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교, 예술과 꿈과 애환과..., 인생의 브리지

오늘도 어김없이 Wonderlust를 충동질하는 한강

by 안기옥



다리 위에 서 있으면 흡사 섬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발 아래 수심을 알 수 없는 웅대함은 거대한 용광로처럼 미지 세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한 번쯤 빠져 들어가 보고 싶다는 자살에의 매혹도 불러온다. 유유자적 흐르는 물살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역마살 가득한 마음을 충동질한다. 저 멀리, 더 아득한 바다로 가자고 내 사지와 심장을 잡아끈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렬한지 다리 위에만 서면 나는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져서는 끝도 없이 물살만 쳐다보고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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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 서 있으면 하늘과 한층 더 가까워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구름에 닿을 것만 같다. 빽빽한 도시에 살면서 내 시야를 온전히 하늘로만 가득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은 한강 다리를 제외하고 거의 없었다. 비좁은 땅떵이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나에게 인지를 넘어선, 우주를 향한 시계를 제공하는 유일한 장소.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항상 새롭다. 색깔, 구름, 하늘결, 바람의 흔적 무엇하나 같은 게 없다. 경이로울 정도로 항상 다르게 구성된 하늘 캔버스를 보노라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예술이 지금, 여기 내 위에 현현(顯現)하는 것만 같다. 인간의 유한한 감성으로선 감히 가 닿을 수 없는 무한한 조물주의 창의력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물 위, 하늘 아래, 둘 사이의 브리지(Bridge) 여기/나.



숨 멎을 듯, 숨 꾹 참고, 황홀경


바람을 맞으며 다리 위를 걸으면 나는 그, 그들을 생각한다. 괜찮은지, 조금이라도 나를 그리워하는지, 내가 떠올리는 우리의 기억을 너도 가끔 추억하는지. 그리고 모질게 굴었던, 너의 아픔을 모른척했던 내 냉소를 반성한다. 조금 더 토닥여 줄 걸 그랬어,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할 걸 그랬어. 이렇게 다 바람처럼 지날 갈 것을, 이렇게 다 허무하게 날아갈 것을, 왜 나는 그렇게 모질게도 자신에게만 집착했던 걸까.


그런데 묻는다. 지금 우리가 함께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만나면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는?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너란 존재를 경험한 뒤의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닌데, 또 한편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당신도 변했을 테고, 동시에 변하지 않았을 테고. 우리 사이에 흐르는 강물은 여전할 테지. 감정이란 다리는 이어졌다, 끊어졌다 반복할 테고. 다시 함께라면, 우린 이해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다리 위를 걸으면, 그 바람을 맞으면 <꿈의 택배편>을 상상한다. 나의 마음이 이 바람 타고 꿈을 타고 너에게 전해지면 좋을 텐데. 다리가 없어도 우리가 연결되면 좋을 텐데.


나는 여전히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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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를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또 한없이 슬퍼진다. 변함없는 일상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결고리가 서강대교인 것만 같다. 이 다리를 건넜을 때, 저 끝에는 제주도의 한적한 바닷가나 히말라야 숲 속이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술에 취하고 외로움에 취한 군상들이 왁자지껄 즐거운 척하는 홍대는 싫은데. 그게 싫어서 어두운 밤 까만 한강수를 또 한참 바라본다.


곧 이 다리는 끊어진다, 다행이다. 지친 일상의 반복과 젠체하는 여의도 외딴섬도 곧. 결심이 서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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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를 오고 가며 (꿈을 좇다) 죽은 새를 보았고, 다리 한복판에 가지런히 놓인 주인 없는 신발을 봤고, 오늘은 널브러진 안전모를 봤다(별별 상상을 하게 하는 미장센이다). 그리고 상시적으로 이 곳에 기생하(ㄴ다고 판단되는) 노숙자도 만난다. 여길 오갈 때 내 속엔 항상 한강을 따라 아득한 세상 밖으로 비행하는 다른 자아가 움튼다.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외진 서강대교는(자이언티처럼 다들 양화대교만 찾는다!) 나에게 이곳과 저곳을, 차안과 피안을, 나와 너를 이어주고 또 한 편 선을 긋는 인식과 휴머니즘의 발로가 됐다. 나를 이 삶에 붙박아 둔 곳도, 빨리 떠나라고 추동하도록 하늘을 개방해 준 곳도 이 곳, 서강대교다.


일상이 예술이 된다, 철학이 된다, 다리 위를 걸으면.


***이 글에 쓰인 모든 사진은 출퇴근길 서강대교에서 찍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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