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가?

by 은연중애

첫 번째 직장 생활을 내가 목표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했다. 원래 목표한 곳은 2년여를 열심히 준비했고, 거의 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지만, 결론만 얘기하자면 실패했다. 결국 나이 제한에 쫓겨서 들어간 회사에서 14년을 근무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힘들었지만 다녔다. 그러나 돈 때문에 다닌다는 것은 내 자존심에 너무 상처를 주는 일이라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다. 스스로에게 돈 때문이 아니라 직업적 사명감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포장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내가 덜 초라해졌다.

마흔이 되어갈 무렵부터 나는 노래를 하고 있었다. 사표 쓰겠다고. 회사에서 진급을 못 하고 있었다. 내내 과장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은 진급을 했거나 회사를 떠났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어서 점심시간이면 혼자 간단히 점심 먹고, 피아노 배우러 다녔다. 피아노를 3년 쳤다. 단돈 백만 원만 매달 들어오면 회사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사표 쓰겠다는 말을 딱 멈추었다.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차고 차서 목구멍에까지 차니까 오히려 말이 안 나왔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사람이 중요한 결심을 행동에 옮기는 것은 평소에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을 멈추는 시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대전환을 맞게 되었다. 골목 입구에서 볼 때는 막다른 골목이었는데 막상 골목 끝까지 가면 옆에 다른 골목길이 있는 것을 경험했다고 할까? 회사 관두면 나는 다른 어떤 대안도 없었을 줄 알았다. 내게 있어 ‘회사 사표’란 그냥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런데 구정 휴가를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그날은 정말 사표 내겠다고 마음먹고 출근했는데 명예퇴직 공고가 딱 뜬 것이다. 그것도 1년 치 연봉을 얹어 주는 조건으로! 안 그래도 사표 던질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1년 치 연봉을 얹어 준다니!! 명퇴 신청자 첫 번째가 나였다. 그리고 더불어 바로 다른 곳에서 일할 기회가 왔다.


직장인들의 최고의 꿈은 멋지게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나올 때 사람들은 나에게 선물을 넘치도록 안겨주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선물은 수저 세트이다. 밥을 먹으면서 날마다 자신을 생각해 달라는 멘트와 함께. 떠나는 나는 남아있는 그들의 속마음을 대리 만족시켜 준 셈이다. 마지막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방문 걸어 잠그고 막춤을 췄다.


내가 계획한 것도 아니고, 애쓰고 힘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잘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매사가 이렇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이들 돌보는 일에 도움을 얻고자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으나 이로 인하여 시동생과도 7년을 같이 살아야 했고, 장남이 아닌데도 결혼 35년 차인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것은 내 계획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것이 나에게 반드시 손해를 끼친 것만은 아니다. 같이 살았던 시동생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였고, 남편 고향에는 플랭카드가 걸렸다. 이 일은 나의 아들들에게 굉장히 동기 유발이 되어 비싼 과외비 들이지 않고도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제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지만 나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도와서 했다. 형제들이 그 비용은 나누어 지불했고, 또 그 음식은 며칠간의 반찬거리가 되어 주어 나의 일거리를 줄여주었다. 돌아보니 제사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은 자라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친척에 대한 개념이나 예의를 깨치게 되었고, 자신의 소속이 어딘지 체득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보면 귀찮은 일이었지만, 자식들 성장에는 도움이 되었다.


계획 밖에 맞닥뜨린 일은 또 있다. 큰아들의 결혼식이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덮친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을 몇 번이나 미루다가 결국 하객 수 50명 제한이 된 가운데 불안 불안하게 치러야만 했다. 지방의 친척들이 참석 못 한 것은 물론이고, 시어머니는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 못 하신 것 때문에 한동안 우울감으로 식사를 못 하실 지경이었다. 그 당시 코로나는 끝나지 않을 긴 터널 같았다. 그러나 결국 오늘날에는 아주 약화되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 걸렸다고 그렇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는 항상 ‘나의 노력 하에 모든 것이 달렸다’라는 생각을 주입받고 자랐다. “Do your best!”라는 말이 귀에 쟁쟁 울린다. 나도 나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며,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오로지 내가 계획하고,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년의 입구에 서서 돌아보니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손아귀 밖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바로 이 부모님께 이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이 시대에 태어난 것부터 내 노력과는 상관없지 않은가!


애쓰고 힘쓰지 않았지만 좋은 일이 오기도 하듯이, 안 좋은 일도 초청하지 않았는데 온다. 그러니 오늘 내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가되, 너무 애면글면하며 살지 않아야겠다. 인생의 코로나 같은 일이 닥쳤을 때는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정신줄만 잘 잡고 버티면 지나가고, 또 좋은 일도 오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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