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빚은 인간의 손짓 하나하나에 크고 작은 빛줄기가 아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달은 지구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야트막한 단상 위에 서서 청중을 보았다. 그는 하얀색 헬멧을 쓰고 있었는데, 특수 코팅 덕분에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코팅 때문에 햇빛이 눈부시지 않을 텐데도 그는 자꾸만 한쪽 눈을 찡그렸다.
“루나시티가 탄생하기 한참 전부터 달은 지구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억 년 동안, 태양을 등지고 우주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켰습니다. 그것이 달의 역할이었고 달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지구는 그렇게 생각했죠.”
그의 시선이 오른쪽 위를 향했다. 시선 끝에는 파란 점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청중을 내려보았다.
“루나시티가 달의 앞면에 세워진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온몸으로 지구를 지키고 언제나 지구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구도 그런 달을 언제나 바라볼 수 있도록. 저는 지구와 달이 동등한 위치에서 눈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영원한 친구가 달이듯 지구도 달의 영원한 친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구는 달랐습니다. 지구에게 달은, 우리 루나리안은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그보다 앞서 문장을 완성시켰다.
홀로그램 인간이 하늘을 향해 양손을 힘차게 뻗었다. 관중이 하늘로 손을 뻗었고, 빛을 뒤집어 쓴 아이도 손을 뻗었다.
*
정거장은 고요했고, 하연은 머리가 띵했다. 몸도 여기저기 쑤셨다. 연료가 부족한 탓에 탈출 포트는 비상 착륙이 불가피했다. 이정도 연료라면 미리내 정거장까지 여유롭게 도착할 줄 알았다. 탈출 포트도 문제였다. 탈출 포트가 박살난 마당에 정확한 원인을 꼬집을 수 없지만, 연료 게이지 표시가 잘못 되었든 연료가 새고 있었든 문제가 있는 건 확실했다. 자칫하면 폭사할 뻔했다. 불시착 때문에 머리고 몸이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숨이 붙은 채 선착장에 도착한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기만 오면 지구에 갈 수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성난 목소리에 하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절마다 섞인 거친 숨소리가 아주 듣기 좋았다. 하연은 못 들은 척 리히터를 등지고 공간을 둘러보았다.
하연도 황량한 우주 정거장에 적잖이 당황한 참이었다. 불과 2개월 전에 있었던 정거장 사찰에선 작업 소음 때문에 헬멧을 쓰지 않으면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여기가 여객항인지 허브 정거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업 인부들이 넘쳐 흘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아무 소리도 없었다.
리히터는 미리내 정거장 유일의 벤치에 앉아 계속해서 궁시렁댔다. 지향 전파 때문에 지근거리(至近距離) 헬멧은 서로 연결 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지 한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풀숲 사이를 날아다니는 메뚜기 떼도 이보단 조용할 것이다.
하연은 단단히 물고 있는 포켓 벨크로를 뜯어 통신 디바이스를 꺼냈다. 03:38 LST(Lunar Standard Time). 인부들은 보통 06시에 출근하니 최소 두 시간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20세기도 아니고 추가 수당 없이 잔업을 시키는 기업은 업계에서 퇴출이다. 지구처럼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하연은 리히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통신 디바이스를 들이밀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리히터의 얼굴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연은 한숨을 푸 쉬었다. 리히터는 고막을 때리는 파열음에 인상을 구겼다.
“시간이요. 시간.”
리히터의 파란 눈동자가 숫자 네 개를 읽었다. 그럼에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근무 시간이요.”
“언제 오는데요.”
“여섯 시요. 작업자들 출근하면 사람들로 꽉 들이찰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보죠. 무슨 수가 있겠죠.”
“나는. 지금. 당장. 지구로. 돌아가야겠어요.”
잔뜩 흥분해선 들쑥날쑥한 리히터의 목소리가 헬멧 안에 울렸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만 집에 가고 싶은 줄 알아? 나라고 여기가 좋겠어?
하연도 볼멘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상호간 협의 종료를 선언하지 않았으니 상황이 어찌 되었든 관계 협의는 아직 진행중이었다.
“우리끼린 나갈 수 없어요? 서기관님 루나시티에서 태어났다면서요. 우주 정거장에 익숙할 거 아닙니까.”
“우주는 익숙하지만 우주 정거장은 다르죠.”
리히터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거나 누를 기세로 두리번거렸다.
“저희가 섣불리 건드렸다가 더 곤란해질 거예요. 우주 정거장은 아무나 만질 수 없게 설계했고요. 여기까지도 간신히 왔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요? 로버트 B. 리히터 우주방위부 차관님.”
