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좋아보여 그런데 왜 속이 쓰릴까
<B님이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습니다>
'B? B라고? B가 페이스북을?'
상쾌한 아침, 간밤엔 어떤 일이 있었나, 기대감으로 열었던 페이스북 첫 화면. 일순 숨이 멎는 듯했다. 나의 엑스, B 군이다! 하, 살아있었구나. 그러나 그의 사진을 2초 이상 볼 순 없었다. 심장이 아려왔다. 얼굴만 확인하고 재빠르게 스크롤을 당겼다. 이 충격을 상쇄할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다음, 다음, 다음..., 그러나 그 어떤 사진도, 영상도, 순실 씨 기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길.
'어쩔 수 없어, 맞닥뜨려야 한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그의 사진을 찾아 올라갔다.
그런데 하필 그놈은..., 아아 나의 남미에 있었다! 광활한 들판에 펼쳐진 마추픽추 앞에서 두 팔 벌려 신나 하는 꼴이라니.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환한 미소, 온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다.
'이렇게 넓은 세상천지에 왜, 왜 하필 거길 간 거니? 나보다 먼저!'
우리 둘 다 아는 지인이 올린 댓글에 B는 "Life is awosome!"이라고 응했다. 남미로 여행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일 법한 기쁨과 흥분, 생의 충만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SNS를 돌처럼 알던 사람이, 얼마나 기뻤으면 이렇게 자랑질까지 할까.
그런데...
음..., 알 수 없는 낭패감이 밀려왔다.
하필이면 내가 찜한 여행지를 그가 먼저 갔다는 이유만으로 속상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헤어졌어도 잘 살고 있고, 나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메시지가 전달된 거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내가 완전히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한겨울 강물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아픈 일이다. 그래서 총 맞은 것처럼 얼음이 되었을 것, 이라고 나 역시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건 매우 이기적인 마음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헤어지고 난 뒤 한 두 달 아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그의 존재는 남보다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 기억 안에서 그는 점점 더 개새끼가 되어 갔고,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엔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일 년 반 만에 느닷없이 나타난 사진 한 장이 어째서 마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가. 왜 나는 항상 엑스들에게 당당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가. 그 이전 남자 친구를 길에서 만났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뒷길로 숨어버린 적도 있다. 꾀죄죄한 몰골도 아니고, 그를 잊지 못해 비통해했던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나는 작아졌다.
쿨한 척은 할 수 있어도 쿨할 수는 없다. 적어도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 사이에서 그럴 수는 없다. 쿨하지 못한,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 쓰이는 데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 같다. 공유했던 감정은 무의식의 심연 아래로 깊이 내려가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무엇인가로, 즉 나의 일부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B와의 페친을 끊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느 날 만취해서 다시 친구 추가 요청을 보내는, 백 년 동안 후회할 낯부끄러운 일을 하게 될까 봐. 그보다야 속이 쓰려도 그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편이 낫다. 지인의 시시콜콜 갖은 정보에 알람을 주는 페이스북은 독이지만, 끊을 수가 없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