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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보관함 Jun 18. 2024

불꽃놀이

꼭 불꽃과 함께 어떤 마음이 같이 피어올라 펑펑 터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맨 눈으로 불꽃놀이를 보는 것은 N 년만의 일이다.
화려한 쇼에 군중 사이사이에서 심심찮게 탄성도 우러났다.


불꽃놀이를 서술할 때에 '하늘을 수놓는다'는 표현이 흔하게 쓰이곤 하는데, 그 표현이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수놓는 불꽃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내겐 오래전에 닳아버려 기울 수도 없는 아기옷 같았다.

그렇지만, 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에 던져진 불빛이 펑펑 터지는 모습은 '하늘을 수놓는다'만큼 어울리는 말이 없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불꽃은 정말로 하늘을 수놓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진부하리만치 자주 쓰일 수밖에 없다고.


불꽃놀이 클리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터지는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풋풋한 학생 두 명. 한 친구가 용기 내어 손바닥을 붙여 잡는다. 쿵, 쿵, 쿵. 시끄럽게 울리는 폭죽소리가 심장소리는 파묻는다. 이어지는 로맨틱한 고백.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러브 스토리.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연인이 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클라이맥스에서 불꽃놀이로 대미를 장식하는 일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뻔하디 뻔한 전개가 뭐 그리 대단한 로맨틱함을 가져오겠어. -그러나 불꽃놀이만큼 마무리하기 좋은 소재도 없긴 하다.- 차라리 단조롭고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담백하게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훨씬 설렘을 보여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성큼 다가온-... 따위를, 사람들이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총소리나 다름없는 불꽃놀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의 웅성거림, 시도 때도 없이 눈앞을 어지럽히는 빛무리... 꼭 불꽃과 함께 어떤 마음이 같이 피어올라 펑펑 터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냥 글이나 사진으로 보던 게, 직접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말도 식상한가? 듣지 않고 싶다면, 직접 보면 된다.


시각, 청각적 자극이 동시에 일어나는 곳.
좋아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면... 불꽃보다 빠르게 올라오는 간지러운 마음을, 누가 숨길 수 있을까?



쳇바퀴 같은 일상이라는 말이 있다.
특별할 일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하루. 그 속에서 예상할 수 없는 짜릿한 재미가 쳇바퀴를 굴릴 힘을 부여해 준다.

그리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쳇바퀴를 탈지, 어떻게 굴릴지는 나의 선택에 따라 나뉜다.

똑같은, 흔해빠진, 평범한 일이더라도... 내 시선의 각도를 달리한다면, 내 마음과 눈이 일상을 마주하는 기울기를 달리한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만든 특별한 기억들이 앞으로의 나날들에 밝은 동력이 되길 바란다.


아래는 불꽃놀이를 보는 내내 떠올린 좋아하는 시의 구절이다.


나는 쳐다볼 수 없었지, 너무 낭만적인 것을 너와 함께 하면 벼락처럼 너를 사랑해버릴까 봐.

: 밤의 유영 / 서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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