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방 세 자매
깜빡하면 잃어버릴 것 같은 작은 쪽지에 내 이름과 내가 일주일간 지낼 방 이름이 적혀있었다. Mulberry.
Mulberry, 오디. 부암동에 어린 시절 뒷마당에는 오디가 있었다. 그걸 손과 혓바닥이 까매질 때까지 한 알 한 알 따먹은 기억이 있는데. 삶의 이야기는 기억하는 것이 많을수록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늘어난다.
오리엔테이션을 끝나고 9시가 지난 조금 늦은 저녁, 방문을 열자 나를 보며 밝게 웃는 여자애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L. 그녀는 OT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한 걸 기억한 건지, “지은 안녕! 너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하고 살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방에는 이층 침대가 두 개, 싱글 침대가 세 개로 총 7명이 사용할 수 있는 방으로 먼저 온 두 사람은 싱글 침대에서, 나는 이층 침대 중 하나를 쓰게 되었다.
짐을 풀고 있으려니 또 다른 룸메인 P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OT때 저녁식사 이후부터 다음 날 아침설거지를 마칠 때까지는 침묵명상 시간이라고 했던 게 기억나 서로 눈인사만 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고 작은 불빛에 의지해 하루 있었던 일을 써 내려가는데 L의 침대 쪽을 보니 그녀도 자기의 일기장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도 여기서의 시간을 첫날부터 성실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동지를 만난 느낌.
펜의 사각거리는 소리조차 거의 안 나게 아주 고요한 첫날밤.
설렌 만큼 피곤했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이 방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
플럼빌리지의 스님들은 80대 정도의 노승이 아닌 이상은 모두 3-5명이 한 방을 쓰는 공동생활을 하고 우리 참가자들도 다르지 않다. 커플의 경우에는 더블룸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 잘 수 있긴 하다.
공동생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줄 것이라는 걸 여기의 분위기를 통해서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방을 함께 사용한다는 건,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외에도 아침에 별만 떠있는 캄캄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가 있다는 것. 자유 시간에 담소와 미소 가끔은 슬픔도 공유할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 우리가 불가피하게 서로의 임시 가족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녀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L이 작은 스탠드 옆에서 일기를 쓰고 P가 책을 읽으며 진지하다가 슬퍼하다가 깔깔거리다가 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였고, 언니였다가 동생이었고 또 수행을 함께한 동료였다. 플럼빌리지에서는 그냥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돌보게 된다.
오디 세 자매 중 사진의 주인공인 L과는 보르도에서 각자 흩어지기 전 마지막 하루를 함께 보냈고, 그녀와 프랑스 친구 E는 내가 사는 스톡홀름에 놀러 올 예정이다. 이렇게 플럼빌리지 이후에도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