럭비공을 닮은 화물선 한 대가 서브 레그(sub leg)로 우주 정거장을 힘껏 밀어냈다. 네 귀퉁이에 달린 소형 버니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볼 관절을 돌리더니 주황빛 불을 뿜었다. 저 배는 어디로 갈까? 루나시티? 지구? 화물선은 답을 주지 않고선 까만 우주 너머로 사라졌다.
인류는 일찍이 제2의 고향으로 화성을 점찍었다. ‘붉은 별’이라는 낭만스러운 이명에 더해 물과 문명의 흔적은 인간이 지구에서 이끌어낸 부흥을 화성에서도 이뤄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어쩌면 인간은 단순히 지구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 손으로 더럽히고 파괴한 어머니 별에서 멀리.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의 이목은 화성에 쏠렸다.
우리의 기대는 한 사람의 결정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세상 모든 보물이 화성에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던 미국의 한 사업가가 돌연 달에 도시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물음표를 띄웠다. 달은 날씨가 도와준다면 맨눈으로도 모공까지 볼 수 있고, 정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착지 후보 후순위에 올리지 않았다. 더욱이 달은 인류가 당장 눈앞에서 치워야 할 지구 온난화 같은 고질병이나 신종 바이러스 같은 불의의 일격을 해결할 구원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열두 번의 무인 탐사와 두 번의 유인 탐사의 성공은 화성 진출을 기정 사실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사업가는 처음부터 달이 목적이었다며 긴급 발표로부터 100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달에 삽을 펐다. 루나시티. 내 고향의 탄생이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각 나라는 뒤늦게라도 까만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했다. 여기 미리내 정거장도 그렇게해서 만들어졌는데,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개발에 참여했다. 그런 기념비적인 우주 정거장에 ‘미리내’가 붙은 데에는 한국 정부가 쏟은 노력 덕분이다. 미개척지에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우주 기술에 앞서가던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향후 몇 년, 어쩌면 몇 십 년 안에 우주에 흔적을 남길 수 기회는 꿈도 못 꾸니 참여 국가들은 이름 붙이기에 안달을 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필사적이었다. 중국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본보다 먼저 우주에 한글을 새기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 동남북아시아 공동 개발 우주 정거장은 ‘미리내’가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수고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파워 리프터가 주황색 경고등을 번쩍이며 짧은 경고음을 반복했다. 나는 벤치 위로 다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리프터에 탑승한 인부가 나를 내려보며 샛노란 헬멧 끝을 잡아 감사를 표했다.
미리내 정거장은 프로토 타입에 가까웠기 때문에 크루즈형 여객선을 수용하기에 크기가 작았고 지구에 비해 달과 너무 가까워 위치도 애매했다. 처음 개항했을 땐 우주 정거장 수 자체가 적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하지만 우주 개발의 허들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접근성이 편한 다른 우주 정거장을 찾았다. 그렇게 여객항으로 만들어진 미리내 정거장이 지금은 화물선이 더 많이 드나드는 허브 정거장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여객항으로서 역할을 하지만 여객편수가 현저히 적었다. 나도 일정이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미리내 정거장을 찾았지, 고를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히노데 정거장을 이용했을 것이다. 또 다른 화물선이 서브 레그를 내질렀고, 우주 너머로 사라졌다.
화물선만 오가는 걸 보니 불현듯 맞게 왔는지 걱정이 되었다. 하나뿐인 탑승 게이트와 안내 인공지능은 여전히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바지 주머니 벨크로를 지익, 뜯어 통신 디바이스를 꺼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올려 티켓을 찾았다.
출발지 …… MSS(미리내 정거장).
도착지 …… GTC(중력 트레이닝 센터).
출발시간 …… 10:15 EST(Earth Standard Time). 10:15 LST(Lunar Standard Time).
현재 시간은 08:21 EST. 08:21 LST. 탑승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삭망월 기간도 아니라서 잘못 볼 리도 없는데 괜히 쫄았다.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던 긴장감이 쪼그라들었고, 안도감이 나를 끌어내렸다. 나는 등받이에서 미끄러졌다. 등이 축축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서른 먹도록 혼자서 루나시티를 벗어난 적이 없다.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연수원에 갈 때는 인솔자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들의 꽁무니만 쫓는데 온 신경을 쏟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루나시티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면 으레 이석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유독 증상이 심했다. 개미 무게만한 중력이 어깨를 눌러도 속이 메슥거렸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 기댈 수 있는 물체를 향해 냅다 들이받았고 벽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매달렸다. 이족보행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중력 장치를 만나고 나서야 미중력(微重力) 아래에서도 사람답게 설 수 있었다. 내중력 장치가 없었더라면 루나시티를 떠나 미리내 정거장까지 와서 여객선을 기다리는 일조차 상당한 고문이었을 것이다.
