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3)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저녁 식사를 단숨에 해치운 세 사람은 마당으로 나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다. 이름 모를 검은 새가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가정부가 있었더라면 단번에 저 새의 이름을 알았을 텐데. 시머드가 타로마 섬에서 정착한지 벌써 4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처음 보는 생물들이 많다. 시머드는 이런 여유를 느끼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맞을까. 불쑥 의문이 떠올랐지만 시머드는 지금은 잊기로 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서 머리 무거운 생각을 잠시 접어두자.


시머드는 불청객이지만 자신을 만나러 멀리서 온 손님이니 아끼고 아낀 위스키를 꺼냈다. 하콘라디 루나시티 대통령이 즐겨 마신다는 79년산 평야의 바다 버번위스키다.


시머드는 양손에 버번위스키와 온더록스 잔을 나눠들고 피투에게 다가갔다. 피투는 잔을 받아들고 시머드를 향해 잔을 내밀었다.


“뷰 보니까 돈 좀 들었겠는데?”


“그래서 한 푼도 없어.”


피투는 잔을 입에 가져가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피투는 믿지 않았다. 시머드는 도박이나 마약같이 허튼 데 돈을 쓰지 않는다. 보석을 좋아하지 않았고, 호색을 즐기지도 않았다.


“너도 나이가 있는데 슬슬 그만해야지. 지금 네 나이면, 뭘 시작해도 되는 나이야.”


“뭐야. 아까부터.”


“인생 선배가 하는 말이야. 새겨들어.”


평소의 피투라면 산통 깨지 말라, 고 쏘아붙였겠지만 저녁도 든든하게 얻어먹었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시머드가 팀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래야 하는데. 내가 배운 짓이 이거뿐이라서. 그나저나 땡전 한 푼도 없다면서 어떻게 버텼어? 카로라 제도 물가, 장난 아니지 않아?”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다 물이 나와. 나처럼 검소하게 사는 사람. 이 동네에 없을 걸?”


피투는 눈썹을 까딱이고 입술에 잔을 가져갔다. 비아냥대고 싶은 입술을 막기에 위스키만한 게 없다. 카로라 제도에서 몇 년이나 버티고 고용인을 둘이나 부린다는 건 아직 돈이 남았다는 방증이다. 이 집 어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겠지. 황금알이 있거나. 피투는 금괴를 예상했다. 금은 항상 옳아. 시머드가 심심하면 지껄였다.


피투는 시머드가 집에 없기를 바랐다. 그래야 마음껏 집안을 살필 수 있었다. 고용인은 늙은 가정부와 빼빼 마른 정원사뿐이니 손쉽게 처리할 수 있고 집도 외딴 곳에 떨어져 있어 목격자 걱정도 없다. 시머드가 있어도 금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금고 위치만 찾으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이 간단한 일을 케니는 못했다. 내가 시머드를 마크하는 동안 조용히 돈 될 만한 거나 금고를 찾아보라고 했거늘. 케니가 산통을 깨버렸다. 내중력장치 따위에 정신이 팔려서는. 멍청한 놈! 실력만 구렸어도 진작에 너는 고기 방패였어.


케니는 운전 실력이 좋고 못 다루는 동력기가 없다. 문도 곧잘 따고. 운반책으로는 이인분도 거뜬하지만 주의력이 초등학생만도 못하고 판단력이 느리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 돈이 될 만한 걸 골라야 하는데, 사방팔방으로 주의력을 빼앗기니 현장에 투입하기에는 위험하다. 발목을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육각형 인재를 바라는 건 욕심이란 걸 안다. 하지만 끌고 다니는 만큼 여러 곳에서 써먹을 수 있으면 좋잖아. 케니가 시머드와 사이가 나쁘단 걸 알면서도 데려온 건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대로라면 언제까지고 운전수만 해야 한다. 정에 이끌렸지만 슬슬 손절할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이번 작전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일까. 피투는 머리가 복잡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시머드에게 헛점을 보여선 안 된다.


피투와 시머드가 선베드에 누워 바닷바람을 쐬는 동안, 케니는 집에 있었다. 선베드가 두 개밖에 없었고 케니는 소유주가 없는 내중력장치가 자꾸 신경 쓰였다. 두 사람은 케니의 이탈에 신경 쓰지 않고 빈 잔을 채웠다.


