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꼭 안으면 은은하게 풍기는 엄마 살 냄새, 엄마의 인생 냄새
제 이름은 김가은이에요. 올해 27살이고, 노량진 수산시장 엄마 가게에서 돕고 있어요. 엄마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어요. 이걸로 혼자 우리 삼 남매를 다 키웠으니 대단하죠. 전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도와드리긴 했는데,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일하기로 한 지는... 2년 정도 됐네요.
어릴 때는 엄마가 횟집을 하는 게 너무 싫고 쪽팔렸어요. 친구들이 맨날 "너한테서 비린내 나" 그랬거든요. 우리 집에서도 그런 냄새나다고 놀릴까 봐 친구들을 초대한 적도 별로 없어요. 어차피 데려와봐야 집도 꼬질꼬질하고, 뭐 먹을 것도 없고.
그런데 고1 때쯤이었나...? 엄마가 평소보다 많이 늦더라고요. 전화도 안 받고. 걱정이 돼서 자전거 타고 가게로 달려왔는데, 엄마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원래 맥주도 한 잔 잘 안 드시는 분인데 말이죠. 분명 뭔가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음..., 그런데 전 어쩐지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엄마 옆으로 가서, 술잔을 두어 번 채워드렸어요.
그때 아주 오랜만에 엄마 냄새를 맡았어요. 음, 뭐랄까? 그건 그냥 엄마 냄새예요. 엄마 살 냄새, 사람 냄새, 날 것 같은데 또 한편 엄마라는 생명이 오랜 시간이 품어서 따뜻하게, 은은하게 뱉어내는 냄새. 그런 거요. 그 순간 알았죠. 내가 엄마 냄새를 많이 그리워했구나. 엄마 옆을 너무 오랫동안 지켜주지 못했구나. 엄마는 그날 "미안하다 엄마가 못나서 우리 딸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여러 번 속삭이듯 말했는데, 사실은 내가 많이 죄송했어요. 그래도 못난 사춘기 반항심 때문에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어요. 난 정말 못된 딸이었어요.
한참 뒤에 알았는데, 엄마가 일 년 반 동안 외상으로 납품했던 시내의 횟집이 망해서, 그 사장이 도망갔대요. 아빠 고향 친구라, 곧 갚겠지 하면서 엄마는 미련하게도 계속 고기 갖다 주고. 개새끼죠. 아빠는 제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안 나요. 난 알지도 못하는 사람 친구가 우리 가족을 그렇게 망쳐놓으니 정말 세상 불공평하다 느꼈어요. 진짜 웃기죠?
그런데 가끔 무슨무슨 교수님이나 어떤 높은 분들이 찾아와서는 우리 엄마한테 "사장님~ 사장님~"하면서 깍듯이 인사하고 회도 사가고 하거든요. 여기서 중앙대가 가깝잖아요. 십 년, 이십 년 전에 중대생들이 많이 왔는데, 학생들만 오면 엄마는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면서 이것저것 서비스도 많이 주고 회도 더 많이 챙겨주고 그랬대요. 그때 학생들이 다 크고, 잘 되고 엄마한테 아직도 오는 거예요. 그런 광경 볼 땐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해 보여요. 어릴 때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엄마인데, 이렇게도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다니. 이 가게가 엄마 인생이자 천직이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지금은 학생들이 와도 예전처럼 살갑게 굴거나 정을 나누거나 그러진 않아요. 온라인에서 가격 알아보고 와서 비교나 하고 그러지.
엄마가 하도 칼질을 하니까, 오른쪽 어깨랑 손목이 안 좋아요. 특히 저녁만 되면 쑤시다 아프다 하셔서 자기 전에 엄마 어깨에 파스를 붙어주는 게 제 일과가 됐어요. 병원에 좀 가라고 하면 엄만 그래요.
"이건 그냥 직업병이라 고칠 수가 없어. 나아도 또 맨날 광어 대가리 잘라내야 하는데 어떻게 낫나? 그냥 끝까지 가는 거지, 그게 뭐 인생이지. 엄만 괜찮아."
아, 그놈의 생선 대가리! 목을 쳐도 눈을 꿈뻑거리는, 그리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생선 대가리! 아마도 엄마가 목 쳐낸 수백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엄마의 손목과 어깨를 물어뜯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엄마가 자꾸 아픈 것 같아요. 자신을 죽인 엄마를 잊지 않으려고 항상 죽는 순간까지 칼 든 엄마를 쏘아보는 거죠. 엄마는 나를 먹여 살리려고 그런 것뿐인데....
음...음..., 이제 곧 엄마의 삶이 내 삶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