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3)

<루나시티> 연작소설

by 송건자

*


“자네만한 인물이 없어.”

라리슨 장관은 일인용 낙타가죽 소파에서 일어나 집무 책상 뒤에 놓인 키 낮은 장식장으로 걸어갔다. 리히터가 따질 틈도 주지 않았다.


“술은 마시나?”


리히터가 괜찮다, 고 대답했지만 장관은 장식장 위에 엎어놓은 유리잔 두 개를 뒤집었다. 잔 크기에 딱 맞는 얼음을 유리잔에 넣고 장식장 위에 둔 버번위스키를 땄다. 장관은 얼음이 절반만 잠기게 위스키를 따라 리히터에게 내밀었다. 리히터는 잔을 받아들고는 코에 가져갔다. 독한 위스키 냄새가 뇌를 헤집었다. 리히터는 유리잔 립에 입술만 살짝 대었다 떼고 탁자에 내려놓았다. 라리슨 장관은 얼음이 잠기게 한 잔 가득 채우고는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크으. 끓는 소릴 내며 미간 깊이 주름이 패였다.


“슬슬 달토끼들이랑 협상해야지.”


“장관님, 잘 아시면서 저한테 막중한 임무를…… 전 못합니다. 깜냥이 안 돼요.”


리히터는 애절하게 라리슨 장관을 바라보았다. 라리슨 장관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장관님 보좌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따라가겠습니다. 제게 협의를 이끌라뇨. 안 될 말씀이십니다. 능력이 안 돼요.”


“로버트.”


“정말 가혹하십니다.”


“로버트.”


“방위부에서 나가라는 말씀이세요?”


“로버트.”


라리슨 장관이 리히터의 초록 눈을 바라보았다. 장관은 살짝살짝 좌우로 잔을 흔들었다.


“농담이 지나치구만. 관계 협의를 백 번, 천 번 끌고 가자는 말이야?”


“제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시잖습니까, 장관님.”


장관은 목을 젖혀 유리잔을 비우고는 자연스레 나오는 쓴소리를 삼켰다. 장관은 장식장 위에 든 버번위스키 병을 들었다. 한 모금도 줄지 않은 리히터의 잔을 슬쩍 보고는 조금도 녹지 않은 얼음 위로 위스키를 부었다.


“한 번 말해보게. 내가 간다고 해결될 것 같나?”


“제가 가는 것보다 나으시겠죠. 7차까지 끌고 온 책임자시지 않습니까. 달토끼가 원하는 걸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자그마치 8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라리슨 장관님 말고는 이 우주에 없을 겁니다.”


“비꼬는 건가?”


“비꼬다뇨. 감히 말씀컨데 칭찬입니다.”


라리슨 장관은 빙긋 웃으며 입술을 위스키로 적셨다.


“달토끼들한테 난 철천지원수야. 내 얼굴만 봐도 아홉 번째 테이블을 준비할 걸.”


장관은 유리잔을 빙빙 돌렸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유리잔 표면에 부딪쳤다. 버번위스키 특유의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점점 더 마시고 싶지 않아졌다.


“믿고 맡긴다는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루나시티에서도 갑자기 엉뚱한 사람이 튀어나오면 협상을 포기했다고 여길 거예요.”


“그런 걱정은 말아.”


라리슨 장관은 다시 입술을 위스키로 적셨다.


“로버트, 자네. 루나시티에서 일한 경험 있다고 했지?”


“아주 잠깐입니다.”


“루나시티는 왜 가려고 했나?”


리히터는 우주방위부 최종 면전을 치르던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다. 뭐라고 했더라. 인류는 우주 시대로 접어들었고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니 새로운 문이 열렸을 때 그 문 너머를 몸소 겪어보고 싶다……고 했었나.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리히터는 면접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면접자의 대답에 크게 관심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설령 그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대답으로 탈락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대학 졸업하고 진로를 찾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던 차에 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루나시티에 가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생명 보험금도 들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도움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유구만. 또?”


“……약간의 동경이 있었습니다.”


“동경이라. 다들 그렇지. 달. 화성. 우주. 듣기만 해도 황홀해지지 않나. 젊을 땐 나도 그랬어. 다들 그랬을 거야. 내 얘길 하자는 건 아니고. 얼마나 일했었나?”


“세 달 조금 안 되게 일했습니다. 이력서에 쓸 정도도 못 됩니다.”


라리슨 장관은 피식 웃더니 남은 위스키를 털어넣었다. 달그락, 얼음이 잔 바닥에 부딪쳤다.


“삼개월이면 달토끼들한텐 동포나 마찬가지야.”


오답인 줄 알았던 답이 정답이었을까. 리히터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라리슨 장관의 표정을 살폈다. 장관은 무척 개운해 보였다.


“나만 믿어. 내 말 들어서 잘못된 일 있었나?”


“…없었습니다.”


