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5)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겁니다.”


경찰이 말했다.


시머드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어오른 손목을 매만졌다.


아침 일찍 출근한 정원사가 수갑에 묶여 있는 시머드를 발견했다. 목을 조인 상흔이 있었지만 경찰은 교살 도구를 발견하지 못ㄴ했다. 마당 통창이 열려 있었고 거실에는 약에 취한 불명자(不明者)가 죽어 있었다. 목에는 손톱으로 긁은 피맺힌 상흔이 지저분하게 남아있었다. 2층 숨겨진 방 금고 앞에서도 불명자가 죽어 있었다. 1층 불명자와 마찬가지로 목에 상흔이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 않았다. 경추와 목 주변을 따라 미세한 바늘구멍이 있었는데 경찰은 마약 투약법이라고 추정했다.


시머드는 정원사와 가정부에게 오늘도 일찍 퇴근하라고 일렀다. 두 고용인은 기특하게도 고용주 곁에 머물겠다고 했지만 경찰이 보호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경찰도 자리를 피하는 편이 낫다고 알려주었다.


시머드는 인도코끼리 천연 가죽 소파에 앉았다. 간밤에 피투와 케니가 죽었다. 도난당한 물품은 없었다. 가정부가 피투와 케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피투와 케니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면 자신도 용의선상에 올랐을 것이다. 물론 시머드는 타로마 섬 공식 주민이니 ‘다른’ 기준으로 조사를 받았겠지만 말이다.


시머드는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선베드에서 잠든 것까지 기억이 난다. 술에 취해 잠들었나? 아니면 피투가 잔에 무슨 짓을 했을까? 피투가 잔에 손을 댄 건 보지 못했다. 위스키는 시머드가 따랐고 피투는 받아 마시기만 했다. 약하지 말라고 했더니 피투는 화를 내며 집으로 들어갔고 다시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술을 마실 때는 그랬다. 케니도 마찬가지였다. 거실에서 내중력장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다음은? 나 몰래 약이라도 한 건가. 케니 자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하지만 죽을 정도로 약을 할 멍청이는 아니다. 피투도 그렇다. 숨겨진 방을 찾아 금고에 손을 댄 건 괘씸하지만, 미완성인 성공을 자축하며 약에 취해 죽을 만큼 자아도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금고 앞에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시머드는 수수께끼가 하나 더 있었다. 시머드 손목에 채워진 은수갑이었다. 열쇠 구멍이 없는 매끈한 수갑이었다. 수갑은 시머드의 손목을 악어처럼 꽉 물고 놓지 않다가 경찰이 오고 무혐의로 밝혀지자 스스로 결속이 풀렸다. 경찰이 수갑의 정체를 물었고 시머드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찰은 중요 증거라며 은수갑을 가져갔다. 시머드는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경찰이 알아서 잘 해결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시머드는 두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특히 목이 안팎으로 아팠다. 교수형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형수처럼 목을 따라 피부가 부어 있었고, 뜨거운 볕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손만 대어도 따가웠다. 이것 또한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젯밤에 생긴 것만은 확실했다.


경찰은 집안 곳곳을 들쑤시며 소리를 질렀고, 파도 소리는 시끄러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머드는 이마를 짚었다. 너무 과하게 마셨다. 피투와 케니, 둘 다 못 믿을 놈들인데 뭘 믿고 마셔댔을까. 만약 내가 취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이 죽지 않았을까.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까. 어렴풋한 죄책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너는 아니다. 시머드는 불현듯 낯선 목소리를 떠올렸다. 꿈에서 들은 건지 경찰이 고용인들에게 당신들은 용의자가 아니라고 말한 걸 떠올린 건지 헷갈렸다. 불투명한 기억이라도 경찰에게 말해야 할까. 시머드는 손가락 틈 사이로 경찰을 보았다. 경찰은 피투와 케니의 시체를 정리하고 있었다. 괜한 일 더 만들지 말자. 시머드는 고개를 숙였다. 목에 남은 상처가 욱신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갑이 사라졌다. 누락됐는지 다른 증거품에 섞여 들어갔는지 누가 수갑인 줄 알고 가져갔는지 경찰은 증거품을 찾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시머드 하우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불법 침입한 마약중독 관광객들의 약물 오남용에 의한 사망 사고로 매듭지어졌다.


시머드 하우스 살인 사건 이후, 타로마 섬에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무려 열한 명이 죽었다. 루나시티에서 이주한 부호부터 고용인, 하물며 경찰까지 성별과 연령,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그중엔 시머드가 고용한 정원사도 있었다. 시머드는 정원사의 장례식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


살인의 광풍은 타로마 섬을 넘어 카로라 제도 전체를 휩쓸었다. 경찰은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목에 남은 바늘구멍이 피해자들을 묶을 수 있는 연결 고리라는 걸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더욱이 카로라 제도를 점령한 부호들이 세간에 자신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걸 꺼려 수사를 덮으라 압박했다. 경찰은 카로라 제도의 안전을 위해서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버텼지만 불복한 책임자만 옷을 벗었다. 부호들의 바람대로 수사가 중단되었지만 몇몇 정보가 흘러나갔다. 세 자리수 가깝게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비극을 두고 극단 지구주의자들은 카로라 제도를 더럽힌 달토끼에게 내려진 분노의 철퇴라며 헛소리를 해댔다. 찢어죽일 놈들. 시머드는 욕지기와 위스키를 들이켰다.


시머드는 선베드에 누워 하늘을 올려보았다.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이름 모를 검은 새가 미동도 없이 날고 있었다.


이따금씩 얼굴 없는 살인자에 대한 소문이 들릴 때면 시머드는 피투와 케니를 떠올렸다. 아직도 두 사람이 죽은 원인을 모른다. 경찰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고 결론지었지만 시머드는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범인을 적극적으로 찾을 마음은 없었다. 시머드는 피투와 케니를 죽인 살인범을 찾는 것이 두 사람의 혼을 달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피투의 유혹에서 자신을 구해준 얼굴 없는 살인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시머드는 아끼고 아끼는 79년산 평야의 바다 버번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그리고 저편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잔에 부딪친 얼음이 달그락 소리를 내었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오늘도 타로마 섬은 평화로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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