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먹보는 채식을 해도 먹보다
"헉 고기 안 먹으면 뭐 먹어요?"
고기를 안 먹기로 다짐하고 난 후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할 때 미리 얘기를 하면 매번 나오는 반응이다.
먹을 거 되게 많은데... 싶다가도 예전에 정확히 같은 의문을 품던 내가 떠오른다. 그 물음은 정말 뭘 먹냐는 질문보다는 고기 없이 맛있게 먹을만한 게 있냐, 고기 없이도 맛있냐는 질문에 가까운 것 같다.
나 역시 스웨덴 생활 초반에 비건과 다양한 종류의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저 사람들 맨날 샐러드만 먹겠구먼...' 했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어딜 가도 VG(Vegetarian: 채식) 표시가 식당메뉴에 있는 도시에 사는 동안 모두가 먹을 수 있도록, 즐겨 먹던 요리를 채식버전으로 만들어보며, 플럼빌리지에서 시스터들의 비건요리를 일주일간 먹으며, 또 나와 가까운 주변 친구들 덕분에 나는 깨달았다. 고기와 생선 없이도 밥상이 세상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제철 채소를 오븐에 구워 페타치즈와 해바라기씨를 곁들여 먹으면 달콤한 듯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올리브유에 절인 아티초크를 파마산치즈, 마늘, 올리브유, 레몬즙을 넣고 곱게 갈아 한 김 식혀둔 파스타에 비벼 한입 크게 먹으면 그 크리미 하고 산뜻한 맛에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또 브리오슈번에 아보카도와 신선한 토마토를 넣어 특제소스를 올린 할로미치즈 버거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먹보인 나는 먹보친구들에게 배웠다. 세상에 먹을 게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내가 안 먹어본 음식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이런 경험을 하는 동시에 나는 친구들을 위해 내가 사랑하는 한식을 하나하나 채식으로 만들어서 먹이기 시작했다. 불고기는 콩고기로, 부대찌개 소시지도 콩소시지로 바꿔서, 김치는 피시소스를 빼고. 처음엔 다 같이 먹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변화를 시도한 건데... 이렇게 먹어도 우려하던 큰일은 나지 않았고 여전히 맛있었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식감과 소스 그리고 양념이라는 깨달음도 이때 얻은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소스는 시중에 비건용이 있다. 마요네즈부터 시작해서 피시 없는 피시소스, 가다랑어대신 다시마로 만든 쯔유까지.
집에서 해 먹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외식까지, 먹보는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맛있는 걸 찾아먹고 해 먹는다. 이번 편은 먹보의 음식일기로 마치겠다.
순서대로 망원동의 버섯두유크림 파스타, 중국집 가원의 채식짜장면, 초식마녀님의 토마토 비빔밥, (almost) 비건부대찌개, 계란 없는 에그샌드위치를 소개하며 "고기 안 먹으면 뭐 먹어요?"라는 물음에 대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