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나무꾼은 어떻게 됐을까 : 영화 《위키드 2》

꿈보다 해몽 #5 세상의 '관점'을 이용하여 날아오르다

by 하선

2025년 11월 19일. 드디어 개봉했다.

2024년 개봉한 영화《위키드 1》과 이어지는 후속편, 《위키드 : 포 굿》.


1편에 대한 분석을 너무 깊숙이 들어갔던 탓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영화는 전편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1편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리뷰 내용은 아래에서 참고할 수 있다.

# 하선의 꿈보다 해몽 : 영화 《위키드 1》
1️⃣ 오래 보아야 예쁘다 [바로가] 2️⃣ 글린다는 엘파바를 배신했나 [바가기] 3️⃣ 엘파바가 서쪽하늘로 향한 이유 [바로가기]


영화 1편에 대한 리뷰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물론 직접 읽으면 더 친절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세계 : 위선적인 글린다와 보크, 위악적인 엘파바

엘파바와 글린다가 각각 표방하는 '악함'과 '선함'의 이미지

두 사람의 세계관이 충돌하자 서로를 향해 피어오르는 혐오와 호기심, 그리고 정반합(正反合)적인 성장

나를 끌어내리는 중력 속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선택'의 어려움

엘파바가 자기 자신을 직접 '악'으로 정의함으로써 쟁취한 '자유의지', 그리고 그의 대가


이제 영화 1편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영화 2편에 대한 리뷰와 분석을 해본다.



*** 영화 스포 주의!!! ***




이게 내 한계야
그리고 너를 봐. 넌 내가 해낼 수 없는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어, 글린다.
이제 너에게 달렸어. 우리 모두를 위해!
I'm limited.
And just look at you. You can do all I couldn't do Glinda.
So now it's up to you. For both of us!


《위키드 : 포 굿》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단연 영화의 마지막을 수놓는 두 주인공의 듀엣곡 "For Good"일 것이다. 엘파바는 그동안 이 세상에게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For Good"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글린다에게 과업을 넘긴다.


주관과 목표가 뚜렷한 사람일수록,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모든 걸 넘기고 사라지는 선택을 하기란 힘든 법이다. 충분히 믿음직스러운 타인을 만나기 어려워서도 있지만, 보통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이 기회를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엘파바는 결국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까지 글린다에게 바톤을 넘겼다.


이제 글린다에게는 두 가지 과업이 생겼다.

1) 진실되게 선함을 추구하는 어린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2) 이에 방해가 되는 위선적인 리더들(마법사, 마담 모리블)을 몰아낸다.


아이들은 아직 선과 악을 직접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어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움직이며 갈피를 잡아간다.


여기에서 도로시는 백지같이 순진한 어린아이를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채 어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움직이며 갈피를 잡아간다. 엘파바는 이런 도로시가 자신의 힘으로 직접 '악을 처단'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본인에게 낙인찍힌 '악'이라는 이미지를 이용했다. 그리고 글린다는 '선'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에서 홀로 살아남아, 진정한 선함의 길로 인도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다듬고 전파하는, 역사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마법사와 엘파바, 글린다가 만나 함께 부르는 "Wonderful"의 장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편 "Wonderful"의 듀엣 댄스 장면
1편 "The Wizard and I"의 엘파바
1편 "What is this Feeling?"의 두 사람


오색 찬란한 빛이 번쩍이는 무대에서 함께 다시 춤을 추는 엘파바와 글린다. 그들은 오즈더스트 무도회장에서 처음 합을 맞추었던 때처럼 즐겁게 춤을 춘다. 1편의 "Wizard and I"와 "What is this Feeling?"에서 등장했던 색깔빛을 활용한 연출과 비슷하지만 더욱 화려하다. 영화 1편에선 주로 '붉은 조명을 비추면 일반적인 색깔로 보이는 엘파바의 피부', 즉 빛이 비추어지는 '대상'에 집중했다. 반면, 2편에선 '어떤 대상에게 빛을 비춘다'라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명 아래에선 엘파바의 피부색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색깔의 빛을 비추느냐의 문제일 뿐.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점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지가 전부다. 그 '관점'이 우릴 선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면, 그 시선 끝에 있는 대상의 선악은 중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엘파바,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사실이 아닌 온갖 것들을 믿는단다.
우리는 그걸… “역사”라고 부르지.
Elphaba, where I'm from, we believe all sorts of things that aren't true.
We call it—"history."