주위가 고요해졌다. 노이즈 캔슬링 귀마개가 이제야 능력을 뽐내는가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천장까지 쌓아올린 철제 상자들도. 현재 시간 08:57 LST. 휴식 시간일까. 귀마개를 빼자 연결된 선에 따라 귀마개가 내중력 장치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눈앞이 돌고 속이 메슥거렸다. 아까보다 정거장 내 중력이 세진 게 틀림없었다. 중력 변화를 감지하는 것만큼은 카나리아 못지 않다. 인부들이 정거장에서 나가면서 중력을 조절한 건지 인부들이 빠진 걸 감지한 환경 시스템이 중력을 조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합실에 남은 고객이 중력의 미묘한 변화를 견디지 못하는 걸 변수로 고려하지 않은 건 확실했다. 나는 귓바퀴 아래 툭 튀어나온 뼈에 맞닿은 다이얼을 돌렸다. 미세한 진동이 손끝에 전해졌고, 어지럼이 밑잔에 남은 커피가루처럼 지저분하게 녹았다.
기우뚱하게 바닥을 딛고 서서 까만 우주를 바라보았다. 화물선 하나가 푸른 별에 접근했다. 밝게 타오르던 버니어가 텅 비었고 화물선 하부가 빨갛게 달궈져 있었다. 고무밴드에 묶인 철제 상자들이 진동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리 없지만 어렵지 않게 그 모습을 떠올렸다. 어릴 적 감명 깊게 본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대기권을 뚫고 나오는 우주선이 바스러질 것처럼 진동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우주 비행사도 마찬가지였다. 굼떠보이는 구식 우주복을 입은 한 사람은 둥근 헬멧 안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어째서인지 나는 그이의 얼굴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다큐멘터리는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난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 적응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실전은 처음이지만 우주 비행사들은 지상에서 훈련 받은 대로 능숙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얼굴은 솜사탕을 쥔 어린아이처럼 상기했고,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아이처럼 불안이 가득했다. 내게는 더욱 그렇게 보였는데 허리춤에 매단 생명줄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들이 안전띠에 매달려 버둥대는 꼴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의 눈에 담긴 열정은 도리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정도는 고강도 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여성 우주 비행사가 환하게 웃었다. 그는 어깨가 닿은 동료 우주 비행사에게 주먹을 뻗었고 두 주먹이 맞부딪쳤다. 화면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게 웃는 두 사람을 두고 멈췄다. 화면은 서서히 한구석에서 허리를 구부린 한 남자를 확대했다. 그가 입은 파란 실내복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화질이 뭉개졌다. 그리고 노란색 제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Snogg’s Problem—스노그의 문제
알파벳이 한 글자씩 사라지면서 화면이 어두워졌고 구역질을 참는 소리가 맥박처럼 이어졌다. 화면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우주 비행사들은 고중력 훈련을 참으며 밭은 호흡을 거듭했다. 한 남자가 G-Centrifuge(항공기 원심 분리기)에서 나오며 카메라를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우주 비행사가 쓰러지듯 원심 분리기에서 나오자 앞선 우주 비행사가 동료에게 달려갔다. 동료를 부축하는 남자의 등에 ‘스노그 라비티(Snogg Labeeti)’라는 자막이 따라붙었다.
스노그는 선발대에 가장 먼저 뽑힌 크루원이었다. 듬직한 체구와 타고난 유머 센스는 누구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료들은 스노그에게 의지했고, 스노그도 그 부담감을 기꺼이 짊어졌다. 어떤 사고를 만나더라도 스노그가 해결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까지 가질 정도였다.
훈련은 실제 상황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다. 하지만 훈련하지 않은 상황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노그가 어지러움을 느꼈을 땐 단순히 컨디션이 나쁘다고 여겼다. 별 문제 아니라며 동료들도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은 스노그가 짐처럼 느껴졌다. 할당된 임무를 제대로 하는 날이 적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임무는 동료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동료들은 스노그를 반기지 않았고 일부러 힘든 척하는 거냐고 스노그의 무능을 지적하기 이르렀다. 급기야 선발 과정에 부정이 있지 않고서야 부적합자가 우주에 올라올 수 있냐는 의문이 스노그가 안은 고통을 이해하기 앞서 고개를 들었다.