“걱정하지 마. 나 따라서 관계 협의도 참가했었잖아. 두 번이었나?”


리히터는 세 손가락을 뻗었다.


“3번이면 충분해. 언제까지 차관보로 있을 거야. 더 높이 올라가야지. 장관 자리는 보장 못해도 차관까진 레드 카펫 깔아줄게. 자네도 적은 나이가 아니잖아. 슬슬 애들 대학 갈 때 아니야? 몇 살이야.”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이렇게 있습니다.”


“아들, 딸?”


“딸, 아들입니다.”


“곧 대학 가겠군. 그리고 애들만 준비하나? 자네도 자네지만 와이프도 쉬게 해야지. 아직도 애들 가르치지?”


“그렇습니다.”


“로버트. 가장으로서 위엄을 보일 때야. 눈 앞에 기회가 왔어. 이대로 놓칠거야?”


리히터는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리슨 장관이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지구연합 우주방위부 장관은 몇몇 나라의 수장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지위를 가지고, 차관도 그에 못지 않게 무시 못할 권력을 거머쥔다. 권력은 돈을 끌어모은다.


다음날, 리히터는 우주방위부 제2차관으로 승진했고, 제8차 지구-달 관계 협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예상대로 새로운 인물의 갑작스런 등장에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리히터는 우주방위부에서 이십 년 가까이 근속했지만 미디어에 노출된 적이 없어 베일에 쌓여 있었다. 유일하게 공개된 정보라면 루나시티 노동자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기간에 대해선 실리지 않았다. 지구에서 태어난 0.02 퍼센트 사람들이 안고 있는 선천적 이석 장애로 무중력을 견딜 수 없어 지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 우주와 루나시티에 대한 동경을 잊지 못해 우주방위부에 들어온 낭만 가득한 인물로 그려져 있었다. 스페이스 노스텔지언. 대중이 마주한 리히터의 첫 이미지였다.


관계 협의를 도맡은 리히터는 라리슨 장관과 자주 만났다. 관계 협의 대표로 뽑혔어도 라리슨 장관의 전략대로 움직여야 했다. 리히터는 라리슨의 새로운 가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로버트, 이번 관계 협의에서 자네가 기억해야 할 건 딱 하나야.”


“하나요? 장관님, 그간 루나시티와 협의하는 항목은 네 가지 아니었습니까? 자원 독점권, 실험 통제…”


장관은 리히터의 입술을 틀어막을듯 손을 뻗었다.


“중간에 말 끊어서 미안하네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자네는 딱 하나만 저놈들한테서 받아내면 돼.”


장관이 검지를 세우곤 리히터를 가리켰다.


“요즘 지구나 달이나 뭐가 문젠가.”


“전염병이죠.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를 그 병.”


라리슨 장관은 정답이라며 손가락을 튕겼다.


“루나시티와 관계 협의가 끝나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텐데요. 지금 나오는 백신이나 치료제는 임시방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성능도 기대 이하고요.”


“그런 건 나중으로 미뤄두게.”


“미루라뇨. 장관님. 치료제를 빨리 만들어야죠. 저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나자빠지고 있습니다.”


“알아, 알아. 백신이든 치료제든 생명보건부나 과학기술부에서 알아서들 잘 할 거야.”


“잘 못하고 있으니까 이 지경이 된 거 아닙니까?”


“내가 자네랑 정책 문제로 싸우려고 얘길 꺼낸 줄 아나?”


장관은 미간을 구기며 혓소리를 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 상태가 안 좋아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감염됐나?”


“검사 중입니다. 격리소에 있는데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별일 없을 거야. 걱정 마.”


“감사합니다.”


리히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라리슨 장관은 낙타가죽 소파에서 일어나 장식장 위에 엎어놓은 유리잔을 뒤집었다. 하나였다.


“내가 사람들 죽으라고 느리겠어? 가뜩이나 지구 인구수도 줄고 있지 않나. 그뿐이면 다행이지. 요즘 태어난 애들은 죄다 루나시티에서 살고 싶어하고. 우리 딸도 루나시티에 가고 싶어서 난리야. 여행이 아니라 아예 거기서 살고 싶어해. 어처구니가 없어. 평생 하늘도 못 보고 합성 산소를 마시고 살아야 하는데 뭐가 좋다고. 차라리 스노그 이석증이면 좋겠어. 우주는 아예 꿈도 못 꾸게.”


라리슨 장관은 버번위스키를 유리잔 가득 따랐다. 얼음은 없었다. 장관은 예의상 리히터에게 위스키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리히터는 고개를 저었다. 라리슨과의 짧은 미팅 후 바로 관계 협의 관련자들과 회의가 또 있었다.


“이제 루나시티는 끝이야.”


라리슨 장관은 위스키 한 모금을 들이키며 소파에 풀썩 앉았다.


“끝이라뇨?”


