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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1996

이영왜좋

by 나썽

� 좋음 / ⭐ 4.0

한줄평 : 모든 것을 세탁이에 넣어 돌리면 다같이 깨끗해 질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영국을 배경으로 한 파키스탄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을 때, 나는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처럼 토착민이 이민자를 핍박하는 내용일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이민자가 토착민보다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고 높은 계급에 위치해 있었다.

등장 인물 중 가장 높은 계급은 파키스탄 이민자 삼촌이고, 삼촌의 정부는 ‘백인’ 레이첼이다. 삼촌에게 세탁소를 받은 오마르는 고용주이고, ‘백인’ 조니는 그의 고용원이다. 등장인물의 계급 구조가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반대라는 점에서 영화 ‘슬픔의 삼각형’이 떠올랐다.

이 거꾸로 된 계급도의 기준은 민족이 아닌 자본이었다. 자본이란 양날의 검과 같다. 오마르의 삼촌은 자본으로 스스로의 계급을 높였지만, 자본만 쫓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오마르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지식인이지만,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다. 오마르는 아버지와 살고, 삼촌과 일한다.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않은 청년 오마르는 앞으로 자본을 어떻게 활용하며 살아가게 될까? 궁금해졌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조니였다. 안그래도 얼마 전에 영화 ‘팬텀 스레드’를 봐서 다이엘 데이 루이스에 푹 빠져 있었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젊은 모습을 보게되서 더 좋았다.

학창시절 백인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오마르는 자본을 획득해 상위 계급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조니는 자본과 계급에는 큰 관심이 없다. 조니는 그저 떠돌이 양아치 생활을 청산하고 성실하게 살고 싶다. 파키스탄 이민자 밑에서 일 하는 것에도 자격지심이 없다. 철없이 이민자들을 혐오했던 과거를 진심으로 반성한다.

조니는 함께 떠나자는 삼촌 딸의 제안에도 ‘지금은’ 오마르를 떠날 수 없다하며 오마르 옆을 지킨다. 오마르가 영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겠다는 의미인 것일까? 조니의 백인 친구들은 파키스탄 이민자와 어울리는 배신자라고 조니를 손가락질한다. 그럼에도 오마르를 끝까지 보호하는 조니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흰 옷을 색깔 있는 옷과 함께 빨면 흰 옷에 얼룩이 질 때가 있다. 나는 오마르와 조니가 얼룩이 아직 지지 않은 흰 옷 같았다. 퀴어 영화임에도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자신들의 순수성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조니와 오마르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흰 옷이 더러워지면 어쩌지 하며 긴장하며 봤다. 오마르가 조니를 버리고 자본적인 성공을 선택하면 어떡하지. 조니가 자존심을 세워 오마르를 떠나면 어떡하지. 그러나 걱정도 팔자였다. 두 사람의 믿음과 사랑은 견고하고 단단하여 나름의 해피엔등으로 영화는 마무리 되었다. 두 청춘이 어른이 되었을 때, 오마르와 조니라는 흰 옷이 세탁 후 세탁기에서 나왔을 때, 물들지 않고 여전히 하얗기를 희망하게 되는 훈훈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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