하연은 자세를 고쳐잡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리히터도 자신의 지위를 떠올린 듯했다. 헛기침을 두세 번 내뱉고는 벤치에 앉았다.
하연은 벤치에 앉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미리내 정거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도 있지만 리히터 옆에 있고 싶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헬멧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 하여간 땅거북들은……. 마음 같아선 통신도 끄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다. 하연이 보지 못하는 곳을 감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리히터가 마이크를 끄면 하연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리히터는 마이크를 어떻게 끄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연은 열걸음을 채 뻗기 전에 하역장에 도착했다. 미리내 정거장의 특징이면서 안타까운 역사 때문이다. 미리내 정거장은 루나리안 드림을 이룰 희망의 거점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에 밀려 원치 않은 용도로 모습을 바꾸었다. 우주를 향한 꿈과 희망을 품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여객항에서 달의 자원과 우주 쓰레기가 더 많이 드나드는 허브 정거장으로.
미리내 정거장이 동남북아시아가 합심해 설립한 첫 우주 여객항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차치하더라도 미리내 정거장이 타고난 한계는 뚜렷했다. 개항을 서두른 탓에 우주 정거장 규모가 작아졌고, 우주 산업의 발전 속도를 예상하지 못했다. 미리내 정거장은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여객선 자이언트 908을 수용하지 못했다. 자이언트 908보다 한 단계 작은 자이언트 807도 수용하지 못했다. 하연은 아예 허브 정거장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편이 미리내 정거장의 입지를 공고히 다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거장에 얽힌 이권이 너무 복잡하고 깊었다. 사람들의 욕심과 아집이 미리내 정거장이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저버렸다. 하콘라디 루나시티 대통령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우주 정거장의 건설을 제한하고, 기존 정거장을 쓰임에 맞게 용도를 변경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하연은 왠지 미리내 정거장이 그 흐름에서 빗겨갈 것 같다는 안타까운 예감이 들었다. 미리내 정거장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대통령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연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미리내의 명운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미리내 정거장의 명운도 볼 수 있고 7년 간 주고 받은 루나시티—지구연합의 관계 협의의 결말도 알 수 있다. 하나 더 바란다면 관계 협의서에 하연의 이름이 구석에라도 쓰이는 것이다.
“헬멧은 언제까지 쓰고 있어야 합니까? 조금 어지러운데.”
헬멧 안에 맴돌던 쉰 목소리가 고막에 파고들었다. 하연은 몸서리 치며 벤치를 보았다. 허리를 세운 리히터가 하연을 빤히 바라보며 두툼한 손을 말아쥐고 본인의 헬멧을 통통 두드렸다. 하연은 내뱉지 못할 한숨을 들이마셨다.
“정거장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는 단말기를 찾고 있어요.”
“그래요? 그럼 계속 부탁합니다.”
리히터는 툭하니 말을 내뱉고는 벤치에 늘어졌다. 하연은 그 모습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연은 정거장 벽으로 눈을 돌렸다.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무책임한 리히터의 막힌 목소리가 짜증나게 귀에 달라붙었다. 쉰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하연도 목이 아픈 것 같았다. 눈앞이 부얘지고 두통과 근육통이 너울처럼 밀려들었다. 하연은 덜컥 겁이 났다. 이렇다할 증상은 없었는데 설마……. 이윽고 회장을 빠져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살려달라 울부짖는 사람들과 그들을 두고 떠났을 때 들리던 원망 섞인 목소리. 본분을 다해 리히터와 하연을 살리는 경호원. 하나 남은 탈출 포트에 떠밀리듯 오르며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하지 못했다. 관계 협의를 잘 끝내주세요. 서기관 님만 믿습니다. 슬픔과 결의에 찬 눈동자 너머 보이지 않은 진의를 짐작할 뿐이다.
하연은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지금까지 그만큼 많은 감염자를 본 적 없었다.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회장에는 신원을 보증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사람마다 잠복기가 다르고 발병할 때까지 보균 유무의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고 하나 최신 검사 키트로 철저하게 확인했을 터였다. 감염이 의심 되는 사람은 곧바로 격리 조치 당했다. 2등 서기관인 하연이 협의 테이블에 앉은 이유도 1등 서기관인 렌 쑤가 의심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주 여행도 할 수 있는 시대에 바이러스 하나 잡아내지 못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어디서부터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는지 잠복기가 며칠인지 얼마나 지나야 발병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발병하는지 효과적인 예방 방법이 무엇인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하연은 여객 게이트 심사대로 발길을 돌렸다. 하역장은 황량한 게 선뜩했고 구획 별로 쌓인 철제 상자 더미에서 하연이 바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