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도 편안해
플럼빌리지 안으로 한 발짝.
7-8pm.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모두 설렘으로도 가릴 수 없는 허기를 느끼고 있었던 차에 시스터 한 분이 우리를 다이닝 홀로 데려가서 따뜻한 두부감자수프와 콩, 올리브가 들어간 파스타 샐러드로 저녁을 들 수 있게 해 주셨다.
오랜만에 맛보는 담백하고 다정한 맛. 신선하고 건강한 재료에 조미료는 최소로 넣었을 때 나오는 그런 맛.
엄마의 맛. 이모의 맛. 우리 할머니의 맛과도 닮은 첫날의 저녁이었다. 수프를 입에 한 입 넣자마자 퍼지는 온기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앞으로 맛볼 음식들을 생각하며 미소가 지어졌다.
식사 후에는 나이가 지긋한 뉴욕출신의, 미소가 아름다운 시스터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셨다. 신경을 써서 기억해야 할 것들은 많이 없었고, 그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움직이면 모든 것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기억하면 좋을 것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정해진 침묵 시간이 아닐 때에도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전에 그 사람이 혼자만의 수련 중인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 살펴보기. 이건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위해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여기에 온 참가자들은 다들 고유한 동기를 가지고 오며 여기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혼자 산책하거나 일기를 쓰고 싶을 땐 정말 신기하게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고, 이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할 즈음엔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친구들이 신기하게 내 주변에 있는 것이다.
정해진 스케줄을 존중하되,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가장 먼저 존중해 줄 것. 플럼빌리지에서의 8일 중 Lazy Day인 월요일 하루를 빼면 매일 5시 기상 후 5.30 새벽 명상에 참여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나도 여기서 만난 친구들도 몸이 정말 힘들 땐 하루 정도는 6시 넘어서까지 푹 쉰 적도 있다. 이렇게 스스로의 상태를 살피고 결정하는 건 새벽 명상뿐만 아니라 모든 액티비티에 적용되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이 준비된 상태여야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시스터들도 항상 여러 번이나 'Be kind to yourself' 라고 하셨다.
8-9pm
마지막 일정은 가이드 명상과 걷기 명상.
모든 명상과 수련이 이루어지는 큰 홀인 부다홀에 들어가 시스터 한 분이 가이드해 주시는 명상을 했다. 지금까지 배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호흡에 계속 집중을 하고 딴생각이 나면 아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알아채고 다시 내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요는 평화로운 호흡을 찾는 것. 물론 쉽지는 않다.
걷기 명상은 플럼빌리지에 와서 처음 해본 종류의 명상인데 그저 한 발 내달 때 마시고 다른 한 발을 내딛으며 내쉬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평화로운 호흡을 찾는 것이다. 이 명상을 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지면에 닿는 내 두 발을 의식하며 걸은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발에서 무게중심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까지 전부 느껴지는 게 신비로웠다. 나는 31년간 그냥 우당탕탕 걸어 다녔구나. 걸음은 호흡과 연결이 되고 한 걸음 한 걸음 지면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걷기 명상. 이 후로 매일매일 자연에서 모두와 함께 한 걷기 명상은 플럼빌리지에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틱낫한 스님도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기 힘 들 정도로 감정의 폭풍우 속에 있을 땐 앉아있기 보다는 걷기 명상을 하라고 책에 쓰셨다.
마음의 꽃 피우기
명상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틱낫한 스님의 제단과 불상이 놓여있는 방향으로 돌아서서 땅을 세 번 만지며 절을 하는 Touching the Earth라는 의식을 하는데, 그에 앞서 가이딩을 해준 시스터가 이렇게 말하셨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땅에 쏟아부으세요.
대자연이 당신의 이 에너지가 향기로운
꽃으로 바뀌도록 도와줄 거예요.
지면을 만지는 행위가 이렇게 치유적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감동의 눈물은 언제나 환영이다. 앞으로 7일간 참 많이도 울었고 그런 내가 사랑스럽기도 했다. 나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고 어떤 것들은 눈물을 통해 표현될 때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괜찮지.
한눈에 보는 하루.
플럼빌리지에서는 매일매일 글과 그림으로 기록을 했는데 이렇게 하루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그림으로 간단하게 그려두니까 하루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