“자네는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니 내가 하나 일러주지. 달은 이제 유일한 실험실이 아니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루나시티와의 관계 협의가 길어지면서 지구에서 연구하는 백신과 치료제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엑스트 정거장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루나시티만 바라보고 손가락을 빨 수는 없다.


“자네 얼굴을 보니 당연한 얘기를 하냐는 거 같군. 엑스트는 너무 좁잖아. 거기 말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실험실이 필요해. 루나시티만큼 크고 넓고 안전한. 당장 전염병 때문만은 아니야. 사람은 항상 멀리 봐야 해. 걱정 마. 언제나 그랬듯 위기는 잘 헤쳐나갈 테니까. 인간은 신이 총애하는 종족이잖나.”


리히터는 그만큼 신에게 미움 받는 종족이기도 하다, 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자리는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마스 돔(Mars Dome)이 곧 완성돼.”


리히터도 소문을 들었었다. 루나시티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지고 루나시티가 목소리를 점점 내기 시작할 무렵, 지구연합은 루나시티와의 총성없는 전쟁을 준비했다. 루나시티를 굴복시키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인간이란 족속은 불합리를 견디지 못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인간을 그래왔다. 지구연합은 관계 협의라는 콜로세움을 만들었지만 루나시티를 놓아줘야만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했고 달이 아닌 다른 기점을 찾았다. 가자, 화성으로. 결국 처음 목표로 돌아간 셈이었다.


“축하할 일이군요. 하지만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겠어요?”


“시간이 걸리겠지. 달처럼 지구에서 가깝지도 않잖아. 궤도 레일을 완공해도 접근이 쉽지 않을 거야.”


“그러면 마스 돔이랑 관계 협의는 상관 없는 거 아닙니까?”


장관은 태평한 미소를 지으며 버번위스키를 한모금 머금고는 음미하듯 지긋이 눈을 감았다.


“거기가 자네가 나설 차례야.”


리히터는 멍청한 얼굴로 장관을 바라보았다. 라리슨 장관은 무릎을 탁 치며 허리를 세웠다.


“바로 그 표정 때문이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그 어벙한 표정.”


리히터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테이블에서도 그런 얼굴로 하라고. 자네가 할 일은 하나야. 서명을 받아.”


“어떤 서명이요?”


“전염병이 루나시티에서 퍼졌다는 걸 인정하는 서명.”


흐리멍덩하던 리히터의 얼굴이 방향성을 갖추었다.


“루나시티가 인정할 리 없습니다.”


“나도 알아. 인정한다는 건 지금까지 지구와 달이 입은 물적, 심적 피해를 전부 책임지겠다는 뜻이니까. 달토

끼들도 멍청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자네가 눈치껏 던져주라고. 자원 독점권이나 실험 통제권 같은 먹잇감을 말이야. 맛없게 대충 던지지 말고 침을 질질 흘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쩔 수 없이 줘. 뼈를 내어주는 얼굴로 던져주라고. 베스트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거지만 팔다리 아깝다고 심장을 잃을 순 없지.”


라리슨 장관은 테이블에 유리잔을 내려놓고 소파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리히터의 어깨를 양손으로 꾹꾹 주물렀다.


“자원 독점권이야 우리보다도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야. 이미 기업에게도 설명해뒀어. 적극적으로 협조한 기업부터 마스 돔에 들어올 우선권을 주겠다고. 그들도 수긍했어. 툭하면 인권이니 조약이니 말만 많은 루나시티보다 조용한 마스 돔이 더 낫겠지. 실험 통제권도 마찬가지야. 답답해도 당장은 엑시트 정거장에서 하면 돼. 부족하면 더 만들자고. 만들 시간이 부족해? 그럼 용도 변경해. 지구연합이 가지고 있는 우주 정거장 꽤 있잖아. 마스 돔 완공까지 시간을 벌어보자고.”


“사람들이 전부 감염되면 소용 없는 일, 아닐까요?”


“재수 없는 소리! 우리가 언제 실패한 적 있나? 인류가 망한 적 있어? 인간은 축복받은 종족이야. 우리는 우리한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돼. 나는 나. 자네는 자네.”


라리슨 장관은 어깨에서 손을 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장관은 유리잔을 들고 손목을 빙빙 돌렸다. 그리고 목을 젖혀 남은 버번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어때, 로버트. 할 수 있겠나?”


리히터는 긍정했는지 부정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은 단지 라리슨의 목구멍으로 타고 들어간 버번위스키가 마시고 싶었다.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독한 술을.


리히터는 자신의 전략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원 독점권과 실험 통제권을 먼저 내어준 건 협의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2등 서기관의 얼굴에서도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때마침 주제도 전염병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그 책임에 대해 제안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 감염자들은 뭐였냐고.


리히터는 헬멧 고글을 손바닥으로 퉁퉁 내리쳤다. 그때였다. 리히터는 별안간 내리쬐는 초록빛에 눈이 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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