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선물 (1)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그늘진 자리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아요.


지호는 희영의 말을 잊지 못했다. 지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바보같이. 한 마디 받아쳤더라면 지금만큼 기분이 더럽진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론 억울했다. 일부러 티를 낸 게 아니었다. 뭐랄까. 그냥 힘이 없었다. 마라톤을 전력질주한 선수처럼 턱턱 숨이 막혔고, 산해진미를 입에 넣어도 크기만 다른 딱딱한 고무를 씹는 기분이었다. 소리도 잠수한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아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3년간 공들인 우주 정거장 간 협약도 동기에게 넘어가 겨우겨우 매듭지었다. 그 덕분에 지호가 바닥부터 쌓은 공은 마침표를 찍은 동기에게 전부 돌아갔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엎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어떻게 할래. 좀 쉴래?”


부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지호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요?”


“쉬고 싶지 않아? 맡은 협약도 마무리 됐고. 걱정 마. 윗선은 내가 다 허락 맡아놨어.”


“권고 사직…, 뭐 그런 거예요?”


“무슨 말이야.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악덕 회사는 아냐. 내가 지호 팀장이랑 사적으로 친분이 없어서 안 물었는데. 지호 팀장이 겪은 거 보통 사람들이면 다 이해해. 협약도 자기 손으로 마무리 못 지어서 속상하지?”


지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배에 힘을 주었다.


“저 괜찮아요. 부장님.”


부장은 지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답답한 건 나인데 왜 그쪽이 한숨을 쉬어요. 지호는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냅다 두들기고 싶었다. 갈비뼈가 으스러뜨리더라도 갑갑한 가슴을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호는 모은 두 손만 꼼지락거렸다.


“그래, 그래. 알았어. 가서 일 봐. 마음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와.”


부장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지호는 꾸벅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지호는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들은 왜 나를 보고 눈치를 살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던대로 관심 끄고 간격 유지해. 피차 불편하게 선 넘지 말자고. 그동안 잘해왔잖아.


지호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굳이 따지자면 키오스크를 다루듯 필요한 상호작용만 나눴다. 일처리만 잘 굴러가면 되지, 란 생각이었고, 기계와 친분을 쌓는 사람은 없다. 저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그은 선을 굳이 넘지 않는다. 이제껏 교감없이 잘 지내와놓고선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고 관심을 보이고 눈치를 보는 건 이상했다.


지호는 털썩 의자에 늘어졌다. 보고도 아니고 짧은 대화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힘이 쭉 빠졌다. 몸을 가눌 힘도 없어 책상에 무너졌다. 윗선은 내가 다 허락 맡아놨어. 저주처럼 저미는 부장의 목소리를 떼어내듯 지호는 팔에 얼굴을 비볐다. 책상 한편에 놓인 홀로그램 프로젝터 귀퉁이이에 한껏 지친 사람이 비쳤다. 괜찮으세요?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지호는 팔꿈치로 책상을 딛고 몸을 일으켰다.


회사에서 편의를 봐준다는데 버팅길 이유가 있을까? 지호가 출근하는 건 관성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출근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하고 잠을 자는, 회전하는 쳇바퀴 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계속 달릴 뿐이었다. 지호는 한 번도 쳇바퀴에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다. 일을 사랑하거나 책임감이 투철해서는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지호는 황망한 손을 어찌할 줄 모르고 디바이스에서 달력을 띄웠다.


지호는 날짜보다 연도에 눈이 먼저 갔다. 미지가 죽은 지 5년이 지났다. 벌써 5년이다. 지호는 손가락을 쓸어내렸다. 합동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틀 휴가를 낸 걸 빼면 지호는 5년 동안 단 5일, 미지의 기일만 쉬었다. 부장이 오지랖을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정도면 회사 차원에서 강제로 휴가를 쓰도록 유도하는 게 맞았다. 오히려 늦었다.


사내 공유 스케줄을 띄웠다. 지호 이름을 단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었다. 발을 걸친 프로젝트는 있었지만 손이 부족할 때 도와주는 정도지 전담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담당 프로젝트를 매듭짓고 두 달이 되어가는데도 일을 주지 않았다. 부장 말마따나 악덕 회사는 아니어도 직원 쉬는 꼴을 못 보는 회사인데 이상했다. 이런 게 티를 내는 건가? 지호는 메마른 손으로 눈두덩이를 비볐다. 서걱서걱 허물 벗겨지는 소리가 났다.


