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10학번 동기다. 그동안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우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는다거나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꼬박 6년이 지나서인 올해 봄이었다.
그는 조근조근한 말투로 천천히 말문을 이어갔다. 그는 특이하게도, 필요하다 싶은 부분마다 적절히 씁-씁- 소리를 내어가며 반점을 대신했는데, 처음엔 입이 헐었다거나 혓바늘이 나서 그런 것인가 하다가, 그 씁-씁-거리는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했던 탓에 나는 한동안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여러 계절들과 함께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들을 읽어내고,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담아낸다. 그저 그의 주변을 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사람. 참 고마웠던, 동시에 그에겐 아프기도 했던 시간들. 꽃들은 활짝 피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었고, 나무들은 서서히 옷을 갈아입다가도 어느샌가 하나둘씩 옷가지를 벗어 던졌다.
날이 차서 일까. 요즘 그에게서 겨울 냄새가 났다. 나는 아직 가을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한동안은 그의 주변에 머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모른 체 하는 그런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얼마전 문득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의 앞에 앉았다.
그는 평소보다 많이 지쳐 보였고 입도 심하게 헌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가 내게 말을 건네었을 때, 순간 턱 하고 목이 메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그에게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있으면 조금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도록 부지불식간에 밀려드는 것이고, 적당한 말을 찾으려면 대게 한 삶을 살아보아야 한다. 허나 그렇게 말을 고르더라도 소용이 없어서, 자신만의 언어를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말이 모자라다고 생각될 때가, 그 때가 우리에겐 몇 번쯤 있었다."
중간중간 찍어내는 쉼표들 사이, 그가 보였다.
"씁- 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