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시기가 1886년이다. 이후 독일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은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유구한 진화의 역사를 써 내려왔으며, 현재는 기술력으로 자동차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1886년 당시의 우리나라 조선은 자동차 산업은커녕 서구 열강들의 싸움터나 다름없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고 가까스로 휴전에 접어든 1953년, 미국에서는 쉐보레 콜벳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독일에서는 현재도 명차로 손꼽히는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의 개발이 한창이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이 시작된 해는 1955년. 이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오늘날 국산차들이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을까?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독자 기술력을 갖춰나간 역사적인 순간들을 추려보았다.
1955년 국산차의 '시발점'
1974년 첫 대량 생산 돌입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첫걸음은 1955년 국제 차량 제작의 '시바ㄹ'이 뗐다. 첫 출발을 뜻하는 시바ㄹ의 디자인은 미군이 두고 간 지프를 닮았지만 차체부터 엔진까지 모두 자체 생산되었다. 기술과 생산 설비 모두 없었던 백지상태에서 엔진을 직접 만들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에는 지프 엔진을 분해해 역설계하는 과정이 있었으며 실린더 헤드, 크랭크샤프트 등은 국내 기술로 자체 제작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일본의 마쯔다, 미쓰비시, 미국의 포드 등 해외 완성차 업계 의존도가 높았다. 1974년 출시된 기아자동차 브리사 역시 마쯔다 패밀리아를 기반으로 개발된 모델이다. 하지만 기아자동차가 자전거, 삼륜차 등을 생산하며 쌓아온 노하우 덕에 출시 당시에만 해도 부품 국산화율 65%를 달성했으며 이듬해에는 80%로 훌쩍 뛰었다. 무엇보다 1973년 완공된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처음 대량 생산된 국산차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976년 첫 독자 개발 모델 등장
1991년에는 엔진도 우리 손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당당하게 '우리나라 차'라고 말할 수 있는 첫 모델은 1976년 등장한 현대자동차 '포니'다. 해외 차량을 기반으로 개발하거나 아예 라이센스 생산했던 기존의 국산차들과 달리 현대자동차가 자체적으로 기획 및 개발한 첫 고유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6번째, 아시아 2번째로 독자 개발 자동차를 만들어낸 나라로 기록됐다. 포니를 계기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기술적 자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국산차는 해외에서 '준 일본차'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포니에 이어 엑셀, 스텔라 등 대부분 모델이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빌려온 파워트레인을 얹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는 1984년부터 첫 독자 엔진 개발에 착수했는데 당시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 회장은 "그래봤자 30년 전 수준이겠지"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개발비 1천억 원과 5년 6개월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1991년 완성된 알파 엔진은 당시 충격 그 자체였다. 성능이 미쓰비시 엔진보다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비웃음이 역사 바꿨다
1994년 완벽한 기술적 자립
1980년대 후반, 마쯔다 모델을 들여오는 것에 질린 김선홍 기아자동차 회장은 첫 독자 모델 개발을 추진했지만 연구원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기아자동차 기술력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아자동차에 영업차 출장 온 마쯔다 직원이 이 소식을 듣고는 "그냥 우리 차 쓰세요. 기아차가 만든 게 굴러나 가겠어요?"라며 비웃는 일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김 회장은 해당 발언을 크게 출력해 연구소 곳곳에 붙이도록 했고 플랫폼부터 자체 개발한 기아 첫 독자 모델 '세피아'가 1992년 탄생했다.
1994년은 100% 독자 기술로 개발한 국산차 '엑센트'가 출시된 기념비적인 해다. 엑센트는 자동차의 기반인 플랫폼부터 엔진,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 심지어 디자인까지 모두 현대자동차 자체 기술로 만들어졌다. 그간 차를 팔 때마다 미쓰비시에 거액의 로열티를 입금해야 했던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던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엑센트의 수출도 적극 고려하며 환경 문제까지 신경 썼다. 고장력 강판, 플라스틱 소재를 적극 사용해 중량을 덜었으며 전체 부품의 85%가 재활용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