지호는 한 달 장기 휴가를 얻었다. 부장이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지호에게 부서 사람들은 힘내라고, 푹 쉬고 오라고, 진작 쉬었어야 했다고 한마디씩 얹었다. 사내 메신저로 생면부지에게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지호는 답장하지 않았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지호는 호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집에 있자니 애써 얻은 휴가가 아까웠고, 적극적으로 목적지를 찾자니 의욕이 나지 않았다.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앙 통제 시스템이 버스를 운행해서 운전 기사가 없고, 낮이라 손님도 없었다. 홀로그램 뉴스만 덩그러니 흘러갔다. 지호는 출입구 가까운 자리에 앉아 뉴스를 보았다. 지호가 담당한 협약에 대한 뉴스가 짤막하게 나왔다. 지호의 자리를 메운 동기가 담당자와 악수를 하며 웃고 있었다. 저기에 있었으면 좋았을까. 지호는 만약을 짐작했지만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 지호에겐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없었고, 진심으로 슬픔을 나눠줄 사람이 없었다.


뉴스 단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달렸다. 지호는 홀로그램 뉴스와 사라지는 창밖 풍경을 갈마보았다.


<‘화성의 선물’ 진상 규명을 위한 루나시티 측 피해자 대표와 지구연합 측 피해자 대표 회동.>


지호의 시선이 홀로그램 뉴스에 고정했다. 홀로그램은 차례차례 참석자의 모습을 띄었고, 마침내 희영으로 바뀌었다.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그램 가까이 갔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위험합니다.]


경고 안내가 시끄럽게 울렸지만 지호는 무시했다.


홀로그램 희영은 지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아직도 화선 피해자 모임을 계속 하는구나.


[차량 운행 중 자리 이동은 위험합니다.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이내 뉴스는 다른 단신으로 넘어갔다. 지호가 자리에 앉자 경고 안내가 멈췄다.


집으로 돌아온 지호는 거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서 디바이스를 쓸어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단신 뉴스를 본 이후로, 지호의 일과는 화선 피해자 모임 검색이 전부였다. 최근일수록 화선 피해자에 대한 뉴스가 줄었지만 지호는 검색을 멈추지 않았다.


[구역 내 대기 조정입니다. 5분 후, 10분간 비가 내릴 예정이니 외부에 계신 분들은 가까운 건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바깥에서 강우 안내 방송이 먹먹하게 들렸고, 디바이스도 노란색 경고 홀로그램을 띄웠다.


지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서둘러 근처 건물로 뛰어들었고, 호버 카와 호버 버스가 착지했다. 호우 대피 중. 샛노란 홀로그램이 택시와 버스 주위를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가 어두워졌고,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떨어지던 물방울이 물줄기로 바뀌어 폭포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다. 폭포비는 온세상을 쓸어버릴 것처럼 무섭게 쏟아졌다. 비라고 부르기엔 지구의 것과 달랐다. 미지와 함께 날씨 정원에서 본 비와도. 루나시티에선 대기 성분 조절을 위해 인공 강우를 뿌린다. 물이 가득 찬 제습기 탱크를 비운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그래서 맨몸으로 폭포비를 맞으면 위험하다. 지구에서 온 여행자가 멋모르고 우산으로 폭포비에 맞서려다가 두개골이 깨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뉴스가 심심하면 나온다.


폭포비는 예보대로 정확하게 10분 동안 내렸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대기 조정을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이 건물에서 길거리로 나왔고, 호버 택시와 호버 버스를 감쌌던 안내 홀로그램도 사라졌다. 호버 버스는 두둥실 떠올라 다음 정거장으로 향했고, 호버 택시에 손님이 탔다. 세상이 다시 움직였다.


지호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 새삼 집이 넓게 느껴졌다. 미지와 살 때는 좁아터졌다 싶었는데… 미지를 떠나보내고 미지가 오랫동안 간직한 물건은 물론 미지가 산 물건—슬리퍼, 파자마, 화장지, 라면까지도 버리지 않아 공간 변화가 없는데도 허전했다. 지호는 공연히 천장을 보았다. 왜이리 또 적막한 건지. 지금이라도 미지가 방문을 박차고 나와 모처럼 얻은 휴가 재미없게 보낼 거냐고 놀러 가자고 꼬실 것 같았다. 지호는 돌아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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