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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13. 2023

아버지

효도는 지금하자

오래간만에 비가 내린다.

촉촉이 비가 올 때는 가끔 따듯한 어묵탕과 소주가 당긴다.


아내가 요리한 어묵탕을 맛있게 먹던 오후였다.

“맛있다. 이 어묵. 잘 샀네.”

“그렇지 맛있지. 내가 잘 골랐다니.”

“ 이 맛있는 것을 옛날에는 내가 왜 몰랐을까.”

“ 이것도 안 먹었었어? “

“ 응. 옛날에는 입도 안 댔는데. 아버지가 어묵을 좋아하셨는데 한 번도 같이 먹은 적이 없지 아마.”

“ 야~ 너무했다. 아버님이 많이 외로우셨겠네.”

“ 응?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으렇게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럴려냐..”


아버지는 많이 외로우셨을까?


내 아버지는 경증 장애인이다.

어깨 한쪽이 다른 쪽에 비해 심하게 발달이 덜 된 모습으로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경위로

장애를 가지게 되셨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장애등급을 받으신 것도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어서, 아버지 본인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쉬쉬하시며 살아오셨기 때문에 더욱 먼저 여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목욕탕에서 아버지 등 밀어드릴 때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버지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처음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을 때

조금 충격이었다.


어머니께 대충 사정을 들어보면 어릴 적 워낙 별났던 아버지를 할머니께서 묶어놓고 밭으로 일을 나갔다 오셨다는데, 그때 어깨가 탈골된 것이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그랬다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 오랜 세월을 쉬쉬하시면서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장애인의 아들, 딸이 되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짐을 지금이라도 내려놓으셨다니 다행이다.

(장애인이면 모두 부끄러워해야 하냐는 말은 아니다. 오해 없기를..)


어린 시절, 부모님은 동네에 작은 목욕탕을 하셨다.

어머니는 항상 카운터네 앉아서 손님을 받으셨고, 아버지는 남탕에 계시다가, 목욕탕에 무슨 문제가 터지만 곧장 보일러실로 가시곤 했다.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보일러실은 온통 배관과 밸브로 가득 차있었고 바닥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물이 발검을을 뗄 떼면 항상 찰랑찰랑 거릴 정도로 차 있었다.

한 겨울에도 후끈할 정도로 더웠던 보일러실에서

역한 벙커씨유 냄새를 맡아가며 들어갈 틈이 없을 것만 같이 좁은 그 배관 사이로 무거운 렌치를 들고 혼자 작업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어깨로 잘 도 그 고된 일을 하셨다. 대단하다.


고된 노동 이후 아버지는 항상 바다로 향하셨다. 내가 느끼기로는 거의 매일을 낚시를 다니셨다.

바다에서 잡아온 싱싱한 생선을 종종 마당에서 손질하시거나, 숯불에 굽고는 하셨는데

해 질 녘 노을이 앉은 마당의 비릿한 바다냄새와 숯 냄새, 그리고 늦은 저녁 술에 쥐에 방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한 번은 늦은 저녁 자고 있던 나를 깨우시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현관에서 쓰러져 있던 아버지를 안방으로 끌고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게.

인사불성이던 아버지를 어머니와 겨우겨우 뉘이고 가려는 차, 몸을 돌리시려고 팔을 휘저으시던 아버지께 맞은 싸대기.

가족들이 모이면 가끔 내가 이 얘기를 꺼내곤 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항상 발뺌을 하신다.

원래 맞은 놈만 기억하는 게 이 바닥 룰이다.


어린 시절, 매일 바다로 향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낚시는 죽어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때가

종종 인사불성이 돼서 들어오셔서 인사도 없이 죽은 듯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 나는 어른이 돼서도 낚시랑 술은 절대로 안 할 거야라고 다짐한 때가 엊그제 같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이렇게 고생만 하시는데, 아버지는 가족에는 관심도 없고 매일 본인 삶을 즐기시는 것 같아서 원망만 많던 어린 시절이었다.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 상처가 되는 말을 나는 많이도 내뱉고 다녔다.  뭐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을까.

대학교 입학 후, 가족들이 나들이를 가는데 차에서 어머니를 심하게 타박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그만 좀 하세요 아버지, 정말.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제발 싸우지 좀 마세요.”

“아버지의 피가 섞였다는 게 싫어서, 다 뽑아내고 싶어요.”라는 말까지 했으니.

그때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셨을까.

(뿌린 데로 거둔다고 내가 똑같이 아들에게 당할까 봐 지금부터 걱정이다. 이 나쁜 놈)


나이가 들고 나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라는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아버지라는 이름에, 열심히 해도 원망만 받는 이 자리에,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를 버티게 해 준 유일한 낙이 낚시고, 바다고, 술이었겠지.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그때 조금이나마 알았다면 좋았을 걸.

그때 아버지가 건넸던 그 어묵을 먹었다면 좋았을 걸.

아버지랑 낚시도 많이 다닐걸.

힘내시라고 응원이라도 많이 해 드릴걸.

껄. 껄. 껄. 껄무새가 되는 나.


다 소용없는 옛날이야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이제는 술을 못 드시는 아버지와

어묵탕에 소주 한잔이 고플 때가 있다.


그나저나 이번 설도 걱정이다.

어떤 걸 들고 가야 하나.

무난한 홍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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