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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론

이.영.왜.좋

by 나썽

미키 17로 “이.영.왜.좋”을 쓰고 나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려보았다. 부족하지만 짧게 ‘봉준호 감독론’을 적어보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론 : 희망을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봉준호 영화의 특징 2가지

1. 결국 빌런은 시스템

2. 모든 결말은 절망적



플란다스의 개 :

주인공은 교수가 되기 위해 강아지를 죽이고, 동료의 죽음을 외면한다. 인간성을 저버리고 계급 상승에 성공한 주인공은 앞으로 행복할까? 이 모멸감을 잊고 살 수 있을까? 영화 내내 주인공을 괴롭 힌 것은 강아지 짖는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없어져야 내 자리가 생기는 무한 경쟁 계급 사회 시스템 이었다.


살인의 추억 :

범인이 있어야 하는데 범인이 없고, 범인이어야 하는 자는 범인이 아니다. 영화는 범인을 잡지 못한채 끝나지만 우리는 안다. 현실에서는 범인이 아닌자가 억울한 20년 옥살이를 했다는 것을. 범인이 있어야만 하는 시스템은 누구든 강제로 범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 형사들은 무력감만을 느낀다.


괴물 :

살인의 추억과 유사하게 반드시 바이러스가 있어야만 하는 시스템 안에서 사회 통제를 위해 개인은 쉽게 희생된다. 시스템은 무고한 가족을 범죄자로 만든다. 가족 간의 연대는 점점 옅어지며, 구성원은 각자도생한다. 결국 주인공의 딸은 죽고, 딸이 살린 꼬마가 새로운 가족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매일 창문 틈새로 보초를 선다. 불시에 찾아올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킬 수 있는건 작은 총자루 하나 뿐이다.


마더 :

마더 또한 범인은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아들이 진범인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다른 누군가의 아들이 범인이 되는 것을 방관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위해 목격자를 죽인다. 아들을 위해 헌신하던 어머니는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아들이 자신의 추악한 민낯을 알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게 된다. 모자의 정상정인 연대는 불가능해진다.


설국열차 :

주인공은 계급사회를 전복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막바지에 계급사회는 생태계 유지를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주인공은 혼란을 겪지만 결국 시스템은 파괴된다. 시스템이 파괴된다는 면에서 이전 영화에 비해 진보적이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눈밭에 아이 둘만이 살아남았고, 야생곰이 그들을 바라본다는 결말은 역시나 절망적이다.


옥자 :

거대 자본주의 회사가 만든 슈퍼돼지 옥자를 키우는 미자. 회사가 옥자를 데려가려는데 미자는 가족같은 옥자와 헤어질 수 없다. 옥자는 회사의 자산이므로 회사가 옥자를 데려가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옥자를 학대하는 것은 나쁘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돼지고기를 먹는다. 모순에 모순이 꼬리를 무는 와중 미자는 옥자를 구해 함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옥자와 함께 있던 도살장의 수많은 슈퍼돼지들은 구해지지지 못했고, 여전히 사람들은 돼지를 먹는다.


기생충 :

하층민 가족이 상류층 가족을 만나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이 생긴다. 욕망이 생겼을 뿐, 실현할 생각은 없었는데 달콤한 상상을 했다는 죄만으로 피비린내나는 비극이 펼쳐진다. 세 가족은 처참하게 파괴된다. 가난하다고 피해자가 아니고 부자라고 가해자가 아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하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봉준호 영화를 본 뒤에는 어둡고 습한 긴 동굴을 통과하고 따뜻한 햇살에 몸을 녹이는데, 내 발에는 영원히 씻기지않을 더럽고 찐득한 진흙이 굳어진 느낌을 받는다.


봉준호 감독이 대중성과 사회성 줄타기의 신이라는데, 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불편하다. 봉준호영화는 이 사회의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있어. 절망적이지? 보다는 이런 사회를 고쳐가보자. 희망적이지? 라는 영화를 선호한다. 미키17은 이런 희망이 선사된 듯 했는데, 아쉽게도 영화가 실패했다.


켄로치, 다르덴형제 감독 작품같이 사회성은 짙은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사회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봉준호영화가 잘 안받아들여지나보다. 세계 최고가 된 최고의 한국 영화감독에게도 이런 불평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영화를 너무 잘 만드는 것도 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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