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를 보았다

삭막한 도시를 떠나고자 했던 조나단

by 안기옥

그건 새였다.


추석 황금연휴를 앞두고 삶의 모든 영역에 여유가 깃든 청량한 9월의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발걸음도 경쾌하게 계단을 올라 마포대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어쩐지 전에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천히 전진할수록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더미가 하나 있었다. 세상천지에 개벽이 일어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잉여로운 공간 마포대교에 낯선 물체의 등장은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다. 뭘까? 돌멩이인가?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죽은 비둘기였다.


헉, 시체라니, 아아, 시체!


다리의 초입에는 모진 비바람도 막아줄 만큼 강건하게 유리벽이 서 있다. 비둘기는 그 아래 구석진 곳에 누워있었다. 주위에 피 한 방울도 벽에 부딪힌 흔적도 없었다. 마치 죽음의 임박을 감지하고 그 자리에서 서서히 눈을 감은 듯, 평온한 자세였다. 아직 숨을 거둔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듯 깃털도 윤이 났다. 아, 주검이 이리도 우아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어쩌다 이런 곳에 혼자 죽어 있는 거니. 안됐다. 좋은 곳에 가길...


미안한 마음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이어갔다. 자연의 섭리대로 개미군단이나 바퀴벌레들이 처치해 주리라 믿으며. 그리고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그 주검은 고스란히 잊혔다. 흔한 미물의 죽음은 죽어라 바쁜 현대인의 생활에서 한 장 짜리 보고서보다 못하지 않나. 그런데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던 월요일 아침에, 여전히 그 자리에 반듯이 누워있는 그 시체를 만났다. 쉬는 동안 잊고 있던 그 첫날의 충격이 떠올랐다. 다음날도, 오늘 아침에도 새는 내 출근길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빛이 나던 깃털이 더러워지고, 통통히 살이 올랐던 몸집이 점점 야위어지는 채로.


어제오늘 계속 그 죽은 비둘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막상 생각해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왜 그 아이는 혼자 거기에 죽어 있었을까. 한강 다리 위에서 갈매기나 까치는 매일같이 보았지만, 개처럼 인간 가까이 사는 비둘기는 굳이 거기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마포대교는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쓰레기도, 먹을 것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새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실치는 않아도 혼자 나다니는 비둘기는 보지 못했다. 분명 집단생활을 하는 종족이다. 그렇다면 왕따인 아이였나. 인도에 누워있고 피도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걸로 봤을 때, 로드킬도 아니다. 정말 홀로 죽음을 맞이하러 그 외딴곳에 온 걸까.


연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문득 어릴 때 읽었던 <갈매기의 꿈>이 떠올랐다. 그 비둘기도 조나단처럼 초월적인 비행을 꿈꾸었지 모른다. 삭막한 도시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싸구려 커피의 삶에 진저리 났을 수도 있다. 철마다 여행하는 기러기를 따라 지구 저편으로 날아가는 꿈을 꿨을지도. 불행히도 홍대 앞 작은 동네에서만 서성이던 이 촌닭은 서울 하늘이 얼마나 광활한지 알지 못하고 결국 인적 드문 마포대교 한쪽 구석에서 지친 삶을 마감한 거다.


그런 상상을 하니, 먼 길 떠나겠다고 맘먹은 내 희망이 비둘기에 투영돼 보였다. 떠나겠다, 그만두겠다 수십 번을 생각하고도 먹고사니즘에 매여 다시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기며 서울을 맴도는 내 처지와 꼭 닮았다. 헬조선 탈출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절체절명의 어떤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에도 그 주검 옆을 지나치면서, 마음 한 편 씁쓸함을 느낄 거다. 그런데 새가 그 자리에 없다면 그 또한 쓸쓸하고 서운할 것 같다. 이미 그 아이는 나에게 미물이 아닌 게 됐다. 너는 내 맘의 조나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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