케니는 거실 한구석에서 은고리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이음새 없이 매끈한 겉면에는 제조사 정보도 없었다. 최신 모델에 비하면 두께도 거진 두 배였고 무게도 제법 나갔다. 이걸 온종일 목에 차고 있으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어깨가 돌처럼 딱딱해질 것이다. 무중력에서 쓰니까 무게는 딱히 상관없나? 어쩌면 개인이 만든 장치인지도 모른다. 내중력장치는 스노그가 인류를 위해 중력 감지와 중력 조정에 관한 기술 특허권 소유를 포기하고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누구나 내중력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수제품이라면 기성품과 다른 기능이나 장치가 숨겨져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케니는 통신 디바이스의 플래시를 밝혀 구석구석 살폈지만 이렇다할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중력장치라는 전제가 틀렸을까. 피투는 뭐든 아는 것처럼 떠들지만 실상 모를 때가 더 많다. 피투가 없었다면 지옥보다 더한 시궁창에서 허우적댔겠지만 이제 케니도 알 건 다 안다. 집을 뒤져보라는 속뜻도 케니는 알고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시머드를 좋아하지 않지만 피투 말마따나 업계 선배고 굳이 은거한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시머드만큼 하는 사람은 어디든지 있다. 나도 있고! 결국 나는 피투에게 그저 그런 장기말밖에 안 되고 울타리에 들여보내 줄 만한 인간이 아니라는 거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자 케니는 짜증이 났다.


아무 도움도 못 되는 놈! 아무 기능도 없는, 이 쓸모없는 놈!


케니는 은고리를 바닥에 팍팍 내리쳤다. 있는 힘껏 내리쳤지만 은고리는 찌그러지지도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 무게에 이런 강도를 가지고 있을 만한 물질이 케니 머릿속에선 떠오르지 않았다.


“피투!”


케니는 은고리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마당 통창에 기대 피투를 불렀다. 선베드에 늘어진 피투와 시머드는 고개만 젖혔다. 시머드는 금세 고개를 숙였고, 피투는 온더록스 잔을 들었다가 내렸다.


“이거 이상해. 와서 좀 봐봐.”


케니는 은고리를 탬버린처럼 흔들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쟤 아직도 저거에 미련 못 버렸대?”


고개를 젖는 시머드에게 피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간 쟤도 정상은 아니야. 쟤를 데리고 다니는 너도 제정신 아니고.”


“쟤 때문에 도망친 건 기억 못하고?”


“말을 말자.”


“나 신발 신기 싫어어어.”


간다, 가. 케니가 징징대는 소리에 피투는 몸을 굴려 선베드에서 내려왔다. 피투는 온더록스 잔을 선베드에 올려놓고 집으로 향했다.


“약점이라도 잡혔나. 애새끼한테 쩔쩔매.”


시머드는 버번위스키를 들이키고 빈 잔을 채웠다.


시머드는 다리를 쭉 뻗고 깍짓손을 머리 뒤로 가져갔다. 밤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이걸 보기 위해 시머드는 전재산을 털어 타로마 섬에 정착했다. 파로가 섬에 가고 싶었지만 그곳은 너무 비쌌고 신원 조사도 철저했다. 타로마 섬에 정착한 것도 감지덕지다. 시머드는 이 무료하고 평온한 삶을 뼈저리게 소원했다. 남의 것을 빼앗고 같은 팀 뒤통수를 치고 본인도 맞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런데 극단 지구주의자를 엿 먹일 수 있다고 떠나는 게 맞을까. 극단 지구주의자를 벗겨먹는 일은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무사히 빠져나오리란 보장이 없었다. 시머드는 깊어가는 고민 위로 위스키를 부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피투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케니에게 다가갔다.


“이거 봐봐.”


케니는 다짜고짜 내중력장치를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피투는 깜짝 놀라 한 발 물러났다.


“멀쩡하지?”


“미리 알려주고 해라. 대체 왜 그래. 마르스씩(Mars-sick) 했어?”


“안 했어!”


케니는 버럭 소릴 질렀다.


“……아직”


“아직이고 뭐고. 여기선 하지 마. 저 양반한테 그대로 쫓겨난다.”


“뭐, 어때. 공기 좋고 경치 좋은 데서 한번 빨아야지. 피투는, 안 할 거야?”


피투는 혀를 빼꼼 내밀어 입술을 훔쳤다. 말은 안 했지만 피투도 선베드에 누울 때부터 한 대 빨고 싶었다.

케니는 주머니에서 껌 종이처럼 납작한 마르스씩을 꺼내 피투에게 내밀었다. 피투는 제도 모르게 손을 뻗을 뻔했다.


“안 되는 건 안 돼.”


“정말 안 돼?”


케니가 버려진 고양이처럼 초롱초롱 눈을 밝혔다. 피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더라도 주인 양반 허락 맡아야 돼. 이 인간 꼭지 돌면 지가 총에 맞든 말든 찔러버릴 수도 있어.”


“설마 그렇게 미친놈이려고.”


“저 인간은 그러고도 남아. 지금 술도 마셨잖아.”


“그럼 기분 좋겠네.”


“오, 제발. 케니! 말 좀 들어!”


