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시티> 연작소설
미지는 정말 말이 많았다. 얼마나 말이 많냐, 하면 말그대로 숨쉬는 것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왼쪽 코가 막혀서 오른쪽 코로만 숨쉰다고 하다가 코를 팽하고 풀더니 와 뻥 뚫렸다 개운하다 신나 하고는 아 또 막혔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정말 귀찮으면서 귀여웠다.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술자리에서 지호는 미지에게 물었었다. 왜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거냐고. 미지답지 않게 뜸을 들이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무섭고. 그때 지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혼자 있으면 혼자 있는 거고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는 게 무서울 일인가? 하지만 미지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게 되면서 지호는 미지가 혼잣말을 하도록 두었고, 미지가 하는 말에 더욱 호응했다. 스스로조차 이렇게 말이 많고 리액션이 좋은 사람인지 놀랐다. 지호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미지의 혼잣말이 듣고 싶었다. 미지가 보고 싶었다.
지호는 ‘화성의 선물’ 피해자 모임에 출석했다. 약칭 화선 모임은 4년 전처럼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열렸다. 지역에 따라 매주 모이는 데도 있지만 규모가 큰 모임은 월 1회에 그친다.
지호는 딱 한 번 화선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원래는 지역마다 감염자 시체를 관리했는데, 화선 피해자 모임이 시체 관리를 한 곳에서 일괄적으로 통합 관리하겠다고 나선 탓이었다. 보호자 등록 때문이라도 최소 한 번은 모임에 출석해야 했다.
지호는 보호자 등록 대기표를 뽑고 흐린 조명조차 닿지 않는 구석에서 호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웃기지 않아요? ‘화성의 선물’이라니.”
정화기를 낀 여자가 다가왔다. 그는 중력 적응 문제를 앓고 있는지 내중력장치(보조 중력 조절 장치)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코며 입이며 목이며 주렁주렁 투명관을 달고 있는 모습이 보기 부담스러웠지만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름 모를 전염병(아직 ‘화성의 선물’이라는 이명이 붙기 전이다)에 대해 아는 건 공기 전파로 전염된다는 사실이었고, 이것에 대비하려면 공기 여과기 또는 정화기는 필수였다. 그 당시 지호도 여과기를 끼고 있었다. 애초에 여과기가 없으면 참석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아도 돼요?”
지호는 곁눈질로 회장을 둘러보았다. 빈자리가 많은데 굳이? 혼자 있고 싶다고 할까. 흔쾌히 옆에 앉으시라 할까. 머릿속에 이런저런 대답이 굴러다니는 동안 여자는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요.”
지호는 한발 늦게 허락했다.
“희영이에요.”
희영은 주먹을 내밀었다. 지호는 손바닥을 핀 것도 주먹을 쥔 것도 아닌 모양으로 희영의 주먹을 툭 건드렸다.
“미지… 입니다.”
지호는 자연스럽게 미지의 이름을 대고서는 놀랐다. 왜 자기 입에서 미지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지호는
정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은 생각에서 그쳤다.
“미지 씨.”
지호는 흠칫 놀라며 희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화기에 눌린 볼살 때문에 희영의 눈은 초승달이었다.
“경계심 풀어요. 빈자리도 많은데 옆에 앉아서 놀란 거 같은데. 사업 권유. 종교 권유. 이런 거 아니에요.”
지호는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잘게 끄덕였다. 오랜만에 듣는 ‘미지’에 지호는 울컥했다.
“잘 들어줄 거 같아서 앉았어요. 제 얘기를 들어줄래요?”
지호가 허락을 하기 전에 희영은 봇물 터진 듯 혼잣말을 쏟아내었다. 희영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정화기에 뿌연 숨이 채워졌다. 지호는 옆에 앉아도 되냐 묻는 희영보다 혼잣말하는 희영이 덜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향수를 자극하는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책맞게 울진 않았다. 중간중간 희영이 미지의 이름을 부르는 통에 미지가 떠올라 울컥했지만 그뿐이었다. 희영은 미지와 달리 머리도 길고 곱상하게 생겼고, 목소리 톤도 낮아 감상에 빠질 이유가 없었다.
“기대하고 왔는데 영 아니네요. 저 인간들, 죽은 사람들 핑계로 돈 벌 생각뿐이에요. 대체 누가 선물이라고 이름 붙였을까요? ‘화성의 선물’이 뭐예요. 화성에서 온 바이러스는 맞아요? 처음에는 루나시티에서 불법 실험하다가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더니 한동안은 또 극단 지구주의자 테러라고 했잖아요?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진상을 밝힐 생각은 안하고 어떻게 해서든 보상금 더 받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생각뿐이네요. 아니, 보상금 받으면 죽은 사람들이 돌아온데요?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해야지. 이게 무슨 난린지.”
희영은 갑갑한지 뿌연 정화기를 들었다 놓으며 다시 위치를 잡았다. 붉게 눌린 자국이 광대를 가로질렀다.
“돈 때문에 그러겠어요.”
