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가 술에 취해 난폭해지면 이런 느낌일까. 제목 정말 잘 지었다. 사랑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면 모두 <펀치 드렁크 러브>와 같을 것이다. 주인공 배리는 고지식해보이면서도 어딘가 미숙한 인물이다.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전화하는 장면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사건의 전개가 모두 전화로 이루어진다.), 배리는 항상 뭐하냐는 질문에 '너와 전화하고 있지.'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어디 다녀오셨냐는 직원의 말에도 배리는 '지금은 여기 있다.'며 당연한 소리를 내뱉는다. 배리는 자신의 비밀을 들키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과 동시에 솔직하고, 엉성한 모습이다.
영화는 동화적 요소를 연신 사용한다. 서사의 결이 뒤틀릴 때마다 나타나는 홀로그램 물결, 명암의 사용, 광각 앵글, 손을 잡는 모습에서 동그랗게 페이드 아웃을 하는 등 엉성한 배리의 모습이 영화임을 잊지 말라는 듯이 수차례 반복한다. 배리의 사랑이 다소 폭력적인 탓에 해외에서는 관람등급 R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15세보다 더 높은 17세 이하 보호동반 등급이다. 로맨스 코미디 장르임에도 배리가 욕을 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액션 영화를 보는 것마냥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런 배리에게 사랑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감독은 인간의 '사랑'이란 긍정적인 감정과 사랑을 통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의 모순점을 엉성한 배리를 통해 구현해냈다.
연민에서 나오는 먹먹함이 있다. 배리는 자신의 비밀, 과거를 들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분노를 참지 못해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자가 사랑에 빠졌으니 관객이 먹먹해지는 건 꽤 합당한 일일 수도 있겠다. 배리는 폭력으로 상처가 난 주먹에 LOVE가 써져 있을 만큼 사랑에 빠졌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자는 당연하게도 사랑도 숨기지 않았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 모든 것을 감수해냈다.
청각, 시각 요소가 극적으로 잘 표현된 영화다. 단순한 사랑 서사가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감독의 연출 덕이다. 폴 토마토 앤더슨의 영화를 처음 접하는 것이라 쉽게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자동차가 뒤집는 첫 씬에서부터 이 감독이 스릴러 영화를 꽤 잘 만들겠구나 예측했다.
영화 속에선 광각 앵글이 자주 등장한다. 처음 배리가 마일리지를 문의하는 장면부터 마트, 하와이씬에서도 사용된다. 드라마, 로맨스 장르는 배경보다 인물 서사에 집중하기 위해 화각을 좁혀 망원으로 촬영하고는 하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는 앵글과 색채에서 구애를 받지 않았다. 명암 대비를 자주 사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피사체들을 검게 담고, 배경은 날라갈 만큼 과노출한 촬영 기법을 여럿 볼 수 있다. 웅성대는 소리와 그것을 깨버리는 유리창의 정적, 붉다 못해 빨간 사랑의 빠진 배리의 낯빛. 모든 것이 '펀치-드렁크'했다.
'펀치-드렁크'는 복싱선수와 같이 뇌에 많은 손상을 입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증이라 한다. 대충 술에 취한듯, 한대 맞은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인가, 가늠 했었는데 어학사전으로 검색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알았다. 토마토 감독은 사랑을 '뇌세포손상증 만큼 강렬하고, 무섭지만 결국엔 아름다운 것'으로 정의해낸 것이다. 달콤한 초코 푸딩의 목적은 항공 마일리지를 위함이었고, 또 그것의 목적이 달콤한 사랑이었다는 걸. 인간에게 모순을 허용하는 사랑이란 감정을 잘 표현한 '초코 푸딩 러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