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11.6.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가 돋기 전에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감독을 맡았다는 것에서 더 관심을 가졌다. ‘더 랍스터’부터는 개봉하는 족족 극장에서 보았으니 나름의 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도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왜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흥행은 조금 어려웠겠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지구를 지켜라’와 거의 같다. 줄거리를 반쯤 적었다가 지웠는데 이 영화는 내용을 모르고 보는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나는 원작을 보지 않았지만 주요 장면과 결말을 알고 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인터넷에서 보았기 때문인데 하나도 모르고 봤으면 클라이맥스와 결말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 대신 결말을 알았기 때문에 엠마 스톤과 제시 플레멘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셸을 연기한 엠마 스톤의 대사와 표정이 압권이다. 납치 당한 CEO를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드러날까봐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안드로메다인이라고 생각하니 다르게 보였다. 이중 플레이를 한다고 해야 할까. 테디를 연기한 제시 플레멘스 역시 그렇다. 음모론에 사로잡힌 미친 놈으로만 볼 수 없다. 인간으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를 수차례 저질렀지만 잔인무도한 짓이 전부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아니 그의 모든 행동이 처절하게 느껴졌다. 그탓에 많은 사람이 죽고 결국 자기 엄마도 죽이지만. 엄마를 살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 때문인지 삶이 무너진 한 남자가 삶의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버티는 건지 혹은 그 두 가지 모두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제시 플레멘스의 연기도 특별하다. 역시 미친 놈 연기를 잘한다.
유머가 제법 섞여 있는 ‘지구를 지켜라’와 달리 ‘부고니아’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웃음기를 싹 빼고 섬뜩한 것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기괴함이 스며있다. 영화의 서두를 여는 꿀벌 이야기는 기괴함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데 주요하다. 안드로메다인이 지구에 침공해서 서서히 인간을 잠식한다는 테디의 주장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궤변을 궤변으로 들리지 않게 하는 것, 이라고 할까? 가장 인상 깊은 건 배경 음악이었다.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현악기 음악이 클라이맥스 장면에 귀를 자극하는 게 영화가 종합 예술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했다.
‘부고니아’는 음모론에 사로잡힌 미친 남자가 뒷걸음질로 안드로메다인을 잡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다. 테디가 왜 음모론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는지 그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엄마를 살리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하면 불쌍하다. 미셸은 안드로메다인으로서 지구인을 테스트하기 위해 테디의 엄마—샌디를 아프게 했다고 하지만 왜 약한 사람을 시험 대상에 올렸을까 하면 모르겠다. 제일 약한 사람이 버티면 지구인 모두를 살릴 가치가 있다고? 강한 사람으로 테스트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은 숨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거기에 병까지 얹으면 견디기가 더욱 힘들 것인데.
영화의 결말을 보면 어차피 인간은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테디가 미셸을 납치하지 않았더라도 미셸은 인간에게 실망하고 평평한 지구를 덮은 공기 방울을 터뜨렸을 것이다. 인간만이 죽은 지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생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며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우주에서 사라진 인간이 그 결말을 볼 방법은 없다.
‘부고니아’는 꿀벌을 만들어내는 의식의 이름으로, 정육면체로 된 작은 집 안에 소의 시체를 집어넣고 기다리면 꿀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은 꿀벌이 소의 시체에서 자연발생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제목과 영화의 의미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요르고스란티모스 #부고니아 #영화 #영화감상 #기록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