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물건을 떼다 파는 7년차 커머스 셀러
1.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를 비롯한 중국 커머스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활발히 공략하면서 위기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비단 커머스 업계뿐만 아니라 관세청이나 산업부를 비롯한 국가기관, 학계 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향후 시장 변화에 대한 의견을 물으시길래, 솔직히 최근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대신 일선의 셀러들 이야기를 많이 듣고, 따로 소모임을 만들 계획이라 답했다.
2. 그 과정에서 만난 A씨와의 대화를 짧게 공유한다. 7년차 이커머스 셀러이자 지금까지 수천만원어치 커머스 유료 강의를 청취한 경험이 있는 A씨는 마음 맞는 소수 셀러들과 모여 판매 실적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그가 말하길 요즘 국내 커머스 셀러들은 비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셀러 상당수를 차지하는 구매대행 셀러들이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본인 역시 부업 차 구매대행으로 셀러를 시작했기에 잘 안다고.
3. 중국 구매대행 셀러는 재고 부담 없이 수천수만 개 상품을 떼다 팔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10년간 큰 인기를 끌어왔다. 하나 A씨에 의하면 위 비즈니스 구조 속에서 폭리를 취해 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셀러가 아니라고 한다. 구매대행 유료 강의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월 구독 프로그램’을 꾸준히 판매해 온 강사들이라고.
4. A씨는 위 강사들이 구매대행 초창기 유의미한 매출을 달성한 뒤 하나둘씩 노하우를 제공한다는 명목 아래 강의를 판매해 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본인이 수강했던 수십 종류의 강의 목록을 보여준 A씨는 해당 강의가 궁극적으로 강사 본인들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5. 위 프로그램은 월 구독 형태로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으로 기능이 세분화돼 있다. 프로그램 작동 방식은 먼저 한국어로 키워드 입력 시 검색 결과로 중국 커머스 플랫폼 상품 이미지를 나열해 준다. 이 중 적절한 상품을 체크해 등록을 진행하면, 해당 상품 판매 페이지를 그대로 한국어 버전으로 바꿔준다. 요즘은 AI 플러그인을 활용해 이미지 내 텍스트까지 한국어로 바꿀 수 있다고. 이어 스마트스토어, 쿠팡, 11번가, G마켓 등 국내 플랫폼 등록을 자동 진행해 준다.
6. 이후 국내 플랫폼에서 매출이 발생하면, 그 주문 정보를 그대로 중국 플랫폼 구매자 정보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구매대행을 진행하면 된다. 이를 셀러들 사이에선 ‘자동’으로 부르는데, 그 외에도 상품 판매 페이지를 셀러가 직접 구성하거나 썸네일을 제작하는 ‘반자동’, 상품 소싱 단계부터 셀러가 직접 진행하는 ‘수동’ 방식도 있다. 그리고 유료 프로그램은 위 자동·반자동·수동 판매 방식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적절히 제공한다.
7. 강사들은 강의료에 이어 프로그램 구독료로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만약 수강자가 수강 기간 내 유의미한 성과 없이 그만둔다? 이미 수강료를 받았으며, 지속적인 피드백 제공이 필요 없어져 편하다. 반대로 수강자가 잘 판다? 이는 곧 프로그램 의존도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매월 구독료를 챙길 수 있으며,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기능을 원하기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한다. 나아가 더 많은 매출을 원한다면 다음 단계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8. A씨의 과격한 표현에 의하면 “강사들은 강의를 통해 빨대를 꽂는 것”이라고. 왜냐면 대다수 강사는 정작 본인이 셀러로 활동하진 않으니까. 대신 강사들이 양산해 낸 셀 수 없이 많은 구매대행 셀러들이 국내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여 중국 커머스 플랫폼의 직접 진출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건 빨대가 모두 꺾일 위기인 커머스 강사들이라는 주장이다.
9. 한편 A씨는 자동, 반자동, 수동을 거쳐 지금은 위 프로그램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한다. 또 A씨는 대학을 중국에서 다녀 중국어가 자유로우며, 동시에 중국 현지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A씨는 요즘 중국 공장을 돌아다니며 떼다 팔 상품을 직접 보고 만지는 중이라 한다.
10. A씨는 “이제 진짜 글로벌 유통의 가치가 빛을 볼 것”이라 강조했다. 소싱과 검수, 이후 책임 없이 무작정 상품을 판매한 뒤 나 몰라라 하는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좋은 상품을 찾아 국내에 소개하는 자가 살아남을 거라고.
11. 위와 같은 이유에서 A씨는 “요즘 나도는 국내 커머스 위기론은 절대 산업 전체의 위기를 의미하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물론 국내 이커머스 산업은 여러 가치사슬이 얽힌 복잡한 구조이나, A씨의 경험 및 의견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위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