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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May 14. 2023

시간이 지나가면서 흐려지는 것들

그냥 산다.


7시 40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몸을 뒤척이다

마침내 일어나기로 작정한다.

아직 옆에는 아들과 아내가 곤히 자고 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거실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한다.

몸을 대충 씻고 속옷차림으로 화장실에서 나와

종종걸음으로 옷방으로 향한다.


8시.

'오늘은 뭘 입고가지'

2분 즈음 고민하다 결국 어제 입었던 티셔츠를 꺼내어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본다.

'땀냄새는 별로 안 나네. 그냥 이거 입자.'


8시 10분.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깨울까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9시 출근도장을 찍고

커피 한잔하기 위해, 어제 먹던 컵을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아 이런’

어제 옷에 묻었던 고춧가루가

이제야 선명히 보인다.


은근히 거슬리지만,

이까짓 거 뭐

‘회사에 일하러 오지, 패션쇼 하러 오나’

그냥 대충 물로 문 데고 신경 꺼 버린다.


어렸을 때에는 옷에 뭐만 묻어도

당장 갈아입곤 했는데

나도 어른이 되었나 보다.


인생선배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사는 게 뭐 있나. 그냥 사는 거지.”

“재미? 일은 원래 재미없는 거야. 그냥 해 “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여유도 없다”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다 별거 없다. “


삶을 살다 보니.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는 것들이 있다


원래 내가 좋아하던 그 무엇

원래 내가 싫어했던 그 무엇


그 모든 게 “그냥” “대충” “뭐 별거”에 물들어

그 색을 잃어버리고 흐려지게 될 때

마침내 어른이 되는 거다.


참 슬픈 일이다.

늙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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