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왜좋
� 별로 / ⭐ 2.5
한줄평 : 슬프게도 괴물은 괴물을 키운다.
1. 부잣집 어린 따님의 제멋대로 여행기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남자들(갓윈 백스터, 덩컨 웨더번, 알프레드)에게 억압당하던 여성 벨라가 해방되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벨라는 억압된 적이 없다고 본다.
갓윈 백스터가 그녀를 혼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은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미취학 아동 수준의 신체발달과 정신연령이었으니. 자신과 동반한다면 함께 해외 여행도 다녀올 예정이었다.) 자신과 동반했을 때 밖에 오래 머물지 않은 것은 자신의 공포스러운 외모때문에 벨라도 같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까봐서 였다. 벨라가 덩컨 웨더번과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갓윈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었는데, 그 이유는 벨라가 자신을 증오할까봐 였다. 갓윈은 벨라를 억압하기는 커녕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준 아버지였다.
덩컨 웨더번은 벨라를 억압하고 싶어했으나 번번히 벨라에게 당히기만 했다. 갓윈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받으며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 벨라는 애초에 억압 가능한 여자가 아니었다. 벨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다.
알프레드는 아마도 영화 시작 전의 타임라인에서 벨라를 억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타임라인 속에서 벨라는 자신을 다시 억압하려는 알프레드를 아주 쉽고 간단하게 제압하고 탈출하며, 그를 응징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스토리로 볼 때 영화는 벨라가 주체성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살아오던 벨라가 스토리상 성장을 해야 하니 성장하는 척을 하는 여행기에 가깝다.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모든 돈을 잃은 벨라는 파리에서 매춘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을 생산수단으로 사용하기로(=매춘)을 선택한 벨라의 선택은 위대하지 않다. 벨라는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벨라는 자신이 알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학습한다. 그런 면에서 벨라의 매춘은 부잣집 따님의 매춘부 체험이다. 벨라는 매춘의 의미, 매춘을 하는 사람들의 감정 공감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매춘이라는 행위만을 흉내내는 것 뿐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가 꽤나 작위적이고 계몽적으로 느껴졌다.
2. 감정은 취사 선택하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스토리 뿐 아니라 감정선도 작위적이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옮기느라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캐릭터의 다음 행동은 작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스스로 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벨라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감독이 짜놓은 스토리와 의미를 따라가기 위해 쓰이는 장치에 불과한 것 같다.
영화는 본능적인 욕구만을 원하던 벨라가 한차원 높은 욕구를 갈망한다는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벨라의 공간적 배경을 리스본에서 크루즈로 바꾼다. 상류층의 삶 밖에 모르던 벨라는 크루즈에서 만난 지식인 한 친구를 통해 알렉산드리아의 빈민촌을 보게 된다. 충격밖은 벨라는 오열하며 저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저들을 도와 줘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 장면은 최악의 장면이었다. 벨라는 지금까지 공감능력이라고는 1도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었다. 갓윈, 덩컨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번도 보여지지않았던 이타성과 공감능력이 이 빈민촌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굉장한 비약이었다.
벨라가 덩컨 웨더번과 여행을 떠난 이유는 탐험을 위해서였다. 갓윈은 벨라에게 너의 부모님은 탐험가였다고 말해주곤 했는데, 벨라는 이것을 믿고 늘 탐험을 하고 싶어했다. 벨라는 여행의 과정을 탐험이라고 생각했다. 벨라의 정체성 찾기와 같았던 여정은, 마지막에 의사가 되는 것을 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낳아준 부모가 아닌 키워준 부모의 피가 흘렀던 것이다. 갓윈은 프랑켄슈타인 같은 외모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연민이 가득한 인물이지만, 한편 살아있는 동물이나 인간의 시체를 잘라 붙이는 수술을 밥먹듯하며 실험하는 무자비한 면도 있었다. 갓윈의 무자비한 면을 배운 벨라는 전남편에게 개의 뇌를 이식하고 만족스럽게 공원에 샴페인을 마신다. 감독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은 것 같긴한데 나는 이장면이 굉장히 의아했다. 벨라의 인간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지 알수 없었다. 인간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모든 것을 하는 벨라. 아름다운 벨라. 위기도 쉽게 빠져나가는 벨라.
감독은 분명 벨라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관객들도 벨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
너무나 아름다운 여주인공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벨라가 사랑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