역사는 결국 승자들이 쓴다고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쓰인 역사를 보고 배우며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나아가곤 한다. 만약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색안경 뒤에 가려진 과거의 진실과 거짓이 과연 중요한가? 결코 답변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 '관점'이 우릴 선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면,
그 시선 끝에 있는 대상의 선악은 중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


아직 학생이었던 1편에서와는 달리, 글린다와 엘파바는 이미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선택'과 '이 세상을 위한 선택'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엘파바가 선한 의지로 선택한 행동들조차도, 거시적으로 보면 동생 네사를 동쪽 마녀로, 보크를 양철 나무꾼으로, 피예로를 허수아비로, 어린 사자를 겁쟁이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손에 쥐게 된 진실(그리머리)을 들고 어쩔 줄 모르던 엘파바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특정 ”대상“을 뛰어넘는 “관점”에 대한 이해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행동할지언정, 나 자신의 ‘선함’은 증명되지 않았고, 세상을 ‘선’하게 만들 수도 없었다. 이 딜레마의 끝에서, 엘파바는 ’역사‘를 쓰는 관점을 만들어내기로 한다. 그녀는 결국 나 자신을 굽힘으로써 글린다에게 힘을 실었고, 이를 통해 그들은 진정으로 원하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엘파바는 떠나려는 동물들을 막으려던 장면인 "No Place Like Home"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하지만 오즈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야. 그건 하나의 약속이고, 어떤 이상이야.
그리고 난 그걸 현실로 만드는 데 힘이 되고 싶어.
But Oz is more than just a place. It's a promise, an idea.
And I want to help make it come true.


여기에서 그녀는 오즈를 단순한 '장소'가 아닌, '이상(idea)'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idea라는 단어는 철학 혹은 사회학적으로 이데아, 즉 '사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엘파바는 어느 순간부터 오즈라는 세계, 즉 이 '사회'를 그녀가 살아가는 터전을 넘어선, 관념적인 사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접근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해답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이 세상은커녕, 내 옆에 잠들어있는 룸메이트 한 명 조차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 수 없다. 한 사람을 움직이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과연 이런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만약 바꿀 수 없다면, 이렇게 불합리하고 잘못된 세상에 우린 타협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 영화 시리즈를 통틀어 관통하는 엘파바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엘파바는 마침내 깨닫는다. 그녀는 오즈의 세상 속에서 자신이 '악'이라는 관념 그 자체로 기능함으로써, 권선징악의 '사상(idea)'을 완성하기를 선택했다. 이것만큼은 그녀의 '선함'을 의심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엘파바는 그녀가 사랑하는 피예로와 함께 오즈의 세상을 떠나며 마녀 낙인으로부터 벗어난다. 오즈의 세상에서 죽은 엘파바는 바로 엘파바에게 낙인찍혀있던 '악'이라는 관념일 뿐이었다. 진정한 '선'을 향해 가는 그녀의 삶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딱 한 사람과의 진정한 우정이 때론, 온 세상을 움직일 힘이 되곤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모든 여정이 가능했던 건, 엘파바에게 글린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파바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친구, 글린다가 있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엘파바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딱 한 사람과의 진정한 우정이 때론, 온 세상을 움직일 힘이 되곤 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스코어 "For Good"의 가사가 애틋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글린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우리가 살아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건 모두 이유가 있어서라고.
그들을 통해 우린 배워야만 한다고.
우리가 허락한다면 우리 스스로를 가장 잘 자라나도록 해줄 사람들에게 우린 이끌린다고.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그런 말이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오늘의 내가 누구인지 난 알아.
너를 알게 된 덕분이야.
I've heard it said, that people come into our lives for a reason.
Bringing something we must learn.
And we are led to those who help us most to grow if we let them.
And we help them in return.
Well, I don't know if I believe that's true, but I know I'm who I am today.
Because I knew you.


[엘파바]
나의 너무 많은 부분은 너로부터 배운 거야.
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마치 내 심장에 남긴 손자국처럼.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네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 주었다는 걸 알아.
나의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So much of me is made of what I learned from you.
You'll be with me, like a handprint on my heart.
And now whatever way our stories end, I know you have rewritten mine.
By being my friend.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남기는 방법은, 누군가와의 만남, 그리고 교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밖엔 없다. 적어도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이 문장 속 ‘for good’이란 표현은 노래의 제목과 영화의 부제를 담당할 정도로 중요하고도 흥미롭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좋음을 위해’ 라고도 해석될 수도 있는 표현. 좀 더 영숙어적인 표현으론 ‘영원히‘란 의미다.

