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4 도구와 무기의 마음, 그리고 선택
기다렸다면 기다렸다고 해야겠다.
후지모토 타츠키 원작 만화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체인소맨: 레제편》.
2020년대를 장식하고 있는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및 《주술회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체인소맨》의 극장판 영화가 오늘 (25년 9월 24일) 개봉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개인적인 취향과 감상으론 나머지 두 작품들보다 월등히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번 극장판은 그 의견이 확신으로 바뀌는 아주 큰 계기가 되었다.
나름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의미와 주제를 해석, 또는 리뷰해 본다. (틀릴 수 있음 주의)
*** 영화 스포 주의!!! 원작 만화 스포는 없음 ***
영화를 아주 짧고 굵게 요약하면 이렇다.
덴지와 레제의 파괴적인 러브스토리
멜로드라마의 감정선을 아주 명확하게 잡았고, 클라이맥스에서 펼쳐지는 액션 연출 역시 훌륭했다. 때문에 로맨스를 좋아하는 시청자도, 호쾌한 액션을 좋아하는 시청자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키마와 함께 아홉 편의 영화를 보면서도 그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던 덴지. 아홉 명의 여자가 지나가도 그 여자의 가슴과 입술만 떠올렸을 정도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던, 어떻게 보면 '유아적인' 캐릭터인 덴지. 그가 열 번째 영화를 보며 드디어 눈물 흘렸던 것처럼, 레제를 만나자 성애적 사랑 이상의 무언가에 빠져버렸다.
덴지가 레제를 진정으로 '사랑'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쉽사리 답하기가 어려운데 (덴지 본인도 모를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가 내리는 선택에 집중해서 영화를 되새겨보면, 그건 사랑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던 거미와 나비의 모습. 거미는 조금씩 나비를 옭아매어 잡아먹는다.
거미와 나비의 사랑. 상대방에 대해 아직 잘 모를 땐 내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나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파괴적 사랑의 끝에 서서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보면, 그땐 알 수 있다. 아, 사실은 내가 거미였구나. 이 순간 오가는 그들의 대사, 그리고 순식간에 거미처럼 레제를 옭아매는 체인의 연출은 두 캐릭터의 감정과 이 드라마의 스토리, 액션으로서의 연출까지 모두 어우러지는 명장면이었다.
덴지에게 '힘을 응용하라'는 가르침을 준 건 레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응용한 힘으로, 덴지는 거미가 되어 레제를 포박해 버렸다. 레제가 덴지에게 가르쳐 준 건 과연 '힘'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분명, 장면 속 거미는 레제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레제는 나비였다.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우위에 있다고, 내가 먼저 접근해 낚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그 사람의 거미줄에 내가 꽁꽁 묶여있는 채 허우적대고 있다. 쥐를 유인하는 치즈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였던 것이다. 처음 본 순간 덴지를 죽일 수 없었던 레제, 마지막 순간 레제를 죽일 수 없었던 덴지. 치즈와 쥐와 고양이의 관계를 오가다가 도착한 종착점은, 덴지라는 치즈를 이용한 고양이 마키마의 쥐 사냥이었다.
그렇다면 덴지는 마키마를 '사랑' 했을까
앞서 언급한 덴지의 '유아성'은 마키마와의 관계를 엄마와 아이의 관계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마키마는 늘 덴지보다 여러 수 위에 있고, 모든 걸 알면서도 설명해주지 않으며, 알쏭달쏭한 가이드만으로도 덴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움직인다. 덴지는 아마 이 영화가 끝나고도 모를 것이다. 본인이 쥐를 잡기 위한 미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아키는, 이런 마키마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건 TVA에서 나온 내용이다) 그는 마키마가 제공하는 방향성이 명확한 선(善)이라 생각하며, 이 가치관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움직인다. 악마를 처리한 현장에서 발견된 초주검 상태의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일념으로 망설임 없이 죽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인간을 죽이지 않고 지켜만 보던 '천사의 악마' 엔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정말 인간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천사의 악마'. 작명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전까지 등장한 악마들은 죄다 '칼의 악마', '총의 악마', '폭탄의 악마', '상어의 악마' 등 무기, 혹은 그렇게 쓰일만한 것들의 악마인데, 이 악마만큼은 아주 추상적이고 역설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천사는 선(善), 악마는 악(惡)이다. 선하면 선했고, 악하면 악했지. "선한 악"이란 대체 뭘까? 혹은 "악한 선"이라 읽어야 하는 걸까?