“미지 씨, 딱 봐도 돈 때문인데 돈 때문에 그러겠냐뇨. 저 인간들 얘기 들어봤어요? 보니까 회의장 들어왔을 때부터 쭉 구석에 앉아있었던 거 같은데. 저 인간들, 인간이라고 하기도 싫네. 가관이에요. 80세 이상은 얼마, 60세 이상은 얼마, 50대 얼마, 40대 얼마, 30대 얼마, 20대 얼마, 10대 얼마, 영유아는 얼마. 판 깔아놓고 시장에서 장사해요? 경매해요? 보상금 나오면 좋기야 하겠죠. 그런데 진상부터 밝히는 게 순서 아니겠어요, 미지 씨?”
희영은 지호를 흘겨보았다. 희영은 지호가 함께 모임을 이끄는 무리를 씹어주길 바랐다. 지호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호는 미지를 편히 보내주기 위해 참석했다. 보호자 등록만 마치면 다음 모임에 얼굴을 비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체들 대충 모아놓고 위로소라고 하는 것도 웃겨요. 차라리 시체 보관소가 나아요. 죽은 사람들 예우도 안 해주면서 위로? 누굴 위한 위로죠? 지구연합이고 루나시티고 이용할 생각만 하지. 죽은 사람들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 하면서.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마음에 안 들면 희영 씨가 나서지 그래요.”
지호 옆에 앉고 나서 희영이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벌게진 희영의 얼굴이 조금씩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저기, 미지 씨.”
똑똑 떨어지는 말소리에 지호는 희영이 직접 건드린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을 세워선 가슴팍을 콕콕.
“그늘진 자리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런 말 알아요?”
희영은 지호가 대꾸하기 전에 말을 이어나갔다.
“혼자만 큰일 겪은 것처럼 구시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아픈 사람들이에요. 시체에 가격표 다는 저 인간들도 그렇고, 저도요. 슬프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죽은 사람들만 불쌍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는 가격 매기는 인간들이 미지 씨보다 낫네요.”
희영은 정화기를 살짝 들었다가 놓았다.
“미지 씨는 누굴 잃었어요? 몇 명이나 잃었어요? 몇 명이나 죽었는지 묻는 게 트로피 자랑하는 거 같은데, 저는요. 넷이나 잃었어요. 우리 엄마, 우리 남편, 우리 애들 둘. 넷이요. 돈이야 많이 쳐주면 좋죠. 저는 네 명이나 받을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녹음본 유출 안됐으면 지금도 화선 때문에 줄줄이 죽어나갔을 거예요. 겨우 백신 나와서 숨통 트였는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하면 돼요? 죽은 사람 위로하는 거. 좋죠. 좋은데. 산 사람이 무얼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요.”
희영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일어났다. 더운 숨이 정화기에 하얗게 흔적을 남겼다.
지호는 멀어지는 희영을 바라보았다. 희영을 붙잡고 당신이 뭔데 훈계질이냐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때마침 지호의 번호가 불렸고, 보호자 등록이 마치는대로 지호는 회의장을 떠났다.
보상금은 점수제로 책정되었다. 가장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았다. 좋은 직장, 좋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도 가산점을 받았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과 아기는 다른 연령에 비해 낮은 점수를 부여받았다. 미지는 20대지만 중소 기업에 비정규직이라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나마 나이 덕분에 평균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그에 따른 보상금이 책정되었지만, 지호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미지와 지호는 법적으로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 파트너였다는 증거는 지호의 증언 말고는 없었다. 사진과 영상은 얼마든지 합성으로 만들 수 있으니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미지와 지호는 한 집에서 살았지만 미지가 전입 신고를 하지 않아 사실혼 관계도 증명하기 어려웠다.
미지는 지호를 사랑했지만 사람을 믿지 않았다. 미지는 두 발로 땅을 디뎠을 때부터 많은 사람을 겪었고 상처를 받았다. 지호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미지는 굳게 믿었지만, 과거가 그를 잡고 놓지 않았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 말에 지호는 서운했지만 미지를 이해했다. 미지가 겪은 시간을 지호가 감히 재단할 수 없었다. 더욱 미지를 사랑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호는 보상금 미지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처럼 사망자와 관계가 애매한 사람이 받을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이해했다. 지호가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이해했다고 이해했다.
애초에 지호가 미지의 시체값을 받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미지를 사랑했으니까 그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긴 싫었다. 미지를 사랑한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는 싸구려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미지에게 할당된 보상금은 정부로 귀속되었다. 지호는 자신과 미지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아이가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보상금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었다면, 하고 말이다. 아예 얘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호는 맡은 프로젝트만 끝나면 알아보자 시도해보자 말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새로운 프로젝트가 꼬리를 물었다. 미지는 지호와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미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지호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아이를 볼모로 지호의 미래를 저당잡는 짓은 하기 싫었다. 그리고 지호가 변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다.
왜 바쁘다는 핑계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지호는 미지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망설이는 걸 알고 있었다. 지호는 미지와 둘만 있어도 행복했다. 아이가 있어서 더 행복할지 의문이었고, 아이를 잘 돌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과 미지를 닮은 아이는 둘도 없는 선물이겠지만, 아이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건 다른 문제다. 지호든 미지든 누구든 아이를 낳을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주저했다. 지금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