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케니는 주머니에서 마르스씩을 꺼냈다. 보란 듯이 해버려? 확 옆집 마당에서 해버려? 이 새끼들. 나 죽고 너네 다 죽는 거야. 케니는 비닐 포장지를 벗기고 겹겹이 쌓인 마르스씩을 손톱으로 살살 한 겹 벗겼다. 별빛을 머금은 얇디얇은 마르스씩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케니는 손톱에 매달린 마르스씩을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감상할 틈도 없이 혀에 갖다 붙였겠지만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피투는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저렇게 화낼 정도면 안 하는 게 맞다. 못 참을 정도도 아니었다. 공기도 물도 기분도 좋으니 습관처럼 하려고 했던 것이지 엄청 당기지 않았다. 그리고 시머드에게 빌미를 줄 이유가 없었다.
케니는 손톱 끝에 달린 마르스씩을 말아 마당에 버렸다. 나도 할 땐 하는 사람이야. 케니는 마르스씩 도막을 비닐로 꼼꼼히 싸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케니는 심심했다. 피투가 억지로 끌고 온지라 따로 챙긴 게 없었다. 통신 디바이스도 공항에서 산 거라 기본 앱만 깔려 있었다. 유희 거리라곤 습관처럼 챙긴 마르스씩뿐이었는데 이것마저 막혔으니 기나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설마 하루 더 머물자고는 안 하겠지. 그랬다간 인내심이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케니는 발라당 누워 공간을 둘러보았다. 피투 말마따나 정말 할 게 없었다. 수도승처럼 사는 삶이 뭐가 좋다는 건지. 갱년기가 오면 사람이 변하는 걸까. 시머드도 한창때는 난잡했다는데 어쩌다 재미없는 아저씨로 전락한 건지 모르겠다. 케니는 모로 누워 마당을 바라보았고, 은고리가 달빛에 반짝였다. 케니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케니는 내중력장치에 대해 잘 몰랐다. 두 살부터 열두 살까지 지구에서 살았지만 루나시티 출생이라 무중력에서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주변에도 내중력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중력장치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주 정거장에서만 보았는데, 개 목걸이를 두른 모습이 케니는 우스웠다. 땅거북이 우주로 진출해 봤자지. 저까짓 개 목걸이 없으면 무중력에서 십 분도 못 버티잖아. 케니는 비웃었지만 개 목걸이를 찬 인간들은 하나같이 돈이 많았다. 지구에서 잔뜩 부를 쌓아올린 인간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그 부를 공고히 다졌고, 고스란히 달로 올라가 그들의 재산과 권위를 앞세워 막막한 현실을 깨부수려는 불쌍한 사람들을 발밑에 두었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우주로 향했지만 활동 영역이 넓어졌을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차라리 새로운 터전을 찾아 외우주로 떠나는 사람들이 현명해 보였다.
우리도 사명감을 가져야 돼. 거듭된 악의 고리를 우리가 끊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부자들 껄 훔치고 쓰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거라고.
시머드가 술에 취하면 떠들어대는 단골 멘트였다. 케니는 시머드란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둘째 치고서 이 이야기에는 공감했다. 케니는 만지작거리던 은고리를 옆에 내려놓았다.
목적지가 타로마 섬이라는 걸 알았다면 케니는 반항을 불사하며 오지 않았을 것이다. 카로라 제도는 케니가 극도로 혐오하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자연환경 보호를 운운하면서 달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내쫓거나 값싸게 부리면서 그들의 터전을 차지했다. 이 인간들을 깡그리 쓸어버리면 좋을 텐데. 케니는 시머드에게 극단 지구주의자는 싫어하면서 비슷한 놈들이랑 사는 건 괜찮은지 묻고 싶었다. 케니가 시머드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모순적인 태도도 은연중에 들어 있었다.
케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마르스씩을 만지작거렸다. 절대 하지 않겠다, 결심하고 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할까? 셀로판 테이프처럼 얇은 마르스씩은 스스로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라고 피투가 말했다). 오랫동안 느끼고 싶으면 길게 자르고 아주 조금만 느끼고 싶으면 아주 짧게 잘라 혀에 붙이면 끝이다. 케니는 짧고 굵게 고민한 끝에 유혹을 떨쳤다. 내일이면 여기를 떠난다. 돌아가면 내 방에서 실컷 하는 거야. 도아도 부르자. 야마키도 부르고. 폴 쟝도 부르는 거야. 전부 불러! 한탕 하기 전에 마음껏!