살인은 악한 행동이다. 그러나 하반신이 잘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을 죽이는 것. 이것 역시 개념적으로는 '살인'이다. 그렇다면 이 인간을 죽인 아키는, 악한 살인자인가? 하지만 그는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그를 죽였다. 아키는 마키마를 따라, 명확한 선(善)을 따라 활동하는 인물이다.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엔젤이 멍 때리며 아이스크림만 먹어도 체력이 소모된다는 이유를 알겠다.
《체인소맨: 레제편》 자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내려주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질문의 서막을 올리는 역할을 했다고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엔젤은 마키마의 창이 되어 움직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구도가 유지될까? 마키마는 과연 선(善)의 얼굴일까? 본인의 입으로 한 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아키를 비롯한 몇몇이 넘겨짚고 있는 것뿐, 사실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인물인 건 아닐까?
이런 혼돈 속에서 아무 생각도 없는 우리 주인공, 덴지. 그는 레제와의 교류를 통해 본인이 느낀 감정과 '마음'에 충실하게, 그녀를 이해했고, 직접 선택했다. 그녀를 죽이지 않겠다고. 반대로 폭탄이 무기인 레제가, 덴지를 처음부터 죽일 수 없었던 건, 하필 덴지를 만난 날 우연히도 비가 내려서일까? 아님 첫눈에 사랑에 빠져서였을까? 시작은 알 수 없어도, 이 역시 레제의 '선택'을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레제는 덴지를 사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폭탄을 사용할 수도 없는 수영장에 들어가 덴지와 시간을 보냈을까. 덴지도 그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덴지는 처음으로, 마키마와 상관없는, 자기 자신만의 판단에 의한 선택을 내렸다.
원작 만화의 최신화를 챙겨 읽고 있진 않지만, 언젠가 덴지에게 또 한 번 혹은 두 번쯤, '선택'의 순간이 더 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그 선택들은 그의 자아를 마키마로부터 독립시켜 나갈 것이며, 아마도 이 만화의 완결 앞에서 우리는 마키마의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했듯, 이 만화 속 많은 악마들은 무기에서 비롯된 사념체다.
그렇다면 '체인소'는 과연 무기인가?
확실히, 체인소, 즉 전기톱은 무기로써 개발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 그가 어떤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이 물건은 너무나도 손쉽게 무기가 된다. 덴지도 그렇다. 그의 마음을 꽉 쥐고 있는 사람이 아직까지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마키마이기 때문에, 데빌헌터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지, 그 역시도 '선을 향한 의지'가 없이는 언제고 처단 대상인 악마가 되어버릴 수 있다. 모든 건 그 악마와 계약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다. 만약 이 영화의 끝에 덴지의 선택이 존중받았다면, 다르게 말해 그의 선택이 그의 등 뒤에서 마키마에 의해 거세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레제는, 폭탄의 악마는, 과연 선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체인소의 악마, 덴지는 '도구'일뿐이다. '무기'가 아닐 뿐, 자유로운 선택이 거세된 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물처럼 풍덩 빠지는 것이기도 하고, 불꽃놀이처럼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론 폭탄처럼 파괴적으로 터져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 양상은, 그 사랑을 만들어가는 두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이런 종류의 표현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폭발적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선과 악의 관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선택과 자유의지. 이전 글(꿈보다 해몽 #3 영화 《위키드 1》 3편)에서 파고들어 다루었던 주제다. 수많은 이야기와 심리 구조에 연결된 내용이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불과 얼마 전까지 머릿속에 가득하던 내용들이 또 한 번 새로운 영화를 통해 전개되니 눈과 귀와 머리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덴지와 레제의 수영 장면에서, 수영도 못하는 채 숨 쉴 수 없는 물속으로 풍덩 빠지길 선택하는 덴지의 모습. 그리고 그 짤막한 씬에서 쌓아 올려지는 사랑과 불안의 깊이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둘의 사랑은 마치 불이 붙었을 땐 붙은 줄 모르다가,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 쾅! 하고 폭발해 버리는, 폭탄과도 같았다. 한 번 터지니 온 도시를 다 잡아먹을 것처럼 요란하고 파괴적으로 펼쳐지는 사랑. 폭탄의 특성을 정말 다양한 각도로 활용해 완급을 조절하던 전투 액션 연출도 훌륭했다. MAPPA는 역시 훌륭한 연출가들을 잘 데려온다.
