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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까만 밤의 기억

불면증

by 밝고바른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있었고 한쪽에는 개수대와 텃밭이 있었다. 벽돌로 멋지게 지어진 그 집에서는 물론 나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추억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기억 속 어릴 적 내 모습은 쉬지 않고 집 안팎을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천방지축, 삐삐롱스타킹이 따로 없었다.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기억으로 남아 이따금씩 그리운 마음을 불러낸다. 거실 한 구석 기대어 앉아 음악을 들었던 곳, 책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서 평행하게 걷기 연습을 했던 곳, 엄마의 애장품 악기와 물려받아 짝이 없던 블록 장난감, 놀이기구가 되어준 검정 1인 소파와 누런 286 컴퓨터까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이사를 온 이후로 그 집에 다시 들어가 본적은 없지만 아직 내 기억 속에는 생생히 남아있다.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꽤 신식 엄마였다.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러 소리 들으면서 '서양식 육아'를 실천했다. 엄마는 자주 '미국'을 언급했지만 다 커버린 내가 생각하기엔 유럽식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건 그렇다 보니 엄마는 나를 다른 방에 재웠고 머리만 대면 금방 잠에 들어버리는 아주 부러운 체질인 동생과는 달리 저녁잠이 없던 나는, 까만 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잠에 들 수는 없지만 딴짓도 할 수 없다. 엄마가 정해둔 시간엔 자야 한다. 자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밤이 되면 유독 크게 들리는 시계 소리와 낮과는 어쩐지 달라 보이는 인형들, 치워도 자꾸만 생기는 벽 모서리의 거미줄까지. 그 모양을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즐겁게 놀았던 오늘을 하나씩 회상하고 낮에 들었던 동요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가사의 뜻을 곰곰이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밤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밤은 참 길고 나는 잠에 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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