케니는 마르스씩의 유혹을 떨쳤지만 무료함까지 떨치지 못했다. 케니는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았다. 시머드는 잠들었는지 선베드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2층으로 올라간 피투도 잠잠했다. 설마 나 몰래 마르스씩 하는 거 아니야? 케니는 계단을 휙 돌아보았지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피투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안다.
케니는 양반다리를 하고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찍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해를 대신해 달이 차갑게 세상을 밝혔다. 달빛을 뒤집어 쓴 이름 모를 검은 새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날고 있었다. 새라는 게 원래 저렇게 한 곳에서 오래 날 수 있는 걸까. 공간은 바람 소리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조용했다. 끼릭끼릭 자전거 체인이 감기는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마당을 뾰족하게 가로지르는 작은 그림자 두 개가 지나갔다. 아니, 세 갠가. 바람이 야자수를 통과할 때마다 그림자가 마당을 어지럽혔고 키 작은 그림자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림자는 바람이 부리는 요술이었다.
케니는 대뜸 은고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이 내중력장치를 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다른 쪽으로 기대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혹시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주 멀미가 없는 사람이 내중력장치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가 없으니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이 숙취해소제를 마시지 않는 것처럼 우주 멀미를 겪지 않는 사람이 내중력장치를 쓰지 않을 테니 경고문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할 것도 없다. 케니는 괜스레 기대감이 커졌다. 마르스씩 정도는 아니더라도 월환(月患)이나 미하클 르네(Miracle lunaire)정도만 되어도 만족한다.
케니는 은고리를 착용했다. 은고리를 쓴 채로 빙빙 돌리며 겉면을 더듬었다. 전원 버튼을 찾을 수 없었다. 기억에 따르면 내중력장치를 착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마개 같은 걸 귀에 꽂고 있었는데 그것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신체를 감지하면 알아서 작동하는 걸까. 케니는 은고리를 목에 건 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마당 통창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볼품없이 빼빼 마른 목에 맞지 않는 개 목걸이를 두른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처량해보였다. 케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병신 같은 짓은 꼭 해봐야 안다니까. 케니는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케니가 은고리를 빼내려는 참이었다. 구름이 달을 삼킨 것처럼 갑자기 어두워졌고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작은 그림자가 나무와 나무, 마당 사이를 널뛰었다. 목을 따라 바늘로 찌르는듯한 따끔한 통증이 이어졌다. 착용자 인증 방법이 과격하네. 그런 생각도 잠시 케니는 눈앞이 흐려지면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미하클 르네보다는 월환과 효과가 비슷했다. 케니는 자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며 기뻐할 새도 없이 속이 뒤집어졌다. 이건 월환이랑 다른데…… 이게 우주 멀미일까. 그럼 나는 지금 우주에 온 건가. 여기는 우주인가. 케니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고의 파편을 마구잡이로 주워 담았다. 파편과 파편이 뭉쳐 덩어리가 되었고 덩어리는 텅 빈 머릿속을 거침없이 굴러다녔다.
케니는 어떻게 몸을 가누고 있는지 몰랐다. 은고리를 썼을 때는 앉아 있었다. 그 다음은? 쓰러졌나? 지금도 앉아 있나?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지랄을 한 거지? 이만큼 했으면 충분해. 이럴 줄 알았으면 마르스씩이나 할 걸.
케니는 호기롭게 부린 패기를 후회하며 은고리를 벗으려고 했지만 손은 은고리를 잡지 못하고 자꾸만 흘러내렸다. 케니는 손을 턱에 갖다 대고 아래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은고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이상했다. 고개를 숙이면 분명 고리가 보이는데 케니는 잡을 수 없었다.
케니는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당황할 이유가 없다. 만약 이것이 투약 장치라면 지금 일어난 일은 약의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다. 다만 케니가 경험한 약 중에서 이런 증상이 없었을 뿐 첫 경험은 이미 수차례 겪었다. 지금도 그 첫 경험일지 모른다.
