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툰드라의 땅, 콜라 반도
북극러시아 (1)
애기 때 지구본을 끼고 지낼 때는 북극이 땅인 줄 알았다. 남극이나 북극이나 그냥 다 땅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나는 크면 여기도 가봐야지 하고 막연하게 살다가 북극이 땅이 아니고 그런 데 아무나 가는거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냥 잊고 지내왔다.
인턴 근무하면서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구글지도를 뒤져보다가 (월급루팡?) 콜라 반도(Cola 아니고 Kola)가 눈에 들어왔다. 콜라 반도는 북극권 러시아 지역 중에서 그나마 접근이 용이하며(타이미르 반도같은 지역은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비밀도시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영화 <리바이어던>의 촬영지가 있는, 대자연과 툰드라, 오로라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 꽂혀서 무르만스크 행 항공권(IRAERO항공) 가격을 알아보니 괜찮아서 북극러시아의 여름을 느끼러 떠나기로 했다.
막 하지가 지났을 시기였기 때문에 모스크바에서도 10시쯤 해가 져서 새벽 3시정도면 해가 뜨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도 백야 현상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북극권 안쪽인 무르만스크는 그냥 아예 밤이 없이 24시간 내내 해가 떠 있는 기간이었다.
새벽 2시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쭉 올라갔고, 이미 날은 밝아있었다. 새벽에 무르만스크에 도착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한 시간 정도 공항에서 첫차 버스를 기다려 무르만스크 시내로 향했다. 7월 초였는데 공항 밖을 나오자 입김부터 나왔다. 날씨 어플을 보니 5도 정도 되었다. 솔직히 진짜 추웠고 북극권 안에 들어온 걸 피부로 느꼈다.
목적지 테리베르카로 향하는 간선버스는 저녁 여섯시에 있었다. 12시간 정도 무르만스크에서 보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선 아침일찍 할 게 없었고 더군다나 비까지 내려 산책도 좀 그랬다. 맥도날드에 갔다. 맥도날드 무르만스크점은 세계 최북단 맥도날드로 유명한데, 앉아서 친구들한테 손편지도 쓰고 과외숙제도(여행 왜옴?) 하고 그랬다.
두어시간 앉아있다가 우산쓰고 나와서 정교회 성당으로 향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일정을 교회에서 시작한다면 마음이 편해진다.(무교입니다)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문지방 밖에서 조용히 서 있다 미사가 끝나고 조용히 촛불을 꽂고 나왔다.
성당은 언덕위에 있었고 나오면 무르만스크 시내와 항구를 쭉 둘러볼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진짜 난생 이렇게 회색빛 도시는 처음이었다.(나중에 생각바뀜) 아파트도 칙칙해 도로도 칙칙해 하늘도 칙칙해 오싹할 정도였다. 일단 다시 내려와서 하염없이 걸었다.
한여름인데도 너무 추워서 안되겠어서 카페 하나 찾아 기어들어갔다. 피곤하기도 했고 얼그레이 티 하나 시켜서 좀 홀짝댔다.
오후가 되어서 점심 먹고 자연사 박물관 잠깐 들렀다가 레닌 쇄빙선이 있는 부둣가로 향했다. 무르만스크 항은 나름 북극권 최대 항구이자 북극항로의 전초기지로 정말 활발하고 거대한 항구이다. 그 한 켠에 세계 최초의 핵추진 쇄빙선 <레닌>이 퇴역하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50년대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팬인데 쇄빙선 곳곳에 왠지 그의 영화 장면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어서 보물찾기 하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구경을 하고 부둣가 카페에서 핫도그 시켜먹으면서 주인아저씨랑 얘기 좀 하다가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테리베르카로 출발할 시간이었다.
버스에 타고 앉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무르만스크를 떠나 툰드라 지대로 들어갔다. 테리베르카에 가기 위해서는 더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북극해 해안까지 가야 한다. 안개는 자욱했고 수 백개의 연못과 늪, 벌판을 지나면서 달리고 있었다.
밤 8시가 되고 9시가 되었지만 창밖은 점심 먹을때와 똑같이 환했다. 중간에 잠시 멈추어서 기지개좀 펼 겸 밖으로 나가자마자 모기떼가 습격해서 바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콜라 반도는 모기 천국이라는 걸 아예 몰랐다.
다시 한참을 달리니 강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북극해 바닷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작은 바닷가 마을이 나타났다.
그렇게 테리베르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