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1
언론사에서 기자로 생활했을 당시, 사람들은 대체로 기자에 대한 2가지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돈만 밝힌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조작을 한다는 것. 내가 모든 언론인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내 경험으로만 얘기하자면 정통 취재기자들은 돈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편이다. 언론고시를 치른 기자들은 대부분 똑똑한 편인데 그 머리로 그 연봉을 선택한 건 돈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언론은 결코 돈(=광고)을 무시할 수 없다. 언론사의 존폐는 결국 광고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면 나올 수 있는 수익 구조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경제지에서는 세미나, 학술회라는 이름으로 여러 행사를 통해 수익 구조를 확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광고(지면 광고, 온라인 기사 내 광고) 없이도 운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국정농단 사태 등 진실을 밝히고 보도하려는 기자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언론사, 특히 인터넷·군소 매체까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중은 자극적인 기사에 열광하고 재정이 열악한 언론사일수록 그런 주제들에 많이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유혹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진실과 정의, 공익과 진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곳이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언론이 검찰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취재를 통해 보도하는 것이지 증거를 통해 재판하는 기관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자는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데스크(기사 송고 권한을 가진 부장급)의 판단이 중요하다.
나는 현재 기자가 아니다. 전혀 새로운 분야인 헤어 제품 업계에 몸담고 있다. 더 정확히는 미용실에만 들어가는 프로페셔널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에 다닌다. 그렇기에 미용계의 소식과 헤어제품 업계의 소식을 매일 들으면서 산다. 내가 현직 기자로 있을 당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비슷한) 언론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홍수는 기사의 질을 필연적으로 떨어트린다. 연합 같은 큰 통신사에서 기사를 송고하면 지역지 등 군소매체들은 이를 우라까이(=베껴쓰기)해서 거의 똑같이 송고한다. 단독 경쟁도 치열해지고 차마 단독이라는 헤드를 붙일 수 없는 뻔한 기사에도 버젓이 [단독]이라는 문패가 붙어서 송고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과유불급의 대표적인 예다.
같은 맥락에서 미용실을 본다. 우리나라엔 미용실이 너무 많다. 저가 샵도 너무 많다. 언론사의 홍수가 기사의 질을 필연적으로 떨어트리듯 미용실의 홍수도 미용의 질을 필연적으로 떨어트리지 않을까. 고객에게 정직하고 실력 있는 미용실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편법과 사기를 치는 미용실이 성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이 망하고 자극을 추구하는 언론이 흥하면 안 되듯이 미용의 가치를 높이는, 실력 있는, 열정 있는, 정직한 미용실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브랜드가 그 성공에 일조했으면 좋겠다. 언론사는 많지만 미용실은 더 많다. 살아남기 위해선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여러 유혹이 많겠지만 기자도 미용사도 결국 사람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취재도 안 했는데 자극적인 제목과 짜집기로만 대중을 유혹하기보단, 언론의 가치를 지키되 그 기사가 헛되지 않도록 대중을 만족시키는 언론사가 좋은 언론사인 것처럼, 실력도 없는데 가격만 낮춰서 싼 맛에 고객을 유혹하기보단, 적정한 가격으로 미용의 가치를 지키되 그 돈이 아깝지 않도록 고객을 여러 측면에서 만족시키는 미용실이 좋은 미용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