케니는 발라당 누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케니는 시머드가 애지중지하는 인도코끼리 천연 가죽 소파에 눕고 싶었는데 어지러워서 일어설 수 없었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우니 초침 위에 누운 것처럼 천장이고 벽이고 바닥이고 뱅글뱅글 돌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약이라는 게 모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뭐랄까. 더러웠다. 찰나라도 쾌감을 주거나 긴장을 완화하는 감각도 없이 어지럽고 미식거리기만 했다. 내중력장치의 부작용일까. 이건 투약 장치가 아니라 정말 내중력장치인 것이다. 바보 같이 부작용인 줄도 모르고 증상이니 쾌감이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멍청하게.
케니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마당 통창까지 기어가기로 했다. 소리를 지르면 애새끼가 밤늦게 시끄럽게 군다고 시머드가 화를 낼 것이다.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해보자.
케니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굼벵이처럼 기어갔지만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왔다. 케니 스스로도 생각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주위가 어두워지는 걸 봐서는 시간은 주어진 역할대로 착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케니만 이름 모를 검은 새처럼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케니는 기어가길 포기하고 피투가 듣기를 바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케니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악다구니는 안으로 파고들 뿐 밖으로 내뻗지 못했다.
케니는 간신히 돌아누웠다. 숨이 찼다. 천장에 매달린 실링팬이 천천히 돌아갔다. 저런 게 있었나. 케니는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사람 머리처럼 둥글고 탁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시야를 가렸다. 구름이 어쩌다 사람 모양이 된 걸까. 아니면 소리를 들은 시머드 아니면 피투일까.
케니는 턱을 당겨 그것을 보았다. 은고리가 반으로 잘려서는 뱀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케니를 내려보고 있었다. 이것도 진짠가? 은뱀은 혀를 날름거리며 대가리를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찾았다]]
목소리가 곧장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고막이 진동해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전기 신호로 전환되었고 뇌가 그것을 인식했다.
케니는 은뱀을 치우려했다. 실재하지 않더라도 뱀이 목을 감고 있는 건 기분 나쁘다.
케니가 손 갈고리로 목을 긁으려는 순간, 은뱀이 케니의 목을 조였다. 케니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케니는 뒤꿈치가 깨질 정도로 발버둥 쳤다. 황망한 손이 은뱀을 찾아 목을 더듬거렸지만 닿을 수조차 없었다. 살려줘. 피투! 시머드! 케니는 악다구니를 썼지만, 이 순간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서서히 케니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목을 조였던 압박이 사라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어둠이 온몸을 짓눌렀고 케니는 저항할 수 없이 침잠했다. 완전한 어둠이 케니를 뒤덮고 나서야 은뱀은 온기를 잃어가는 먹잇감을 떠났다.
케니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신과 사투를 벌일 동안, 피투는 숨겨진 문을 찾아냈다. 예상대로였다. 시머드가 몇 년이나 일을 하지 않고 타로마 섬에서 고용인을 둘이나 거느리고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피투는 문틈을 찾았다. 하나로 짜만든 벽이 아니면 반드시 틈이 생긴다. 이렇게 쉽게 공기 흐름이 새어나가는 것만 찾으면 되는 걸 왜 케니는 헤매는지 피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피투는 이번 계획만 끝나면 케니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계속 데리고 있어봤자 골머리만 썩일 거다. 점점 더 약에 의존하는 것도 그렇고 언젠가 통제하지 못할 날이 올 거다.
피투가 꼼꼼하고 쉼 없이 벽을 더듬은 결과, 비밀의 방에 들어갔다. 그곳에 예상대로 금고가 있었다.
피투는 금고 주위를 돌며 크기를 가늠했다. 가로 세로 네 발, 높이는 대략 여섯 발 반이었다. 크진 않지만 금괴로 그득그득 채웠다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 그렇지. 당신이 믿는 구석 없이 여유작작할 리 없지.
문제는 이걸 어떻게 여는가, 다. 다이얼식이 아니라서 청각과 촉각에 의지할 수 없다. 디지털식이라 비밀번호와 홍채가 필요한데 지금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로는 어림도 없었다. 일이 전부 끝난 뒤에 와야 할까. 피투는 고민이었다. 계획을 세운 건 자신이고 그 계획에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변수는 항상 존재하고 그 변수로 모든 걸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극단 지구주의자 놈들은 죽을 만큼 싫지만 계획은 불확실하고 시머드는 그다지 밉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금고는 확실하다.