스노그가 일부러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몸소 겪은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스노그는 우주 비행사 여섯 명 중에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상위권에 속했다. 성격까지 포함한다면 가장 맨 앞에 세워도 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스노그는 고된 훈련에서도 동료들을 먼저 다독였고 유머가 필요한 자리에서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스노그도 눈에 띄게 동료들보다 뒤처지자 괴로워했다. 성적이 떨어졌다면 공부를 더 하고, 숙련도가 부족하다면 더 많이 연습하면 되지만 그가 가진 문제는 애를 쓴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스노그는 어떻게 해서든 버텨보려고 했다. 지구 귀환까지 7개월이나 남았고, 그 사이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적응할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희망도 있었다. 포기하지 말라는 동료에게 스노그도 이겨낼 수 있다고, 이겨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히길, 스노그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부터, 본인에게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눈치챘었다고 밝혔다. 그 당시에는 자신에게 투자한 돈과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막무가내로 현실을 부정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스노그는 무인 보급선을 개조해 지구로 귀환했다. 동료들은 위험하다며 스노그를 말렸지만, 스노그는 우주 항해는 언제나 위험과 실패를 전제한다며 밀어붙였다. 스노그는 한시라도 무중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안정감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서 달을 바라보고 싶었다.
무사히 지구에 돌아온 스노그는 파란 하늘에 뜬 하얀 달을 올려보았다.
돌아가고 싶어요?
스노그는 짧은 수염을 매만지더니 카메라를 돌아보았다.
돌아갈 수 있을까요?
스노그는 씁쓸한 얼굴로 하얀 달을 올려보았다.
하얀 보름달을 배경으로, 스노그가 이석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어 무중력 환경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초정밀 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자막이 나왔다. 진실을 알게 된 스노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지원하는 ‘스노그 재단’을 설립했다. 스노그는 무중력에 견딜 수 있는 보조 중력 조절 장치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그의 노력 덕분에 인류는 어려움 없이 우주로 진출해 평등하게 우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자막을 끝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Snogg’s Problem—스노그의 문제’는 그해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을 휩쓸었다. 지금은 어렵지 않은 우주 촬영도 당시에는 테크닉이 필요하고, 우주 비행사를 밀착해서 촬영했다는 점과 미개척지로 발을 내딛은 인간을 가로막은 운명과 그것을 뛰어넘으려 도전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인간 찬가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연출과 스토리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간에서 입소문을 타며 다큐멘터리임에도 일반 영화관에 걸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주 비행사 같은 엘리트들도 보통 사람처럼 고난에 좌절하고 극복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럼에도 공감하지 못한 세대가 있었는데 애프터 루나 세대였다. 그들에게 우주 유영(游泳)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도보(徒步)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중력은 편안했고 중력은 불편했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애프터 루나 세대지만 스노그에게 공감했다. 만약 스노그가 없었다면 내중력 장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미세한 중력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스노그는 중력을 못 견디는 인간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루나시티 설립 32주년을 앞두고도 인류는 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루나시티의 건설과 함께 세계의 권력이 달을 중심으로 재편될 거라는 예상과 야망은 우주 진출과 함께 지구를 좀먹었던 문제들이 차츰차츰 해결되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익숙한 중력에 몸을 맡겼고, 오직 중력 같이 변하지 않을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만 원대한 꿈을 안고 루나시티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루나시티에 남을 순 없었다. 내중력 장치가 있어도 여전히 극심한 어지럼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고 광활하고 어두운 고요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처럼 끝까지 루나시티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부모님은 무중력과 적막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타입이라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이것으로 겨우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나는 부모님이 겪은 경험을 전부 알진 못한다. 그림자에 가려진 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고 항상 부모님께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지구를 떠난지 30년이나 되었으면서 툭하면 ‘지구에서는’ 하고 운을 뗄 때는 귀를 막고 싶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부모님도 그렇다. 나를 가르치려고 하면서 나를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우리 회사도 루나시티에 있지만 지구 기업에서 투자를 받기 때문에 적잖이 영향을 받는다. 당장 내 상황이 그렇다. 투자자가 우주 작업자의 내중력 인증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이번 출장도 없었다. 내중력 인증에 박힌 알파벳이 현장에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지만 투자자의 엄명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회사는 바쁜 일정을 쪼개 가장 빨리 인증을 받을 수 있는 GTC로 나를 보냈다. 나만큼 무중력에 자유로운 사람이 없고, 회사도 단기간에 나를 대체할 인력을 구할 수 없으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지구에서 온 파견 직원들이 종종 묻는다. 위도 아래도 왼쪽도 오른쪽도 없는 우주에서 어떻게 직관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느냐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설명할 길이 없다. 눈과 입, 귀와 혀 같은 거니까. 그래서 투자자가 내중력 인증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으니, 그들은 정확한 수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역시 그들과 다를 게 없다. 내가 중력 속에서 살아가는 지구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도 루나리안이 우주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먼 미래에는 루나시티 설립이 인간이 또 다른 종으로 갈라지는 기점이었다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1번 게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죽어있던 인공지능이 허리를 곧추 세웠고 미리내 정거장 출발 GTC 도착 승객을 찾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샛노란 헬멧을 쓴 작업 인부들이 돌아왔고, 회색 동그라미를 새긴 철제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몸이 가벼워졌고, 나는 내중력 장치 다이얼을 돌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