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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코모 Feb 09. 2022

항공기만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만들자 벌어진 놀라운 일

사브 900i 서울 옛 번호판이 정겹다. / 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신근'님 제보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항공기 사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한 방위산업체가 있었다. 그 방위산업체는 스웨덴의 대재벌가인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인 인베스터의 산하 기업으로 2차 세계대전 때는 전투기를 만들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였다. 


이 메이커는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명성과 지위가 뚜렷했다. 그리고 이들의 엠블럼만 바라봐도 열광하던 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고집스러운 안전에 대한 철학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으며,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 사이에서 ‘다운사이징’의 선구자로도 통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그 이름 바로 ‘사브’다.

1949년 사브 92로

사브의 역사는 시작된다

사브의 자동차 업계 진출은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항공기 사업으로 기업을 영위하던 사브는 더 이상 전투기 생산이 필요로 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공기를 만들던 엔지니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브의 방향성을 모색한 결과, “자동차를 한번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왔고 이러한 개념으로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사브 오토모빌이다. 

항공기 분야에서 활동하던 엔지니어들의 집단답게 사브의 전적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회사로 유명했다. 스웨덴의 최대 자동차 기업인 볼보의 그늘에 가려져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했을 뿐, 사브 또한 안전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아무튼, 사브의 첫 출발점에서 2년 뒤인 1949년 도저히 1940년대 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나간 에어로다이나믹 디자인을 품은 사브 92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 코란도 이모션에 대한 모든 것

디자인 때문에 출시 전 온갖 욕 다 들어먹던 쌍용차, 막상 출시되니 선녀라고?

1980년대 데뷔한 르망보다

낮은 공기저항계수

사브 92의 디자인은 당시로서도 매우 앞서나간 에어로다이나믹을 가진 차량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브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공기저항계수는 0.30cd이며, 1980년대 대우자동차에서 내놓은 소형차 르망보다(0.32cd)보다 0.02cd 낮은 수치다.


사브 92의 차체 전체를 판금으로 잘라낸 뒤 문과 창문을 제일 마지막에 조립하여 장착하는 특이한 조립과정 하며, 전반적으로 각지고 날렵하다기보단 조약돌처럼 매끄럽고 유선의 디자인이 전부인 그런 차였다.

때문에 직렬 2기통 2 스트로크 방식의 764cc 엔진에 최대 출력 25마력이란 빈약한 수치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엔진 대비 커다란 덩치를 최고 속도 105km/h까지 낼 수 있었으며, 엔진브레이크 활용 시 급작스러운 RPM의 변화로 인해 엔진오일 부족과 엔진의 오버런을 방지하고자 프리휠까지 장착하였다.


당시 사브 92를 통해 사브는 수석 엔지니어를 앞세워 스웨덴 랠리에 참가한 이력도 존재한다. 스웨덴 랠리에 참가한 결과 종합 2등이라는 쾌거를 얻어내었고 사브의 우수한 기술력이 입증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57년 사브 92가 단종되기까지 총 20,128대를 생산하면서 사브 오토모빌의 첫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스포츠카의 전유물에서

대중 승용차로 오기까지

사브 99는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의 최대 규모 시장인 미국의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차다. 최초 데뷔는 1967년에 치러졌으며, 본격적인 생산은 1968년부터 실시되었다. 세계 최초로 열선시트가 장착된 차로도 알려졌고, 사브의 안전에 대한 철학이 담긴 충격 흡수식 범퍼, 헤드램프 와이퍼 적용 등 사소한 부분에서도 안전에 대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사브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를 고르자면 역시 ‘터보’가 생각날 것이다. 저압터보에 일가견이 있는 사브는 1978년 사브 99를 통해 터보 버전을 선보였다. 터보를 만드는 생산 업체 중 나름 명품 소리를 듣는 ‘가레트’사의 터빈을 사용했으며, 1970년대에 2.0L 엔진으로 143마력을 유일하게 찍어낸 게 바로 사브 99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1978년 당시 BMW 2.0L 엔진들은 최대출력이 110~120마력대를 웃돌던 시절이었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W123 230가 배기량이 300cc 가량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최대 출력이 109마력에 그쳤었다. 


사브 99 터보는 유럽을 막론하고 상당수 메이커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기술의 진보를 기여한 차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사브만의 고성능 이미지를 입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사브 900

1978년 사브 99의 후속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브 900은 2도어 컨버터블, 3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 총 3가지의 라인업으로 출시되었다. 굴곡이 큰 디자인은 사브 900만의 디자인 요소이며, 뒷모습은 마치 유선형의 모습을 취하는듯하지만 각진 테일램프와 트렁크 리드 라인이 백미다.


전면부는 오리 부리를 연상케하는 각지고 올곧한 보닛과 전면부 유리가 큰 특징으로 다가온다. 특이하게도 1세대 사브 900은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V형 엔진이 아닌 오직 l4 엔진만 생산되었는데, 이유는 바로 각종 팬벨트를 비롯한 모든 벨트류들이 승객석 격벽을 마주 보고 있는 방식이다. 이 말인즉, 보통의 차량들과는 엔진의 배치가 다르단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엔지니어링 특성상 고배기량, 다기통 엔진을 얹는 건 불가능했기에 1세대 사브 900은 l4 엔진만 탑재했으며, 이마저도 터보 모델은 과급기를 비롯한 냉각계통이 추가로 달려 엔진룸에 대한 여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사브 99에서 지적받아온 극심한 터보랙이 개선되어 사브 900의 평가도 훌륭했다.


세계 최초 비석면 브레이크 패드를 적용한 모델로서, 나름 환경을 생각한 배려로 다가왔고 과거 1990년 초에는 사브 900이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판매되던 시기도 존재했다. 때문에 극소수의 정식 출고 사브 900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 항공기 회사가 만든 자동차, 사브

“뭐든 적당히 해야죠” 항공기만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만들면 이렇게 됩니다

파란만장한

사브의 역사

사브가 본격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건 사브 900을 출시한 뒤로부터 시작된다. 사브의 특성상 판매하고자 하는 고객층이 다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통을 고수하는 디자인과 집착을 넘어 광기로 넘어서버린 플랫폼 개발과 안전사양 투자는 차량 판매 수익을 넘어서 적자를 면치 못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사브의 경영진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사브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스웨덴의 좁은 내수 시장 또한 사브가 무너지는데 한몫을 하였다.

한때 사브의 기함급 세단으로 알려진 사브 9000또한 마찬가지다. 사브와는 성향이 정 반대인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함께 공동 개발을 하였고, 플랫폼에 대한 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사브에게 피아트 타입 4 플랫폼을 받아 사용했을 정도였다. 


훗날 1990년대 중반기에 들어서는 사브는 GM에게 인수되어 초장에만 반짝이고 고전을 면치 못하게 돼버리는데, 그 후의 이야기는 후속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놓치면 후회할 자동차 관련 핫이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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