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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31. 2023

삿포로의 눈이 보고 싶다.

러브레터를 아시는지.

올 겨울은 그냥 지나가나 싶더니,

1월부터는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어 패딩을 한벌 사야 되나 고민 중이다.

겨울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계절로, 사계절 중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다.

추운 겨울,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세상을 덮는 일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밖으로 나가 잠시라도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느끼곤 한다. 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눈이 따스한 볼에 닿거나 어쩌다 눈이 등 뒤로 들어가 한 번씩 몸이 움찔하지만, 그 또한 즐겁다.

"뽀드득뽀드득"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쾌하다.

눈이 더 많이 내려서, 온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자고로 집, 차 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내 허리까지 쌓인 눈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이럴 때면 눈이 어른 머리 높이 까지 쌓인다는 삿포로가 간절히 가보고 싶어 진다. 간 김에 삿포로 맥주도 실컷 먹고 말이다.



No 재팬운동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랜만에 들른 유니클로 매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최근 개봉한 슬램덩크 영화로 SNS가 난리다.

BTS, 블랙핑크처럼 한류의 위상이 이전과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일본문화의 저력은 무시할만한 것이 못된다.


바야흐로 코흘리개 시절. 항상 가게일로 바쁘셨던 어머니는 주말이면 종종 있는 나와 동생에게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용돈을 받은 나는 동생 손을 잡고 신나게 동네 비디오 방으로 달렸더랬다. 종종걸음으로 5분 거리에 있던 동네 비디오방은 항상 재미있는 비디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후레쉬맨과, 바이오맨을 필두로 하는 특촬물과 인생작인 드래곤볼은 어린 시절의 절반을 채울 정도로 많이 봤었다. (항상 내 위주로 비디오를 빌려보는 탓에 동생이 엄청 투덜거렸던 기억이 나니, 갑자기 미안해진다. )


이후 중학생 때 우연히 토토로를 접하게 되면서 재패니메이션의 매력에 잔뜩 심취해, 일본어를 자막 없이 이해하고 싶어서 동네에 새로 생긴 일어회화 학원도 다녔었다. 주변에 친구들은 영어 배우러 다니는데, 영어는 필요 없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영어는 필요 없고 일어가 배우고 싶다고 졸랐더랬다. 마침 일본인 회화 선생님이 내가 당시 좋아했던 일본인 여배우를 상당히 많이 닮은 탓에 학원 다니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빨리 커서 선생님과 결혼해야겠다는 귀여운 망상을 하면서 다녔었지만, 동경하던 그 여선생님이 결혼으로 학원을 그만두는 바람에 나의 일어공부도 함께 끝이 나게 되었다. 내 인생 첫 짝사랑이 그렇게 끝이 났다.(오갱끼데스까? 센세?)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고, 안타깝게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느라 중학교 때만큼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지만 유일하게 일본 음악만은 즐겨 들었다. 엑스재팬, 자드, 아무로나미에는 학업으로 지친 나의 심신을 달래주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일본이 장기침체에 들어가기 전 최대 호황기 때 만들어진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굉장히 신선하고 사람을 묘하게 들뜨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엑스재팬을 보고 감명을 받은 룸메이트가 어느 날인가 드럼스틱을 사서는 매일 밤 자기 전 침대프레임을 두드려대는 통에 짜증이 났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대학생 때는 일본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많이 봤었다. 딱히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남아도는 시간을 적당히 때울 거리가 필요했고, 마침 온갖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드라마나 영화 등을 구할 수 있는 좋은 수단들이 많았던 터라, 하루 종일 기숙사에 틀어 박혀서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SMAP멤버들이 하는 예능프로그램인 SMAP X SMAP은 정말이지 지금도 배꼽 빠지게 웃기다. 굉장히 원초적이면서도 먼가 지능적으로 하는 일본식 개그는 충격적이면서도 굉장히 선진적? 면이 있어 계속 볼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콘텐츠로만 접하던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결혼을 하고 난 후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몇 개월 후, 장인어른의 환갑에 맞춰 야심 차게 기획한 일본 오사카 4박 5일 여행.

난생처음으로 일본을 가는데 장인장모님까지 모시고 가야 되는 나로서는 살짝 골치가 아팠다. 적당히 느슨하면서도 알찬 여행을 기획하느라 여행 전부터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무사히 수속을 밟고 날아온 오사카의 풍경은 서울과 다를 바가 없었고, 때마침 기가 막히게 일본 여행 성수기를 잘? 골라 온 덕에 오사카 거리 곳 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 잘못 왔나. 이럴 거면 국내여행이나 할걸.‘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을 깔끔히 씻어준 곳은 바로 교토였다. 오사카에서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도착한 교토는 빌딩이 늘어진 오사카와는 다르게, 낮은 일본식 목저주택 늘어져있었고, 거리에는 역시나 관광객으로 넘쳤지만, 숨 막힐 듯한 오사카와는 달리 여유가 있었다. 역에서 내려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 곳곳마다 모든 시설물들, 조경, 심지어 강마저 너무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면서 아쉬웠다. 오래된 문화를 잘 간직하고 관리하는 그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해 질 녘, 저녁으로 장어덮밥을 먹으면서 가모강의 야경을 감상하는 일도 즐거웠다. 나름 여유 있게 여행일정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고되셨는지 돌아오는 길 장인 장모님께서 힘들었다고, 내일은 좀 쉬자고 제안을 하셨다. 휴 그래도 다행이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오사카, 교토여행을 시작으로 그다음 해에는 오키나와를 또 그다음 해에는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해를 거듭해서 줄기차게 일본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딱히 맛집을 검색하고 가지 않아도, 언제나 즐거운 식도락이 있고 비행기 시간이 2시간 내외로 짧다는 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는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일본여행을 가 보지는 못했지만 가슴속에는 언제나 교토의 고즈넉함과, 오키나와 섬의 따듯한 햇살과 파도소리가 남아있다. (오사카나 후쿠오카는 사실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껴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크게 4개의 섬으로 이뤄진 일본 열도에서 시코쿠를 제외하면 이제 남은 것은 북해도밖에는 없다. 특히나 추운 올 겨울. 더더욱 삿포로의 눈이 보고 싶어 지는 이유다.


끝으로 이런 우스갯소리가 생각나서 적어본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입으로는 반일을 외치고

아래로는 친일을 하고 있다고..‘

취향은 존중받아야 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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