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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99

이영왜좋

by 나썽

� 보통 / ⭐ 4.0

한줄평 : 어머니의 입은 웃지만 눈은 슬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누엘라는 굉장히 이상화된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배우라는 꿈을 버리고 아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을 택한 어머니.

일터에서는 전문적인 직업인이면서, 가정 일도 소홀하지않는 어머니.

아들이 알려주지않은 문학 취향도 알 정도로 세심한 어머니.

죽은 아들을 위해 잊고 싶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어머니.

성전환자, 창녀에 대한 편견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어머니.

전남편의 애를 밴 여자도, 자신의 아들을 죽게한 배우도 포용하는 어머니.


그리고, 이 영화의 주변인물들은 이런 마누엘라의 모성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배치된 것 같다.


수녀-모성이 생길뻔했지만 실패했거나

아그라도 - 모성이 있고 싶지만, 불가능하거나

우마 - 모성이 있는 것을 연기하거나

수녀의 어머니 - 모성이 있지만, 비뚤어졌거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숭고하고 위대한 모성에 대한 찬양과 더불어, 약간의 거슬리는 불편함도 느꼈다.

그 불편함은 모성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희생을 감내했던 내 주변의 여성들이 생각나서 인 것 같다.


영화 초반 ‘엄마는 나를 위해 몸을 팔수 있나요 ?’라는 아들의 질문은 마누엘라를 한명의 여자나, 인간이 아니라 생물적인 어미로만 치부한 철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누엘라가 스스로 이 말을 했다면 마누엘라의 모성은 위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기에 여성에게는 모성이 기대되거나 강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성의 화신 마누엘라는 롤라를 만나 아들의 비어있던 반쪽을 채워준다. 하지만 마누엘라의 반쪽은 채워졌을까? 여성 연대가, 모성을 베풀 수 있는 또 다른 아들이 마누엘라의 반쪽을 채워주는걸까? 나는 배우라는 자아실현의 꿈과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마누엘라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마누엘라는 왜 희생하고 용서만 하는지, 왜 이타적이기만 한지 답답했다. 영화 속 마누엘라의 입은 웃지만 눈은 슬펐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욕망이라는 전차 연극 포스터였다. 누군가에게 붙들려있는 듯한 포즈와 카메라를 피하지않는 시선. 그 여성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남성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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