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by 은연중애


배우 조정석이 주연으로 나오는 코미디 영화 ‘파일럿’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도 그의 활달하면서도 여성적인 부드러움, 건강함을 좋아하던 터이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정석이 여성으로 변장하여 발생하는 좌충우돌 코미디이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것도 주된 스토리 라인이 아니라 잠시 곁다리로 나온 장면에서 말이다.


영화에서 조정석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이르는 장면이 있다. 그동안의 활기, 재치, 용기를 모두 잃고 실의에 빠진 그는 혼자 술을 마시며 아무 영문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울며 전화한다. 내가 눈물이 터졌던 순간은 이때이다. 왜 자식들은 잘 나갈 때는 뭐든지 본인이 혼자서 일을 다 저질렀다가 잘못되면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걸까? 조정석이 엄마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나와 아들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식 농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사춘기 때에는 친구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서, 그다음은 대학 입시,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문제, 또 결혼, 결혼하면 아기가 안 생겨서 혹은 아기 육아가 어려워서.... 자식의 인생 단계 단계에서 부모 특히 엄마에게는 자식의 아픔이 엄마 본인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나의 아들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고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으므로 나는 자식들에게 최대한 간섭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들들을 먼 친척 내지는 낯이 많이 익은 이웃사람 정도로 대하기로 결심한 지 오래다.


그런데 영화 속의 조정석처럼 평소에는 데면데면한 아들들이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는 엄마에게로 돌아온다. 속상하고 걱정되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한편 원망이 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전화도 않다가 문제만 생기면 왜 연락하냐고. 키 180이 넘는 덩치 큰 아들들이 엄마에게 어린아이가 칭얼대듯이, 때로는 비명을 지르듯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엄마라고 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들어주는 것밖에는 없다. 그리고 문제가 정리되면 혹은 감정이 추스러지면 그들은 다시 어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산다. 그리고 엄마는 그저 그림자로 돌아간다.


그러면 나는 엄마와의 관계가 어떠했는가?

나도 엄마이기 전에 자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엄마와 그렇게 잘 지내지 않았고 데면데면했다. 엄마를 기억할 때 별로 안 좋은 기억들만 늘 오래 남아있다. 어린 시절 장에 따라가려는 나를 기어코 떼어놓으신 엄마. 뒤를 따라가다가 결국은 놓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던 나. 그릇 깨 먹었다고 그리도 혼쭐을 내시던 엄마, 청소 안 했다고 혼 내신 엄마, 내 결혼을 내켜하지 않았던 엄마....... 늘 엄마에게 원망의 마음을 한 자락 깔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된 내 인생에 잊지 못할 계기가 있었다. 코로나 기간에 나는 베트남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류가 처음 겪어보는 그 대사건을 외국에서 혼자 겪게 된 것이다. 베트남으로 향하던 한국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고 상공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일어나 크게 뉴스화되었던 그 시절이다. 지금은 재택근무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그 당시에는 고국에서도 익숙하지 않던 그 재택근무를 외국에서 하면서 사람 얼굴 구경하기 어려웠다. 공포와 고독의 순간이었다. 온종일 하릴없이 손만 씻고 또 씻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으나 비행기 편도 없었다. 태국에서 우회하여 갈 수 있는 비행기는 있다고 들었으나 전염될까 공항에 나가는 것조차 두렵던 시절이었다.


마치 물고기가 어항 밖에 나와서 버둥거리는 느낌이었다. 밤이면 잠이 안 왔다. 온몸이 가려워서 여기저기를 벅벅 긁었다. 잠을 안 자고 있으니까 유튜브가 나의 불면을 눈치채고 수면제 광고를 계속 내보냈다. 베트남 도마뱀 게코가 들어올까 봐 모기장을 치고도 모자라 모기장 아래를 모두 무거운 물건들로 눌러 막았다. 그리고 그 안에 누워서 잠 못 자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울었다. 그때 보고 싶은 사람은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오직 엄마였다. 그 순간의 나는 50 중반을 이미 넘어선 중늙은이가 아니라, 그냥 초등학교 아이였다. 내 눈에 보이는 엄마는 구십 넘은 지금의 주름진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푸른 옥색 한복을 멋떨어지게 떨쳐입으시고 학교에 오셨던 어린 시절 엄마 모습이었다.

그런가 보다. 이것이 핏줄인가 보다. 이것이 엄마라는 존재인가 보다.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이나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고독한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만 해도 그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사람.


아들이 힘들 때만 나에게 연락한다고 욕할 것도 못 된다. 나도 이 나이에 그렇다.


여기에서 나이 든 엄마의 사명을 발견한다. 이제는 먹여주는, 씻겨주는, 공부시키는, 훈육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식이 힘들 때 찾아오면 들어주는 상담사 같은 역할이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혹여라도 긴 인생 여정에서 자식이 지쳐서 찾아오면 나는 그 그늘이 되어줘야 할 것이다.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책도 좀 보고 살아야겠다. 잘 들어주고 한마디라도 도움 되는 말을 해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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