피투는 비밀의 방에서 나와 마당을 내려보았다. 시머드는 술에 잔뜩 취해 선베드에 널브러져 있었다. 곯아떨어진 상황에도 잔을 놓지 않는 걸 보면 저 인간도 중증이다. 어쨌거나 피투에게는 좋은 상황이다. 저 상태로 마르스씩을 먹이면 정신이 몽롱해질 테고 묻는 말에 술술 대답할 거다. 그리고 끌고 들어와서 홍채 인식을 시키자. 금고 안에 금괴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지만 주머니를 무겁게만 채워도 몇 년은 아무 짓도 안 해도 된다. 금고는 연 적도 없는 것처럼 얌전히 닫아놓으면 시머드는 술과 약에 취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도 못할 거다.
피투는 비밀의 방으로 돌아와 동선과 계획을 되짚은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아! 피투는 마르스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케니가 줄 때 받아놓을 걸. 후회해도 늦었다. 어쩔 수 없다. 케니에게 도움을 청하자. 마르스씩도 마르스씩이지만 혼자서 시머드를 옮기는 것보다 둘이 옮기는 게 더 수월할 것이다.
젠장. 피투는 케니를 나무란 수분 전 일이 떠올랐다. 케니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냐, 미안하다고 하면 케니도 받아줄 거야. 케니는 나를 잘 따르잖아? 그나저나 케니가 마르스씩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피투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모래시계 속 모래알이 성실하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피투는 방에서 나갈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뱀이 앞을 막고 있었다. 자연에서 태어난 생물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매끈하고 금속성이 짙어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기다란 튜브에 수은을 채워 넣은 것 같았다. 타로마 섬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일까. 은뱀의 정체가 무엇이든 피투는 거리부터 벌렸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했다가는 큰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특히나 뱀은 크기가 작을수록 몸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독을 품는다.
피투는 은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디바이스를 던졌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는 관심을 빼앗기에 제격이었지만 은뱀은 머리를 하늘로 빳빳이 세우고 피투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던질 만한 것이 더는 없었다. 괜한 몸수색을 피하기 위해 목걸이며 반지며 전부 빼었다.
피투가 은뱀과 대치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 말은 시머드가 술에서 깰 확률과 케니가 마르스씩을 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피투는 승부를 걸기로 했다. 어차피 은뱀이 독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있다하더라도 물리지 않으면 된다. 피투는 셔츠를 벗었다. 셔츠로 은뱀의 시야를 막고 나가는 거다. 케니에게 마르스씩을 받아 시머드에게 먹이고 비밀번호를 불게 하자. 그리고 케니와 함께 시머드를 끌고 들어오면 끝이다. 간단하다. 아! 은뱀을 쫓을 만한 막대기도 챙기자. 정원에 나무가 많던데 하나 꺾자.
피투는 다리를 어깨보다 넓게 벌리고 셔츠 소매 양쪽 끝을 잡았다. 피투는 차오르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은뱀에게 셔츠를 던졌다. 은뱀은 그대로 그물에 걸리는 듯 보였고, 피투는 은뱀의 시야를 차단한 틈에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피투는 역시 내가 세운 계획이 틀릴 리 없다며, 마음은 이미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모든 일이 바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피투가 착지했을 때, 오른쪽 다리 무게가 달랐다. 불쾌한 무게감이 종아리를 휘감고 있었고, 그것은 허벅지, 엉덩이, 허리, 어깨를 지나쳐 순식간에 목에 도달했다.
피투는 턱을 당겨 아래를 보았다. 은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눈이 없는 뱀이 목을 휘감고 있었다. 피투는 은뱀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늦었다. 목 주위를 따라 따끔한 통증이 이어졌다. 시야가 몽롱해졌고 힘이 빠졌다. 속이 미식거리며 뒤집혔다.
[[찾았다]]
정체 불명의 목소리가 피투의 뇌를 헤집었다.
“누구야! 비겁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보여!”
피투는 팔을 흐느적거리며 몸통을 흔들었다. 헛된 발버둥이었다. 피투는 맥없이 쓰러졌다. 목이 점점 죄였고 피투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피투는 그것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떼어내야 한다는 의지가 쐐기처럼 뇌 속에 단단히 박혀 있을 뿐 그 명령은 팔에 전해지지 않았다. 피투는 서서히 힘이 빠졌고 자신을 짓누르는 어둠을 꼼짝없이 뒤집어썼다. 어떤 일을 당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피투는 차갑게 식어갔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포식자는 또다시 온기를 잃어가는 먹잇감을 내버려두고 유유히 어둠에 섞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