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찌 그리 슬픈가요

기타에 대한 짝사랑

by 안기옥

오늘도 아쉬워요, 당신의 기타


"다운 업, 다운 업! 아니 아니, 다시 갈게요, 원 투 쑤리 포 다운 업 다운 업!"

"오늘 이 곡 10분 만에 끝내고 다음 걸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무리네요. 여기까지만 할게요."


선생님은 아직도 많이 아쉽다 하셨다. 매일 최소 십 분씩 연습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열심히 연습하면, 빠르면 6개월 안에도 잘 칠 수 있을 거란다. 흠..., 쌤, 이젠 그런 가망 없는 희망의 언사 따위 넣어 둬, 넣어 둬 플리즈. 그저 속상한 나는 선생님 말씀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축 쳐진 어깨로 돌덩이 같은 기타를 돌려드렸다.


씨발.


오늘 배운 곡은 기타를 배우는 학생들의 교본과 같은 리처드 아저씨의 <Now and Forever>. 따뜻한 감성의 발라드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물론이고 영원히 못 칠 거라고, 알아서 포기하라고 따뜻하게 알려주는 곡인가 보다.


집에 오는 길에 만 원에 네 개, 세일하는 맥주를 만 원어치 사 왔다. 오자마자 한 깡을 까고 꼬깃꼬깃 구겨 넣어 온 코드 악보를 다시 반듯이 폈다. 까짓, 해보지 뭐. A 마이너에서 G코드로 옮겨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다운 업 다운 업, 업 다운 이 짧은 리듬이 한 번도 끊김 없이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 오늘은 E와 G코드를 잡을 때 집게손가락을 쓰지 말라는, 새로운 운지법을 알려주셔서 그것도 난관이었다. 외우는 코드가 몇 개 되지도 않는 꼴에 나는 나름의 운지 습관도 갖고 있던 거다.


하아, 한 번 쳐보고 안돼서 씩씩 거리며 맥주 한 모금, 또 한 번 치고 또 안 되니 맥주 한 번 벌컥. 맥주 두 캔이 다 비어가도록, 밤이 깊어가도록 절룩절룩 그 자리에 맴돌기만 하는 기타 연습.


사랑하는 밴드 <라이프 앤 타임>은 '우아함과 고통의 시간이 비례한다' 했다(호랑이). 직접 부딪히지 않고는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경험주의 생활자로서 많은 상황에 그 말이 들어맞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에너지와 열정을 쏟는 만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예외도 있다. 사실 많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고, 포기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게 나이 듦의 서글픔이자 편리함이다.


KakaoTalk_Photo_2016-09-26-22-12-54_30.jpeg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언젠간 우리 함께 무대에 서 보자꾸나.


참으로 애석한 건,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원하는 기타가 그 예외 항목에 들어가는 거다. 그래, 목숨 걸고 연습에 매진한 적은 없다는 건 인정한다-취미란 자고로 목숨 걸고 하는 건 아니잖나. 그러나 연습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지난 기타 선생님은 바라만 봐도 즐거운 훈남이어서 기타 연습에 어느 때보다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해주셨다. 잘생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 한 마디라도 듣고자 매일 같이 연습을 했는데, 수업 시간에 특별히 잘했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다.


너란 아이, 참으로 슬픈 아이


기타 소리에는 슬픔이 어려있다. 강하게 쳐도, 빠른 템포 아르페르지오로 가도 음색 깊숙이 깃든 애달픈 분위기는 항상 고스란히 바탕이 된다. 여섯 줄의 가느다란 현은 제각기 응집된 소리를 서로 잘도 섞고 이어서 더 깊고도 풍부하게 그러면서도 조용히 퍼져나간다, 공기처럼 공간 가득. 이 특별한 슬픔은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절대 컴퓨터 미디로는 재현할 수가 없다.


내 마음에 비통과 비감이 흐르고 넘치던 시절, 남자 친구는 새벽마다 비좁은 자취방에서 조용히 기타를 쳐주곤 했다. 눅눅한 반지하에 침잠한 녹진한 냄새 사이로 조용하게 기타 소리가 퍼지면 나는 더욱더 슬퍼졌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면, "너는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그걸 주제로 곡을 써 줄게"라며 달래주었다. 달달한 초콜릿 세레나데는 듣지 못한 채 헤어졌으나 아직도 그의 연주는 커트코베인만큼의 기타 소리만큼이나 차갑게, 뜨겁게 심장에 각인되었다.



아릿한 고통의 맛


나 하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내 바에서나마 내 곡으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 소박한 꿈이 이뤄지려면 아마 몇 년은 더 "오늘은 아쉽네요. 조금만 더 하시면..."이라는 안타까운 피드백을 감수해야겠지.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도 어려운, 그러나 그것보다 행복할 소망이다.


오늘도 왼쪽 네 손가락에 아릿아릿 쓰라림이 만져진다. 고백하자면, 내 살같지 같은 그 고통이 어쩐지 기분 좋다. 알알이 밴 아픔이 터져 나와 빨리 편하게, 자유롭게 현 위에서 유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포기는 못하겠다. 그래서 오늘 밤도 나는 A 마이너와 G 코드의 머나먼 거리를 오간다. 이건 기타 소리보다 더 슬픈 허슬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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