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단가를 줄이기 위한 완성차 업계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리튬을 비롯한 희토류가 다수 포함되는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은 차량 전체 제조 원가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사실상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을 결정짓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토류를 배제하고는 현재의 성능과 효율을 뽑아내기 어려워 상품성 면에서 약간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널리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NCM)보다 비교적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적용 비율을 점점 늘려 나가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중국과 손을 잡는 업체들도 많아질 것으로 전해진다.
LFP 적용 확대하는 스텔란티스
유럽에서 배터리 공장 가동한다
푸조, 지프, 마세라티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유한 스텔란티스(Stellantis) 그룹은 전기차 가격 인하를 위해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에 한해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작년 28만 8천 대의 전기차를 판매한 스텔란티스는 소형 전기차 '피아트 500E'에 삼성 SDI, 푸조 e-208에 중국 CATL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한 경쟁 모델에 비해 가격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카를로스 타바레스(Carlos Tavares) 스텔란티스그룹 회장은 "전기차의 주 소비층 범위를 중산층까지 확대하려면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필요하다"며 "어디에서 배터리를 조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스텔란티스 브랜드 전기차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할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대신 "ACC 합작 법인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세 곳에 위치한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 프랑스의 첫 공장에서 시제품 생산이 시작되며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중국 배터리 생산한다는 포드
향후 파트너사도 CATL 될까?
포드 역시 올해부터 포드 머스탱 마하-E 유럽 판매 사양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할 방침이다. 2024년부터는 리튬인산철 배터리 적용 대상을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미국 내수용 사양을 제외한 모든 수출형 사양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포드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의 라이센스를 취득해 미국에서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생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는 2026년부터는 SK와 세운 합작 법인 '블루오벌 배터리 파크 미시간'에서 생산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탑재가 예정되어 있지만 이와 별개로 더욱 저렴한 배터리도 적용할 전망이다. 포드는 아직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용량과 충전 시간, 주행 가능 거리 등을 비롯한 기술 정보를 밝히지 않았으며 업계는 포드의 유력한 파트너사로 CATL을 꼽는 분위기다.
리튬이온 대체하지 않는다
진입장벽 낮추기 위한 전략
한 포드 관계자는 "리튬인산철 배터리 도입은 전기차를 더욱 저렴하게 만들어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기차 생산 지역에서 배터리 공급망을 다양화, 현지화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수요층을 수용하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리튬인산철 배터리 조달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공급을 대체하지 않는 추가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이는 소비자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전기차를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같은 전기차를 SK 리튬이온배터리와 CATL 리튬이온 배터리 등의 사양으로 세분화한 후 수요가 몰리는 배터리를 주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2026년 말까지 전 세계 전기차 누적 판매량 200만 대를 목표로 제시한 포드는 자사의 다양한 신형 전기차 라인업에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