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부부란,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
‘서로 혼인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묶어 부르는 말’
로 정의 된다.
서로 혼인관계에 있고
밖에서는 남편과 아내로는 불리지만
집에서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필요한 말 만 딱 잘라 말하는 사이가 과연
부부인지.
부부의 형태는 다양하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형, 저희 부부의 모토가 뭔지 알아요? “
“뭔데?”
“따로 똑같이.”
“뭔가, 혼돈의 카오스 같은 말이네”
“부부가 서로의 빈 곳을 완전히 채워 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서로 못 채워주는 부분은 서로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채우는 거죠. “
“함께지만 또 때로는 따로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런 의미 정도? 랄까.”
“좋네. 나도 해보자 해야지.”
배울 점이 참 많은 직장 동료이자 동생에게
인생의 꿀팁?을 배웠다고 신나 하며 집으로 온 나.
마침 아내도 퇴근하여 집에 있었다.
“여보. 잠시만 이리 와서 앉아봐. “
“왜!”
“아 잠시만.”
“그. 자기야 자기가 내가 매일 퇴근 후에 티비만 본다고 뭐라 했잖아.”
“그래서”
“아 그래서, 그 ㅇㅇ네 알지? 그 부부네 사이가 정말 좋은데 모토가 뭐게?”
“뭔데”
“따로 똑 같이. 어때? 서로 부부지만 따로 각자 뭔가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어때 괜찮지? “
“… 너는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와서. 하. 그게 할 소리냐?”
“아 아니.”
‘하 이게 아닌데..’
말문이 턱 막혀 그 이후로 더 이상
대화는 진행되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신혼생활이 없이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원망했던 지난날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몸만 늙었지 여전히 철부지인 내가
성숙하지 못했고, 완성되지 못한 채
‘허’ 한 상태로 결혼을 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슴 한편이 비어있는 채였던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만큼 성숙되지 못한 채
부부라는 형태로, 아빠라는 이름으로
정의되기 위해 안간힘으로 빌렸던 ‘빚’이
이자에 이자를 더해 한번에
아내의 입에서
아내의 눈에서 쏟아져 나올 때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내 어리숙함으로?
“따로 똑같이”를 적용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우리 부부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긴 터널의 끝에서
환하게, 우리만의 ‘형’을 피워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