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초보운전자 시절을 기억하는가? 앞을 보랴 네비 보랴 정신이 없었던 초보운전 시절, 필자는 미로 같은 서울 시내 도로에 엉뚱한 길로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요즘도 초행길에 복잡한 도로를 지나갈 때면 가끔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로 여정을 시작하곤 한다.
그런 운전자들에게 한 줄기 등댓불이 되어 준 것이 바로 ‘주행 유도선’이다. 자동차의 주행 방향을 안내하기 위해 차로 한가운데 그려진 주행 유도선은, 혼란을 겪는 운전자들에게 가야 할 길을 안내해왔다. 그런데 이렇듯 고마운 주행 유도선이, 최근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어떻게 된 일인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주행 유도선은
무엇일까?
주행 유도선은 ‘노면 색깔 유도선’이라고도 불리며, 2011년 경 한국도로공사 직원인 윤석덕의 제안으로 시범 적용되었다. 시범 적용되었던 곳은 당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안산분기점이었으며, 실제로 사고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국토교통부에서 정식 사용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는 주행 유도선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주행 유도선은 세 가지 색으로 구분된다. 먼저 중앙선에 가까운 쪽인, 1차로와 직진 또는 좌회전 방향의 경우 분홍색을 사용한다. 중앙선에서 먼 쪽이자 우회전 쪽은 연한 녹색을 사용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을 경우 녹색을 사용할 수 있다. 단, 나들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안내하는 경우라면 분홍색 1개 색상만 사용한다.
주행 유도선이
생긴 이유
복잡한 서울 시내나 도로 구획 사정이 나쁜 부산은, 빈번하게 운전자들의 행로를 방해하곤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초행길이라면 헷갈릴 만한 갈림길 등 복잡한 도로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듯 도로의 불명확성은 더 나아가 교차로와 분기점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유발하며 운전자들의 스트레스를 돋우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행 유도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탄생은 곧 유의미한 결과를 남겼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갈림길 차로에 주행 유도선 설치 전, 후를 1년 동안 비교한 결과, 교통사고가 74건에서 44건으로 약 40% 감소했다고 한다. 단순한 선 하나가 엄청난 파급력을 남긴 것이다.
효과 만점
주행 유도선
주행 유도선에 대한 운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한 네티즌은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분기점을 지날 때마다 속이 시원하다’며 주행 유도선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외에도 ‘주행 유도선이 생긴 이후 사고가 준 만큼 생명도 많이 구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등 많은 사람들이 주행 유도선의 효과를 추켜세우는 분위기다.
이에 각 도시들은 주행 유도선을 확대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8년에는 서울시가 주행 유도선을 48개소에 추가 설치한 바 있다. 이전에 23개소에 불과했던 주행 유도선이, 단기간에 71개소로 늘어났다는 점에서 얼마나 주행 유도선을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지난해 인천시도 29곳에 주행 유도선을 추가로 설치했다. 이는 2019년도에 주행 유도선이 설치된 부평시장역 오거리에서, 설치 전과 비교해 약 30% 교통사고 건수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추진된 것이었다.
→ 요즘 고속도로에 갑자기 많이 생긴 과속단속카메라 유형
요즘 고속도로에 갑자기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과속단속카메라 유형
헷갈리는
주행 유도선?
주행 유도선은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혼란을 주기도 했다. 바로 ‘차선과 유도선 중 어느 선이 우선이냐’에 대한 문제였다. 이러한 혼란이 발생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편도 2차도이지만 주행 중 2차로에 한 개 차로가 더 생기면서 분기점이 생길 때, 1차로를 가다 주행 유도선을 따라 2차로로 진행한 차량과, 2차로를 가다 3차로로 인도하는 주행 유도선을 무시하고 그대로 2차로를 주행한 차량은 추돌 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유도선이 차선을 가로질러 인도하는 경우, 차선을 따라 직진하는 차량과 유도선을 따라 우회전하려는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우선순위는 바로 ‘차선’이다. 유도선은 안내를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행 유도선이
초래한 사고
주행 유도선은 차선과의 우선순위에 관련된 문제 외에,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2019년에 도로를 주행하던 한 차량이, 주행 유도선을 밟고 순간적으로 미끄러져 도로 가장자리에 있던 가드레일을 부수고 추락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주행 유도선의 소재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차선과 주행 유도선은 페인트로 그려지는데, 이가 차량을 도로에서 미끄러지게 만든 것이다. 페인트로 칠해진 부분은 물이 흡수되거나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접지력을 떨어뜨린다. 단, 일반 차선은 폭이 넓지 않고 금방 지워지기 때문에 바퀴와 닿았을 때 크게 미끄러질 위험이 없지만, 주행 유도선의 겨우 폭이 넓어 그러한 위험성이 높아진다.
저품질 페인트가
사고 원인
하지만 이도 ‘페인트’라는 소재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도로 위에 차선이나 방향 표시를 위한 페인트는 마찰력이 높은 고점성 페인트를 사용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주행 유도선에 ‘저품질’ 페인트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품질 페인트로 시공된 주행 유도선은 미끄러울 뿐 아니라, 야간이나 비가 올 때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다. 본래 주행 유도선에는 야광 효과를 위해 ‘글라스 비드’라는 유리 알갱이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데, 저품질 페인트는 글라스 비드를 잘 고정하지 못해 가시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야간이나 비가 올 때 오히려 주행 유도선이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
→ 사고를 부르는 하이패스 차로
고속도로서 가장 바꿔줬으면 했던 이것, 언제쯤 바뀌는지 보니
주행 유도선 담당의
책임회피
이렇듯 저품질 페인트가 주행 유도선에 쓰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행 유도선의 시공에 있어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내 도로나 국도는 해당 지자체의 담당이며, 고속도로의 경우에는 한국도로공사의 담당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공 현장에서는 관리 감독을 도맡아 하는 공무원을 찾아보기 힘들며, 시공이 완료된 후에도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지차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관리 감독이 어려우며, 도로 외 써야 할 예산이 많아 주행 유도선에 대해 더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분명 주행 유도선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앞으로도 그 덕을 볼 것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를 표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공된 ‘저품질 페인트’의 주행 유도선이 우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앞으로 주행 유도선 시공에 있어, 담당자의 책임을 더 강하게 묻는 것이 사고 예방의 근본 대책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저품질 페인트’의 주행 유도선을 밟고 지나가야 하기에, 운전자 개개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또 주행 유도선이 더 큰 사고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금만 속도를 줄이고 주행 유도선을 지나가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