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삶의 전부였던 영화를 못 찍게 되어버린 찬실이가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다시 영화를 찍게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면,
여성 서사를 좋아한다면,
소소한 정취를 좋아한다면,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일상 속 뻔뻔한 판타지가 보고싶다면,
어떤 분야를 깊게 사랑해본 적 있다면,
나이가 든 것처럼 느껴진다면,
세상이 내 맘같지 않고
혼자인 것 처럼 외롭다면,
보세요,
찬실이는 복도많지.
평생 영화만 찍으면서 살고픈 노처녀 영화 제작pd 찬실.
늘 함께 영화를 만들던 지감독이 갑자기 술자리에서 죽어버리자
수익이 끊긴 찬실이는 달동네 하숙집으로 이사를 가고
친한 배우 동생 소피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직을 한다.
소피네 집은 달동네 하숙집과는 비교도 안될 고급 빌라지만
열등감없는 찬실이는 현재 역할에 충실하게 일을 한다.
자신을 총애하는 줄 알았던 영화사 대표에게 지감독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당하고,
이제는 영화 현장이 아닌 소피네 집 분리수거를 관리하는 신세가 된 찬실이.
보다 못한 소피는 여태 제대로된 연애도 못했으니 이참에 연애를 하라고 권하고,
마침 소피의 불어선생님이자 단편영화감독 영이가 찬실이의 눈에 들어온다.
찬실이는 영이를 통해 자신이 가진 편견을 알게되고, 그에게 자신을 이해받는다.
오랜만의 설렘에 찬실은 영이와 자신이 사귈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찬실에게만 보이는 장국영 귀신은 잘될거라고 찬실이를 응원한다.
찬실이가 영이의 직장에 도시락을 싸가서 함께 먹고 마음을 드러낸 그날,
영이는 누나 동생으로 둘의 관계에 선을 긋는다.
당황한 찬실이는 먼저 간다며 허둥대다 바닥에 도시락을 떨구고
아스팔트에 나뒹구는 빈 도시락통을 줍는 수치스러운 모습을 영이에게 남긴다.
잠시나마 영화를 대신할 삶의 구원이 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같은 찬실이.
찬실이는 문득 아이처럼 챙겨줘야 하지만,
뭐든지 금방 잊고 생각없이 해맑은 소피의 성격이 부럽다.
앞으로가 막막한 찬실이는 영화 관련 책, 비디오를 모아 현관밖에 내놓고
영이에 대한 마음과 함께 영화에 대한 마음도 접는다.
하숙집 할머니는 이런 찬실이를 죽 지켜보면서도 별 말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한다면서도, 열심히 한글을 배우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찬실이는 이런 할머니를 보면서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는법, 매일을 정성스럽게 사는 법,
담담하게 소망하는 법, 시를 쓰는 법을 배운다.
늦은 밤 장국영 귀신은 잘될거라고 한 것은 영이와의 관계가 아니라고 찬실이를 위로하며
찬실이를 영화에 빠지게 만든 영화 집시의 시간의 소품인 아코디언을 건네준다.
찬실이는 싫지않은 듯 커다란 아코디언을 어깨에 걸치고 건반을 두드려본다.
다음 날 찬실이는 현관밖에 내놓은 영화 자료들을 다시 방으로 가져온다.
찬실이는 이제 '영화없이 살 수 있어요?' 라는 질문에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한 영이를 이해한다.
누군가가 있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찬실이는 이제 자기의 시나리오를 쓴다.
물론 재미는 없다.
찬실이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본다. 소피, 영이, 하숙집할머니, 장국영귀신, 영화하는 후배들.
방전된 찬실이 방 전구 하나 사는데 굳이 다같이 간다고 어두운 밤 경사진 산길을 히죽대며 내려가는 사람들.
찬실이는 맨 뒤에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후레쉬를 비쳐준다.
그리고 작게 소원을 빈다. 찬실이는 참 복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