너를 통해 나는 영원히(for good) 바뀌었고, 그를 통해 나는 선함을 향해(for good), 더 좋은(better) 사람이 되었다고, 이들은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너를 알게 된 덕분에 (Because I knew you)" 였다.


정답은 늘 내 안에 있지 않다. '너'와의 관계를 통해 배워가는 것이다.


[함께]
변해버린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너를 알게 되어, 나는 바뀌었어, 영원히.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But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변해버린 내가 정말로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그건 알 수 없지만,
나는 믿고 있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I do believe I ha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아름다운 영화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재미있는' 혹은 '새로운' 영화였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이 이야기의 완결성 자체가 매우 뛰어났다는 점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각색, 즉 영화적인 표현에서 느껴진 안일함이었다. 뮤지컬을 실사 영화화 할 때 흔히 일어나는 실수인데, 뮤지컬이 가지는 개연성적 한계를 영화적 연출로 충분히 커버하지 못하는 경우에 느껴지는 특유의 덜컥거림이 있었다.


뮤지컬은 1부와 2부가 나뉘지만 짧은 인터미션 후에 바로 이야기를 이어서 본다는 점에서 2부에서 다운되는 텐션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1부에서 등장했던 노래들의 분위기를 바꾼 reprise 노래들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1년의 공백을 지난 후 이어서 보는 영화 2부에서는 이런 구성이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듣는 새로운 노래들이 적은 데다가, 이미 알던 노래도 무력하고 우울한 버전으로 바뀌니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들이 꽤 있었다.


뮤지컬 스코어들의 묘미가 바로 특정 주제나 감정을 드러내는 '테마곡'의 존재, 그리고 그 테마의 지속적인 재탄생(reprise)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 2부에서는 뮤지컬 장르 바깥의 시청자들을 고려할 필요가 조금 더 있었던 것 같다. "Popular"나 "Defying Gravity"처럼 치트키 같은 킬러 송들을 이미 1부에서 써먹은 만큼, 2부에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분명히 필요했다.


몇몇 reprise 노래들은 과감히 축소/삭제하여 넘어가고, 양철나무꾼과 허수아비, 겁쟁이 사자가 부르는 테마곡이 하나씩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영화 2부에서 가장 파격적이었던 지점은 아마도 이 세 인물의 정체였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점도 분명 있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 중 가장 우리들과 비슷한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는 보크.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은 분노에 사로잡혀 마녀의 처단을 부르짖는다. 그는 '선'의 아이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런 저주에 빠져버렸을 뿐, 그런 그에게도 심장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선함'을 쫓는 일반 대중들이 맹목적 추종에 빠지는 경우 치닫게 되는 극한의 '위선'을 형상화 한 모습이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속이 텅 비어버린 양철 나무꾼일 뿐이다.


영리한 상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서사를 풀어주지 않아 아쉬웠다.


엘파바와 글린다가 정리한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과연 이 양철 나무꾼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즈의 마법사》의 엔딩에서처럼, 마법사가 만들어 넣어주는 양철 조각을 심장이라 믿고 만족하며 살아갔을까? 마녀를 죽여 심장을 얻었으니, 다시금 글린다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겁쟁이인 나의 모습을 마녀의 과잉보호 때문이라 탓하며 숨던 겁쟁이 사자도, 마녀가 죽었으니 '용기가 생기는 가짜 약'을 먹은 것처럼 다시 용기가 솟아났을까? 뇌가 없어 슬펐던 허수아비는, 어떻게 해서 오즈라는 idea적인 세상 속에서 마녀라는 관념을 죽이고, 자유와 사랑을 쟁취하는 계획을 이행할 수 있었던 걸까?




《위키드 : 포 굿》은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그러나 1편에서 펼쳐놓은 세계관과 인문학적 주제들을 '주워 담아 마무리하는' 인상의 영화였다. 1편에서 영리한 구도와 설정, 상징들을 마구 흥미롭게 펼쳐두었다면, 2편은 이미 소개된 소재들을 다시 조합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재조명하며 주제의식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주제에 충실한', 혹은 '원작 전달에 충실한' 영화였고, 나쁘게 말하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였다.


짧다면 짧은 러닝타임 안에, 영화 1편의 감정선을 발전시키면서도 새롭게 조명된 요소들에까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선택지 앞에서, 이 영화는 전자를 선택한 것 같다. 1편에서 이미 구도와 상징을 통해 드러낸 주제의식을 대사와 가사로 확실하게 못 박아 설명해 주는 친절함이 있었고, 엘파바와 글린다의 감정적 변화에 대해 설득력을 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영화 1편의 후일담 정도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단점인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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