피투는 마르스씩을 쥔 케니의 주먹을 케니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케니는 아쉬운지 내민 입술을 오므렸다. 막상 치우고 나니 피투도 아쉬워졌다. 차라리 뺏을 걸 그랬나.


“기회 봐서 물어볼 테니까 기다려. 저것도 치우고. 언제까지 가지고 놀 거야. 저런 건 팔아도 돈도 안 돼.”


피투는 아무 공간을 가리키고는 선베드로 돌아갔다.


케니는 은고리를 내려보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찾았는데 왜 자꾸 버리라고 하는지 케니는 피투도 시머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깐. 어차피 시머드 것도 아니고 피투도 버리라고 했으니까 발견한 내 거 아니야? 내 거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시머드.”


시머드는 비뚜름하게 턱을 돌렸다. 정원 조명에 비친 얼굴이 반만 보였다.


“술 더 줘?”


“됐어. 그만 마실래.”


“이거 귀한 술인데.”


시머드는 유혹하듯 위스키 병을 들고 흔들었다. 피투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날 흔치 않아.”


시머드는 빈 잔을 채웠다. 벌써 여섯 잔째였다. 적당한 긴장감 때문인지 오늘은 마음껏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왜 불렀어.”


“별건 아니고…… 여기서 좀 피워도 돼?”


“옆집으로 담배 연기 넘어가면 귀찮아져. 이웃 관리인이 완전 광견병 걸린 투견이야. 정 피우고 싶으면 옥상에서 펴.”


“담배 말고……”


피투는 우물쭈물했다.


“대체 뭔데. 똥마려운 개새끼마냥 낑낑 대?”


피투는 대뜸 혀를 내밀고 손가락으로 혀를 긁었다. 시머드는 편안하게 늘어진 다리를 접고 일어나 앉았다.


“씨발. 여기까지 와서 해야 돼?”


“마르스씩은 달라. 시머드도 해보면 알 거야.”


“다르긴 뭘 달라. 약이 다 똑같지. 마르스씩은 또 뭐야.”


피투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며 말하고 싶어 안달난 입술에 침을 발랐다.


“마르스씩이 뭐냐면 내가 만드…….”


시머드는 듣기 싫다며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가지고 같이 일할 수 있겠냐?”


피투는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진짜 구제불능이다. 자기 절제도 못하는 놈이랑 뭘 한다고. 오랜만이라 좀 달라진 줄 알았더니만. 이러니까 너랑 일 안 하려는 거야.”


시머드의 얼굴에서 피투를 버리고 떠난 엄마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선 넘지 마. 시머드. 내가 당신한테 훈계질 들을 짬이야? 말 안 하고 해도 되는 걸 일부러 물었더니 기분을 잡치게 해?”


시머드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아이고, 그러셨어요. 그런 깊은 배려도 모르고 제가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댔네요. 죄송합니다. 예, 예.”


시머드는 나라를 팔아먹는 간신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간사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야? 아니잖아. 지하 창고 있으니까 거기서 처박혀서 하든지 말든지. 대신 깨기 전에 절대 올라오지 마. 어디 헤롱대는 꼴 보여 봐. 내가 죽여 버릴 거니까. 저리 꺼져.”


“내가 어디서 하든 뭔 상관이야?”


피투는 선배드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곧장 뒤돌아 마당을 가로질렀다.


시머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이곳이 부자들의 향락지라지만 시머드에게 이곳은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장소다. 이걸 이루기 위해서 먹고 마시고 사고 싶은 거 전부 참았는데, 뭐? 시머드는 한입에 위스키를 털어 넣었다. 쩔쩔 끓는 분노 위로 차가운 위스키를 들이부어도 속이 끓었다. 저 인간들이 오늘 하루를 망친 걸로는 모자라다는 거지. 옛정을 생각해서 봐줬더니 적반하장으로 나온다, 이거지. 시머드는 위스키 병목을 잡고 손바닥을 탁탁 내리쳤다. 저놈들의 머리통을 부수지 않고서는 오늘 잠을 편히 못 이룰 것 같았다.


“저 인간이 뭐래?”


상황을 알 리 없는 케니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몰라.”


“해도 되는 거지?”


피투는 케니를 벌레보듯 보았다. 케니는 다른 건 몰라도 멸시에 대한 감정은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왜 그렇게 봐?”


“넌 여기까지 와서 하고 싶어?”


“하면 어때서. 부작용도 없고 중독성도 없다고 피투가 말했잖아. 자신작이라며.”


“그건 내가 팔 때나 하는 소리고! 이 멍청아!”


“안 된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하면 되지. 왜 나한테 지랄이야!”


피투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말았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입만 더 아프다.


“너 알아서 해. 난 안 할 거니까. 적어도 여기서는 안 해.”


피투는 경멸을 담아 케니를 쏘아보고는 2층으로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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