폭풍의 나선형의 움직임을 활용한 전투 액션과 체인을 활용한 클라이맥스 연출까지 생각하면, 단 한 장면도 뇌를 빼놓고 볼 수 없는, 즐거운 영화였다. 검 하나 휘두르면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멋과 쾌감이 분명 있지만, 《체인소맨》 시리즈가 제공하는 전투 액션의 경험은 정말 영리하면서도 아름답다.
극장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다. 단, 이번엔 4DX 말고, IMAX에서...
(25년 9월 25일 추가)
《체인소맨》 시즌 1 때부터 "KICK BACK"이 워낙 히트한 탓에, 요네즈 켄시의 목소리를 들으면 덴지가 떠오른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영화가 다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들리는 엔딩곡 "JANE DOE" 역시 요네즈 켄시의 노래였다. 요네즈 켄시의 목소리 때문인지, 마치 레제와 덴지의 듀엣곡처럼 느껴지는 노래. 도입부의 우타다 히카루의 애절한 목소리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 가사를 찾아보았다. 가사와 멜로디, 박자까지 영화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추는 왈츠 같은 노래다.
아픈 사랑을 한 두 사람. 먼저 떠나간 레제.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줄도 모르고 마냥 찾아 헤매는 덴지. 그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레제. 세상에게 결코 인정받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틀린' 사랑. 특히 마지막 가사가 마음이 아프다.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 사랑에 빠져있는 남자와, 그것이 헛된 꿈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여자의 슬픔.
그리고 제목 "JANE DOE"란... 변사체로 발견된 신원미상의 여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우타다 히카루]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둘 뿐인 것 같아" 라며 조금 꿈을 꾸고 말았을 뿐이야.
발끝에 달빛, 꽃다발의 향기.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아. 안녕, 이제 가야만 해. 모두 다 잊어버려.
유리 위를 맨발인 채로 걸어가. 아플 때마다 피가 흘러 내려가.
부탁해, 그 붉은 발자국을 따라서 만나러 와줘.
[요네즈 켄시]
녹슨 수영장에 풀려나는 금붕어, 신발장 속에 숨겨둔 사과.
쭈그러든 너의 피부에 남은 흉터, 개처럼 헤엄친 미아.
어디 있어? (히카루: 여기 있어)
뭐 하고 있어? (히카루: 계속 보고 있어)
이 세상을 (켄시 & 히카루: 틀린 것으로 채워버리자)
곁에 있어줘, 놀러 가자. 어디에 있는 거야?
[우타다 히카루]
유리 위를 맨발인 채로 걸어가. 아플 때마다 피가 흘러 내려가.
부탁해, 그 붉은 발자국을 따라서 만나러 와줘.
[요네즈 켄시]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둘 뿐인 것 같아.
[우타다 히카루]
라며 조금 꿈을 꾸고 말았을 뿐이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